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애송시

허홍구 詩 '아지매는 할매되고' 외 3편

풍월 사선암 2013. 1. 21. 07:59

line

 

늑대야 늑대야 / 허홍구

 

남자는 모두 도둑놈, 늑대라며

늘 경계를 하던 동창생 권여사로부터

느닷없이 소주 한잔 하자는 전화가 왔다

 

“어이 권여사 이젠 늑대가 안 무섭다 이거지”

“흥 이빨빠진 늑대는 이미 늑대가 아니라던데”

“누가 이빨이 빠져 아직 나는 늑대야”

“늑대라 해도 이젠 무섭지 않아

나는 이제 먹이감이 되지 못하거든”

 

이제는 더 이상 먹이감이 되지 못해

늑대가 무섭지 않다는 권여사와

아직도 늑대라며 큰소리치던 내가

늦은 밤까지 거나하게 취했지만

우리 아무런 사고 없이 헤어졌다

 

그날 권여사를 그냥 집으로 돌려보낸 것이

두고두고 후회가 되었다

- 나는 아직도 늑대가 분명하다

 

line 

 

무서운 일 / 허홍구

 

“쌔임(선생님)요”

“와 ()”

 

“결혼하면 마누라하고 꼭 같이 자야합니꺼?”

“빌어먹을 놈, 그걸 말이라고 하나 이 놈아 !

, 같이 자는 게 싫은 기가 아니면 겁이 나나”

 

“그 기 아니고요

피곤할 때는 혼자 자는 게 훨씬 편한데....

그리고 여름엔 디기 더울텐데”

“미친놈, 잠만 잘라고 결혼하나”

 

그래, 니 말이 맞다

나도 오십이 훨신 넘어서야 알게된 일이지만

자기 싫을 때도 같이 자야하는 결혼이라면

오~ 그건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line 

 

무섭다 / 허홍구

 

미친 사람이

칼 들고 있으면 무섭다

무식한 사람이

돈많은 것도 무섭고

권력을 잡으면 더 무섭다

그러나 그보다 더 무서운 게 있다

실력 있고 잘난 사람들 중에

사람이 아닌 사람은 더 무섭다

참 무섭다

언제나 웃고 있는

너그러워 보이는 탈을 벗기면

흉악한 얼굴들이 보인다

언뜻 언뜻 나의 얼굴도 보인다

몸서리치게 무섭다

 

첨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