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양식/시사,칼럼

'역시' 무산된 藥 수퍼판매

풍월 사선암 2012. 3. 6. 21:53

[전문기자 칼럼] '역시' 무산된 수퍼판매

 

감기약·소화제 등을 수퍼마켓에서 살 수 있게 하는 약사법 개정안의 최근 국회 심의 과정을 보면서 "역시나" 하며 가슴을 쳤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약을 껌처럼 쉽게 팔게 해서는 안 된다"며 정부가 수퍼에서 팔기로 했던 67개의 약()'20개 이내'로 줄이도록 법에 못 박았다. 정부와 약사회는 수퍼에선 약을 '하루치'씩만 팔도록 타협했다. "동네 수퍼에서 (약을) 판매해 동네 약국이 부도가 나고"라는 한 국회의원의 발언처럼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해당사자를 위해서' 법안을 손본 셈이다. 그 누더기 법안조차 지난 2일 국회 법사위에서 무더기 결석이란 '국회의원 태업'으로 통과가 무산됐다. "국민 90%의 가정상비약 수퍼 판매 허용 목소리보다 6만명 약사의 힘을 더 무서워하느냐"란 소리가 절로 나온다.

 

도대체 이런 약사회의 로비력과 조직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약국은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해 여·야는 매번 1~2명의 약사를 비례대표로 뽑는다. 게다가 약사회는 약사법 개정안처럼 중요 사안이 생기면 특별회비를 걷고 국회의원들에게 후원금 보내기 운동을 벌인다. 약사회는 선거 때면 대선 후보를 초청하고, 지역 약사회는 신년모임 등에 국회의원을 초빙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공약이나 발언을 내놓도록 한다.

 

상비약 수퍼 판매 금지를 고수하던 약사회가 작년 말 갑자기 상비약 수퍼 판매를 허용하겠다며 꼬리를 내렸을 때 국민은 의아해했다. 여론의 압력이 먹힌 것일까? 그보다는 병원협회가 주장하는 '병원 원내조제 허용' 서명 운동이 변수였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2000년 의약분업 당시 정부는 입원 환자만 병원 내에서 조제토록 하고 일반 환자들은 모두 바깥 약국으로 내몰았다. 병원은 자체 약국과 약사가 있어 애초 의약분업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정부가 병원까지 의약분업 대상으로 끼워넣었고, 약사들은 더 많은 조제료를 챙기게 됐다. 반면 국민은 병원 바깥으로 나가 약을 타는 불편을 겪고, 훨씬 더 비싼 조제료를 지불해야 했다. 그런데 정부가 약사회에 밀려 '약사법 개정'에 실패할 경우, '병원 내 조제 허용' 카드를 내밀 것으로 보여 약사회가 손을 들었다는 지적이다. 약사회장은 작년 말 약사회 이사회에서 "앞으로 전국 약사들이 똘똘 뭉쳐 병원협회가 주장하는 원내조제 등을 잘 방어해야 한다"고 말했다.

 

약사회의 변신 사정이 어떻든 국회에서 약사법 개정이 지지부진하자, 약사회 일부에선 "약의 안전성을 주장하는 단체들과 연계해 전열을 재정비하자"고 나서고 있다. 약사회는 앞으로도 국회나 특정단체만 붙잡으면 기득권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그러나 "밥 먹고 30분 뒤 약 드세요"라는 말 한마디로 복약지도료 760원을 받는 사실에 국민은 고개를 돌리고 있다. 수퍼에선 아르바이트생이 약을 팔 것이라고 비판하지만, 일부 약국에선 무자격 '카운터'가 약을 팔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자기비판' 없이 약사들이 기득권 지키기에만 나선다면 국민과 또다시 일전(一戰)을 겨뤄야 할 날이 올지 모른다.

 

조선일보 김동섭 보건복지전문기자 / 입력 : 2012.03.05

 

 

 

의원들, 약사모임 찾아 "약 수퍼 판매 반대" 충성 경쟁

 

[·야 의원 40여명, 지역 약사회 총회 참석해 국민여론과 정반대 행보]

"2월 국회 걱정 마라" - ·, 중진·초선 안 가리고

겉으로는 말 아끼면서 모임에 가서는 노골적 지지

국민 83% 수퍼판매 찬성하는데- 의원들은 "약사와 하나돼야"

"약국밖서 파는건 포퓰리즘국민들 큰 불편 없다" 주장

 

정부가 2월 국회에서 감기약·해열제 등 가정상비약의 '수퍼 판매'를 위한 약사법 개정을 추진하는 가운데, 이달 들어 국회의원들이 전국적으로 약사 모임에 참석해 "2월 임시국회에서 약사법 개정을 안 할 테니 걱정 마라"는 발언을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약사들은 이달 초부터 전국 시··구 약사회별로 정기총회를 갖고 있는데, 대한약사회 기관지인 '약사공론'은 이 행사에 참석한 의원 40여명의 발언 내용을 소개해왔다.

 

이 내용을 보면 여야, 보수와 진보, 중진과 초선 등을 가리지 않고 의원 대부분이 약사들의 입장을 옹호하겠다고 밝혔다.

 

"2월 국회 걱정 마라"

 

의원들은 약사법 개정에 대해 말을 아끼거나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약사 모임에 가서는 지지 입장을 밝혔다.

 

감기약·해열제 등 가정상비약의 약국 외 판매 추진 여부를 논의한 대한약사회 임시 대의원총회(26일 서울 약사회관)에서 참석자들이 회의 자료를 보고 있다.

 

지난 17일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은 약사회 서울 은평분회에 참석해 "약사법이 2월 국회에서 상정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 올해는 약사들이 불편한 힘을 빼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같은 자리에서 민주당 이미경 의원도 "정부가 왜 이런 무모한 일을 누구를 위해 할까 이해하기 힘들었다""4월 총선에서 다수당이 되면 약사법 개정안을 폐기하겠다"고 말했다.

 

같은 날 서울 마포분회 총회에 참석한 한나라당 강승규 의원은 "제가 국회에서 만난 의원의 70~80% 이상이 (약사법 개정에) 반대 의견을 갖고 있다""(개정안이) 국회로 넘어온다면 약사들이 걱정하는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10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국민의 83%가 상비약 수퍼 판매에 찬성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나라당 홍준표 전 대표는 지난 12일 서울 동대문분회 총회에 참석해 "약을 약국 밖에서 판매토록 하는 것은 절대 반대다""내가 당 대표를 계속 했으면 반대했을 텐데 박근혜 위원장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같은 당 장광근 의원도 "미국은 차를 타고 1시간씩 약국을 찾아다녀야 하지만 우리나라와 같이 약국이 천지인 곳에서 왜 약국 외 판매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우리는 걱정 말고 다른 의원들을 설득하라"고 말했다.

 

민주당 김성순 의원은 지난 14일 서울 송파분회 총회에서 "지금도 국민은 의약품을 구입하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다""미국도 약물 오남용 때문에 수퍼 판매를 후회하는데 왜 미국을 따라가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도 14일 경기 수원시분회에서 "2월 국회에서 약사법 상정을 반드시 막겠다"고 약속했다.

 

"약사들 영향력 커 어쩔 수 없어"

 

약사회 기관지 '약사공론' 관계자는 "우리의 주된 독자인 약사들에게 관심을 끌 만한 의원 발언은 대부분 소개하는데, 아무래도 약사 모임에 와서 하는 발언이니 약사들에게 우호적인 발언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약사회 집행부는 "약국 외() 판매를 전향적으로 수용하겠다"고 밝히고 정부와 구체적인 품목 등에 대해 협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의원들이 전국적으로 약사 모임에 참석해 지지 발언을 하면서, 일선 약사들은 "이길 수 있는데 왜 양보하느냐"고 강하게 반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원들이 내거는 표면적인 이유는 "국민 편익 증진보다 (약 오남용으로부터)안전성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가정상비약을 편의점 등에서 팔면 안전성을 보장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는 지난해 "상비약 약국 외 판매에 따른 안전성 부분은 의학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일반약의 안전성을 이유로 약국 외 판매 대책이 무산되거나 법안 심의가 지연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타이레놀에 간() 독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타이레놀 연간 복용량(2억알)에 비하면 부작용 사례는 549(2010년 기준)으로 0.00027%에 불과하고, 용법·용량을 제대로 지키면 별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약사 모임에 참석해 지지 의사를 밝힌 한 의원은 "지역 약사회분들이 찾아와 지지를 요구하면 들어주지 않을 도리가 없다""국민 다수가 약국 외 판매를 찬성하는 것은 알지만 그건 막연한 요구인 반면, 약사들의 요구는 구체적이고 선거 때 약사들의 표 영향력도 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약사법 개정에 찬성 입장을 밝힌 한나라당 손숙미 의원은 "의원들은 약국이 지역에서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고, 약사회에 밉보이면 선거를 못 치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김민철 기자 / 입력 : 2012.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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