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애송시

回鄕偶書 (회향우서) 고향에 돌아와서 쓰다

풍월 사선암 2011. 1. 9. 13:05

回鄕偶書 (회향우서) 고향에 돌아와서 쓰다

- 賀知章(하지장) -

 

其一

離別家鄕歲月多 (리별가향세월다)

近來人事半消磨 (근래인사반소마)

唯有門前鏡湖水 (유유문전경호수)

春風不改舊時波 (춘풍불개구시파)

 

고향을 떠난 지 많은 세월이 흘러서

돌아오니 알아보는 이 반도 안 되네

오직 대문 앞 맑은 호수만

봄바람에도 변함없이 옛 물결 그대로네

 

其二

少小離家老大回 (소소리가노대회)

鄕音無改鬢毛衰 (향음무개빈모쇠)

兒童相見不相識 (아동상견불상식)

笑問客從何處來 (소문객종하처래)

 

젊어서 고향 떠나 늙어서 돌아오니

사투리는 여전한데 귀밑머리 희어졌네.

아이들은 마주봐도 알아보지 못하고

웃으며 묻네. "손님, 어디서 오셨어요?"

 

 

평범한 시어들로 고향에 돌아온 소감을 28자로 압축하여 아주 간결하고 소박하게 표현을 한 시이다. 고향을 떠나 수 십년만에 귀밑머리 희어져 고향엘 내려오니 고향의 모든 것은 그대로인데 사람들은 자기를 기억하지 못하니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는 심정을 잘 묘사하였다.

 

賀知章(하지장) 659~744

 

자는 季眞(계진), 維摩(유마). 호는 四明狂客(사명광객)으로 浙江省 越州(절강성 월주) 태생 695년 측천무후때 진사에 급제해 현종을 섬겼다. 太常博士(태상박사), 禮部侍廊(예부시랑), 太子賓客(태자빈객), 秘書監(비서감)을 지냈으며, 744년에 귀향하여 병사함. 풍류시인으로 당시 장안에서 그를 비롯한 술을 좋아했던 문인 음중팔선인(飮中八仙人)중의 첫 번째 인물로 언변이 좋고, 시. 문장, 서예에도 능통했다 .

 

두보는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라는 시(詩)에서 “志章奇馬似乘船(지장기마사승선), 안화락정수저면(眼花落井水底眠) 술 취한 하지장의 모습은 마치 배를 탄 듯하고 게슴츠레한 눈으로 우물에 빠지면 그냥 우물밑에서 잠이들도다” 라고 그를 표현하였다.

 

그는 이백과도 절친한 친구로 그를 천상적선인(天上謫仙人- 하늘에서 귀양 내려온 신선)이라 하여 현종에게 그를 천거하였다. 벼슬길도 순탄 하여, 만년에 도인이 되고 싶어서 반세기의 벼슬생활을 청산하고 낙향을 하였는데 은퇴 시 황제가 어시를 하사하고 황태자이하 백관이 전송했다 하니 이만저만 한 복 노인이 아닐 수 없다.

 

퇴임하여 낙향을 할 때 황제가 하사품을 내리고자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니 자기 고향에 있는 호수를 달라고 했다. 하지장은 그 호수를 경호(鏡湖)라 이름짓고 호숫가에 천추관이라는 집을 짓고 여생을 보냈다. 86세에 고향으로 돌아와서 回鄕偶書를 읊었다. 86세를 살았으니 당시로는 대단히 장수를 한 복 많은 노인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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