[삶과 추억] 한숨짓지 마,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쪽 편만 들지 않아
세계 최고령 시인 시바타 별세
98세에 처녀시집 『약해지지 마(くじけないで)』로 데뷔한 세계 최고령 시인 시바타 도요(柴田トヨ·사진)가 20일 타계했다. 101세.
일본 언론들은 “밀리언셀러 시인 시바타가 도치기현 우쓰노미야시의 한 양로원에서 숙환으로 숨졌다”고 보도했다. 장례식은 24일 그가 살던 우쓰노미야시의 가와다 시민홀에서 열릴 예정이다. 2010년 발간된 이 시집은 일본에서 150만 부 이상이 팔리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일본에서 시집은 1만 부만 팔려도 히트작으로 분류된다.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으로 실의에 빠진 일본인들에게 치유와 긍정의 힘을 불어넣는 존재가 됐다.
“10년은 더 살아내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은 마음뿐이었는데, 마음의 교과서로 삼고 열심히 살겠다”는 독자들의 감사편지가 발간 6개월간 1만여 건에 달했다. “힘들거나 슬플 땐 바보가 된 것처럼 잊어야 해. 불평불만을 하거나 남의 험담을 하면, 그 고통은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오는 거야.” 시바타의 이런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는 그의 시를 통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치유했다.
이 책은 네덜란드와 독일·대만 등 5개국에서 번역 출간됐다. 국내에서도 3만여 권이 팔렸다. 시바타의 시는 2011년 가을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 빌딩 전면에 게시하는 ‘광화문 글판’의 문구로 채택돼 더욱 유명해졌다. ‘있잖아, 불행하다고 한숨짓지 마/햇살과 산들바람은 한쪽 편만 들지 않아’라는 글귀는 현실에 지친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줬다.
1911년 도치기에서 부유한 가정의 외동딸로 태어난 시바타는 10대 시절 아버지의 가산탕진으로 인해 갑자기 학교를 그만두고 일터로 향했다. 이후 전통여관과 요리점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20대에 이혼의 아픔을 겪었다. 그리고 33세에 평생을 함께할 요리사 남편을 만나 외아들을 낳았다. 평생을 글 쓰는 일과는 무연하게 살아온 92세의 시바타에게 시작(詩作)을 권한 것은 아들 겐이치(健一·67)였다. 60을 넘긴 아들은 나이가 들어 평소 취미로 하던 일본 무용을 할 수 없게 된 어머니를 곁에서 도왔다.
어머니의 재능을 알아본 아들은 시를 신문사에 투고했고, 시바타의 시는 6000대 1의 경쟁을 뚫고 산케이신문 1면 ‘아침의 노래’ 코너에 실리게 됐다. 시 쓰는 법을 배운 적도, 써본 적도 없었지만 대가를 바라지 않는 솔직하고 순수한 시바타의 시는 독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그는 자신의 장례비로 모아뒀던 100만 엔(약 1100만원)으로 『약해지지 마』를 자비 출판했다. 100세를 맞은 지난해에는 두 번째 시집 『100세』와 사진집도 냈다.
국내외 언론들의 취재 요청이 잇따르자 어머니의 건강을 우려한 아들은 “이제는 그만해도 될 것 같다”고 했다. 이에 시바타는 “안 된다. 내가 사람들에게 약해지지 말라고 해놓고, 어떻게 포기하느냐”며 마지막까지 펜을 놓지 않았다. 2년 전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했을 때는 목욕 중이었다. 우쓰노미야시에선 당시 규모 6의 강진이 일어났다. 당시 가구와 가재도구가 쓰러진 자택에서 TV를 통해 피해지역의 상황을 지켜봤다는 시바타는 “눈물을 흘리며 손 모아 기도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고 했다. ‘이제 곧 100세가 되는 나/천국에 갈 날도/머지 않았겠지요/그땐 햇살이 되고/바람이 되어/여러분을 응원할게요’(시 ‘재해지역 주민 여러분들에게’ 중 발췌). 그가 보낸 응원의 시는 포스터로 만들어져 재해지역 피난소와 학교 등에 붙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