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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눈물로 울리는 웨딩마치

풍월 사선암 2012. 3. 16. 11:09

[부모의 눈물로 울리는 웨딩마치]

또 하나의 고통 결혼비용(신혼집·혼수·예식·신혼여행 등), 7년새 2배로

 

양가 합친 결혼비용, 전국 평균 2억원 넘어서

13년새 집마련 비용 3, 예식비 4배로 늘어

 

우리나라 평균 결혼 비용이 사상 처음 2억원을 넘어섰다.

 

본지가 결혼 정보 회사 선우에 의뢰해 최근 1년 안에 결혼한 전국 신혼부부 310쌍을 조사한 결과, 집 구하고 식 올리고 예물·예단·혼수·신혼여행을 해결하는 데 평균 2808만원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직전 조사 연도인 2009년 결혼 비용은 17542만원이었다. 3년 만에 3000만원 넘게 오른 것이다.

 

선우는 1999년부터 2~3년마다 결혼 비용을 조사했다. 취재팀이 결혼 비용 변화를 추적해보니, 젊은이들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결혼 비용이 치솟는 추세가 뚜렷했다.

 

외환 위기 후 13년 동안 20~30대 평균 근로소득은 두 배로 올랐지만, 결혼 비용은 세 배로 뛰었다(19997630만원20122808만원). 2005년과 비교하면 7년만에 두배 가까이 늘었다.

 

그 격차를 메우는 게 결국 양가(兩家) 부모의 자산이다. 서강대 사회학과 전상진 교수는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으니까 너나없이 점점 캥거루처럼 부모에게 기대는 관행이 굳어지고 있다"고 했다. 현실적인 필요, 과시하고 싶은 욕망, 부모의 애정과 자녀의 욕심이 맞물려 있다는 얘기다.

 

결혼 비용은 4~5년을 주기로 한꺼번에 수천만원씩 껑충 뛰었다. 2001년까지 1억원 선을 밑돌다 2003년 갑자기 13498만원이 됐고, 2007년 다시 17245만원이 됐다. 올해 또 가파르게 치솟아 사상 처음 2억원 선을 무너뜨렸다.

 

이처럼 결혼 비용이 뛸 때는 매번 그에 앞서 부동산 폭등이 있었다. 마치 홍수 경보처럼 집값이 먼저 크게 요동치고 이듬해 어김없이 결혼 비용이 치솟았다.

 

여기에 "한 번 하는 결혼 남들처럼 잘하고 싶다"는 한국인 특유의 심리가 가세했다. 신혼집 마련 비용이 세 배로 뛰는 동안(4262만원14219만원), 결혼식 비용은 네 배로(457만원1722만원) 늘어난 것이다.

 

조사를 총괄한 선우 부설 한국결혼문화연구소 유성렬 소장(백석대 교수)"상류층은 호화 결혼식으로 부()와 힘을 과시하려 하고, 중산층은 그걸 따라가느라 소중한 노후 자금을 낭비한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모두가 고통스럽기 때문에 새로 결혼하는 젊은이 숫자는 매년 줄어들고 있다.

 

199936만쌍이 결혼했지만 2010년에는 32만쌍만 식을 올렸다.

 

28000만원 턴 50대 자영업자, 아들이 "만나는 여자 있다"고 하자

 

부모들 "자식 둔 죄인" - 사교육·대학등록금 허리 휘고 결혼 시키고 나면 빈털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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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된 '체면 문화' - 평생 한번 하는 결혼식인데남들도 이렇게 하는데

한국 결혼비용, 미국의 5- "첫 출발이 좋아야 끝까지" 할 수만 있다면 감수하려 해

 

수원에 사는 정기완(가명·56)씨는 군대 갔다 오자마자 결혼해 아들 셋을 내리 낳았다. 직원 10명짜리 폐기물 처리 회사를 운영하면서 한 해 6000만원씩 벌어 4억짜리 아파트(152·46)를 샀다. 어려움 없이 아들 셋을 모두 서울 명문 사립대에 보내 주위에서 "다복하다" 소리를 들었다.

 

그런 정씨도 아들 셋이 결혼 적령기에 접어들자 허덕이기 시작했다. 정씨 자신은 서울 장교동 단독주택 문간방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그땐 다들 그랬고, 내가 특별히 힘들게 출발한다는 생각도 없었다"고 했다. 아들 셋이 대기업에 취직했으니 결혼시킬 일만 남았다고 '가볍게' 생각했는데, 닥쳐보니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2009년 큰아들(당시 29)이 결혼했다. 큰아들은 대학 졸업하자마자 취직해 3000만원을 모았지만 아파트 전세금은 18000만원이었다(80·24·서울 마포구). 정씨는 '그래도 개혼(開婚)인데' 싶어 노후 자금으로 부은 적금 2억원을 헐었다.

 

작년에 셋째 아들(당시 27)이 올해 5월로 날을 잡았다. 그새 전셋값이 더 올라 지은 지 30년 된 아파트가 2억원 했다(63·19·서울 송파구). 정씨는 큰아들 보내고 남은 돈에 은행에서 8000만원을 대출받아 셋째 아들에게 건넸다.

 

최근 둘째 아들(28)"만나는 여자가 있다"고 했다. 정씨는 "솔직히 겁이 덜컥 났다"고 했다.

 

"아들 셋 가진 사람은 집이 네 채 있어야 되나 싶더라고요. '네 힘으로 가라'고 하고 싶어도 전세금이 워낙 비싸니 부모가 안 나설 수가 없고. 저처럼 사업도 하고 집도 있는 사람이 이렇게 힘든데, 어렵게 사는 부모는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외국도 이렇게 허덕일까? 취재팀은 선우 부설 한국결혼문화연구소에 의뢰해 미국·영국·중국 결혼 비용을 조사했다. 각국의 2011년 결혼 비용 통계에 해당 국가에서 가장 보편적인 주거 방식에 따라 평균 비용을 더했더니 우리보다 잘사는 미국, 세계적으로 물가 비싼 영국, 고속 성장하고 있는 중국이 모두 우리나라보다 비용이 쌌다.

 

한국결혼문화연구소 유성렬 소장은 "이렇게 결혼 비용이 유별나게 비싸다보니, 다 큰 자녀가 부모에게 손 벌리는 걸 부모·자식 모두 당연하게 여기게 된다"고 했다.

 

문제는 다들 고통스럽다고 아우성치면서도 이런 부담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고려대 사회학과 김문조 교수는 "결혼의 의미가 남다른 탓에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했다.

 

가령 선우 조사를 분석해보니, 결혼 비용이 계속 오르는데도 전셋집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하는 사람은 줄고(200554.1%201246.1%) 내 집 사는 사람은 늘었다(32.1%40.9%). 부모도 노후가 불안하지만,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오르니까 무리를 해서라도 출발을 도와주겠다는 심리다.

 

경기도 시흥에 사는 차영주(가명·57)씨는 맨손으로 출발해 남편(59·건설장비 제조업체 사장)과 함께 35000만원짜리 아파트(132·40)를 마련했다. 중산층으로 올라서 한숨 돌릴 때 아이들 혼기가 왔다. 차씨는 2009년 경기도 광명에 사놓은 땅(330·100)을 팔고 저축 1억원을 헐어 아들(31)에게 3억짜리 전세를 얻어줬다. 2011년 딸(29)이 결혼할 땐 사돈댁에서 집을 해오고, 차씨가 저축 1500만원에 대출 2000만원을 보태 결혼식 비용을 댔다.

 

"30년 넘게 안 입고 안 먹은 돈인데 애들은 '남들처럼 좋은 데서 하고 싶다'고 우겨 속상했죠. 그래도 그애들은 나와 다르게 살아왔으니 어쩔 수 없잖아요. 100세 시대라는데 노후가 걱정스럽긴 하지만 막내(14)도 아들이라 벌써부터 집 해줄 일이 걱정이에요."

 

그러나 취재팀이 만난 젊은이 중에 부모 마음을 절절하게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작년 12월 서울 A호텔에서 결혼한 유지영(가명·28)씨는 연봉 2500만원을 받는 회사원이지만 저축이 없었다. 친정아버지 돈으로 결혼식에만 6000만원을 썼고, 청담동 피부과에서 200만원짜리 '팔꿈치 관리'를 받은 것을 포함해 남들 하는 건 대충 다 했다.

 

"그냥 혼인신고하고 살 거 아니라면 사람들에게 알려야죠. 우리 집이 부자는 아니지만 딸을 남들만큼 결혼시키지 못할 정도로 못살진 않아요. 더 좋은 호텔에서 결혼한 친구가 얼마나 많은데요."    <조선일보 / 2012,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