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깝고 안타깝고 불쌍하다 / 허홍구
술 잘 먹고 사람 좋기로 소문난 친구
술병으로 먼저 가버렸다.
너무나 아깝다
부동산 투기로 부자 된 친구
나눌 줄 모르고 욕심만 부리더니
그도 어느 날 저승으로 가버렸다
참 안타깝다
실력 보다 더 큰 감투를 얻어
어깨와 목에 힘이 들어가고
걸음걸이가 이상해진 친구
오늘 아침신문에 죽었다는 소식이다
내가 속으로 욕하면서
저 친구 저러면 오래 못산다 했는데
그만 죽고 말았으니 미안하고
그냥 불쌍하다
꿈에서도 혼났다 / 허홍구
깨끗한 옷차림의 할머니 한 분
전철 입구에서 손을 벌리고 서 계시다
이를 어찌 할 건가
귀머거리 행인들 수 없이 지나가고
배가 고프다는 그 말씀이
자꾸 뒤통수를 당긴다.
지폐 한 장 선뜻 건네주지 못하고
주머니를 뒤적거려 동전을 찾는 내 앞에
아, 내 어머님이 배고픔에 쓰러져 계시다
눈보라가 사정없이 몰아친다.
어머님을 안고 죽자 사자 뛰어
병원까지 갔을 때 꿈에서 깨어났다
식은땀에 온 몸 흠뻑 젖었다
내 속에 무덤 / 허홍구
큰일 날뻔 했었어
감옥소에 갇혀 죄값을 치르더라도
훔치고 싶은 여인이 있었거든
그럴 때가 있었어
마누라도 있고
아들이 셋이나 있을 때인데 말이야
남의 부인을 훔칠 생각을 했으니
맞아죽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야
곰곰이 생각했지
쉽고 안전하게 그녀를 가질 방법이 있더라고
그녀를 죽이기로 했지
기억 속에 죽은 그녀
참 곱고 이쁜 여인이었는데
눈을 감아도 보이던 얼굴인데
이젠 통 보이지가 않아
내 속에 꼭꼭 묻어버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