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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지폐

풍월 사선암 2010. 8. 29. 16:47

6.25사변중 공산군은 침범지역내에서 불법 남발한 지폐를 강제 유통시킴은 물론 공작 자금으로 사용 함으로서 경제질서의 파괴를 획책하였다. 정부는 피침지역에서 불법남발한 적성 통화(敵性 通貨)의 유통을 막고 경제 교란 행위를 봉쇄하기 위하여 1950년 8월 28일 조선은행권을 한국은행권으로 교환하는 제 1 차 통화 조치를 단행하였다. 1953년 1월 16일 제1차 통화조치가 완결되는 기간중인 1951년 10월 한국조폐공사법의 발효와 더불어 1952년 10월 신 1,000원권과 500원권을 인쇄하게 됨으로서 조폐기관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어 그후부터는 은행권 인쇄를 모두 한국조폐공사가 전담하게 되었다.

백원권 1950.7.22

천원권 1950.7.22

오백원권 1952.10.10

신 천원권 1952.10.10


전란으로 인한 막대한 전비지출과 생산활동의 위축, 통화의 대외가치 폭락으로 정상적인 무역 불균형 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수습하고 금융, 생산활동을 안정된 통화의 터전에 올려 놓기 위하여 정부는 1953년 2월 원화에서 환화로 개칭 100대 1의 평가절하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제2차 통화조치를 단행하였다. 미국 연방 인쇄국에서 제조된 이 은행권은 평판 인쇄된 것이었으나 광복후 이 당시까지 발행된 어떤 은행권보다 고급종이를 사용한 뛰어난 화폐였다. 즉 형광물질을 넣어 자외선을 비추면 바탕이나 번호 색상이 바뀌며, 색사(色絲)를 넣어 위조가 어렵게 특수 제조된 것이었다.

십환권 1953.2.17

백환권 1953.2.17

천환권 1953.2.17

일환권 1953.2.17

오환권 1953.2.17


한국은행은 1953년 통화개혁시 미국에서 제조반입하여 발행한 은행권을 국내 제조권으로 대체하기 위하여 1953년 3월 17일에 신 십환권, 같은 해 1953년 12월 18일 신 백환권을 각각 발행하였다. 발행초기에는 신 십환권및 신 백환권 모두 황색 조폐지를 사용하여 발행하였으나 신 십환권은 1953년 12월 15일 부터 신 백환권은 이듬해 2월 1일부터 각각 백색 용지로 바꾸어 발행하였다.

신 십환권(황색지) 1953.3.17

신 백환권(황색지) 1953.12.18

신 십환권(백색지) 1953.12.15

신 백환권(백색지) 1954.2.1


1956년 3월 새로운 액면의 은행권 발행이 이루어져 도안을 약간 변경한 오백환권을 발행하였다. 1957년 3월에는 신 천환권을 발행하므로서 소액 은행권 오환권 및 일환권을 제외하고는 미국제조 은행권을 모두 국내 제조권으로 대체하게 되었다. 1953년 2차 통화조치에 의해 환 은행권이 발행된 이후 1958년까지 발행된 신종 은행권은 9 권종에 달하였으며 특이한것은 이중 오십환권 및 신 십환권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승만 대통령의 초상을 앞면 도안으로 채택한 것이었다.

오백환권 1956.3.26

(외산용지) 신 천환권 1957.3.26

(국산용지) 신 천환권 1957.3.26

개 백환권 1957.3.26

신 오백환권 1958.8.15

오십환권 1958.8.15


1960년 4.19혁명으로 경제의 안정성장을 이룩하기 위한 제반 경제현실화 정책이 실시되자 한국은행은 새로운 경제질서확립을 상징하 는 뜻에서 새로운 도안의 은행권을 발행하였다. 먼저 1960년 8 월 15 일 종전 신 천환권의 도안을 세종대왕으로 변경한 개 천환권을 발행하였고 이어 1961년 4 월 19일에는 역시 세종대왕을 도안으로 한 개 오백환권을 발행하였다.

개 천환권 1960.8.15

개 오백환권 1961.4.19

개 갑백한권 1962.5.16


또한 1962년 5월 16일에는 개 백환권의 도안을 변경한 개갑(改甲) 백환권을 발행하였다. 개갑 백환권은 당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추진을 위한 국민 저축심 앙양을 위하여 저축통장을 들고 있는 모자상을 도안으로 채택하였으며, 전후 양면 모두 한자 사용없이 순수한 한글만으로 표기한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개갑 백환권은 그해 6 월 10일의 통화개혁으로 발행된지 불과 24일만에 유통 금지됨으로써 한국은행권이 발행된 이래 최단기간 유통된 화폐로 기록되었다.

 

 

8.15 해방이후 혼란기의 악성 인플레이션과 냉전체제의 대결로 폭발한 6.25동란으로 굶주림과 폐허 그리고 구정권의 부정과 부패, 무능 등으로 국민경제가 도탄에 빠졌으며, 무기력과 체념이 지배하던 국민의식이 1960년대 부터 점차 확사된 국민의식의 변화와 경제개발 정책이 가속화 되면서 신생 산업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그리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등 모든 분야에서도 괄목할만한 성장을 가져왔으며, 더욱 번영되고 희망찬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정부는 국민경제의 건전한 질서를 확립하고 경제개발 5 개년 계획 수행상의 애로를 제거하기 위하여 1962년 6 월 화폐단위를 환으로부터 원으로 개칭하며 환가 비율을 10분의 1로 절하하는 제 3 차 긴급통화조치를 단행하였다. 그러나 3차 통화조치는 경제적으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단순히 화폐의 명목 가치를 절하하는데 그쳤으며, 화폐사적 측면에서는 현용 원화 체계의 도입이라는 의의를 가졌다고 하겠다. 그리고 3차 통화조치에 의해 발행된 은행권은 영국 THOMAS DE LA RUE CO.에서 제조 반입하여 발행한 것으로서 오백원권 , 백원권 및 오십원권을 제외하고는 모두 평판인쇄 방식에 의해 제조된 것으로 비교적 위조가 용이하여 인쇄방법의 개선이 시급한 문제점으로 대두되었다.

가 오백원권 1962.6.10

가 백원권 1962.6.10

가 오십원권 1962.6.10

가 십원권 1962.6.10

오원권 1962.6.10

일원권 1962.6.10

 

                      (위의6종은 영국 토마스데라루라는 회시사에서 수입해 왔음.)

 

1962년 9월 2 일 한국은행은 영국제조권의 국내제조권 대체를 위하여 나 십원권을 발행하였고 같은 해 11월 1 일에는 나 백원권을 발행하였다. 나 백원권은 종전의 백원권과 같은 규격으로 앞면 도안도 독립문을 그대로 사용하였으나 십원권은 소액거래의 중심권종인 십원권의 품위향상을 위하여 규격을 크게 하는 한편 도안에 있어서도 앞면에 첨성대를 사용하여 한국은행 휘장외에는 뚜렷한 도안소재 가 없었던 제 3 차 긴급통화조치로 발행한 십원권에 비하여 다양하게 하였다. 이어 1962년 12월 1일 소액거래에 있어서 단수(端數)처리의 편의를 위하여 오십전권과 십전권을 발행하였는데 이로써 원화은행권의 권종체계는 8개권종으로 정비되어 통화조치 이전의 환화은행권 7개권종에 각권종은 물론 새로운 고액권으로서 오백원권을 갖게 되었다.

나 백원권 1962.11.1

나 십원권 1962.9.21

오십전권 1962.12.1

십전권 1962.12.1

1965년 한국조폐공사가 새로운 시설을 도입하므로서 요판(凹板)인쇄가 가능하여지자 한국은행은 요판인쇄권의 발행을 추진하였는데 먼저 1965년 8월 14일에는 다 백원권을 발행하고 1966년 8 월 16일에는 나 오백원권을 발행하였다. 다 백원권은 국내 제조된 최초의 요판인쇄권으로 도안의 정교화를 기하고자 앞면도안의 소재를 나 백원권 독립문에서 세종대왕 초상으로 변경하였다. 인쇄방법에 있어서 다 백원권은 앞면만 요판 인쇄하였으나, 나오백원권은 앞뒤 양면에 요판 인쇄하였다. 이어 1969년 3월 21일 한국은행은 오십원권의 도안을 다소 변경한 나 오십원권을 발행하였다. 나 오십원권은 소액권종임을 감안하여 평판인쇄방식에 의해 제조하였는데 이로써 1962년 통화개혁으로 발행된 영국제조권 6 개권종중 주화로 대체된 5 원권 및 1원권을 제외하고는 모두 국내제조권으로 대체되었다.

다 백원권 1965.8.14

나 오백원권 1966.8.16

나 오십원권 1969.3.21

1970연대에 들어서 급속한 경제개발에 따른 거래규모의 확대와 물가상승으로 고액화폐에 대한 수요가 증대 하게 되자 10,000원권및 5,000원권 고액은행권의 발행을 추진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72년 7 월 1 일 오천원권이 발행되었으며 1973년 6 월 12일 만원권을 발행하였다. 오천원권및 만원권은 최고액권이던 500원권에 비하여 액면이 크게 높아지고 위조 방지와 은행권 품질향상을 위하여 한국은행권으로서는 최초로 오천원권은 앞면도안과 같은 율곡 이이의 초상은화(隱畵)를 만원권은 석굴암 보살상은화(隱畵)를 각각 앞면 좌단에 삽입하였다. 1973년 9 월 1 일 새로운 도안의 다 오백원권을 발행하였는데 다 오백원권은 종전 나 오백원권의 전면이 흑색계통으로 되어 있어 사진복사 위변조가 비교적 용이하였던 점을 감안하여 색상을 가급적 다색도로 하는 한편 「한국은행」문자를 부정위치은화로 투입하였다.

가 오천원권 1972.7.1

가 만원권 1973.6.12

다 오백원권 1973.9.1

한국은행은 고액권용지의 국산화와 표준영정도안의 채택을 위하여 1977년 6 월 1일에 나 오천원권 1979년 6월 15일에 나 만원권을 각각 발행하였다. 종래의 가 오천원권 및 가 만원권 등 고액권은 영국산 수입용지를 사용하였으나 은화용지의 국내생산이 가능하게됨에 따라 은행권용지를 국산화하는 한편 이를 계기로 도안의 표준영정채택을 추진하였다. 표준영정문제는 선현의 동상이나 영정을 제작함에 있어 제작처에 따라 그 모습이 상이하게 되어 물의를 빚는 사례를 방지하기 위하여 1973 년부터 영정제작시에는 정부의 사전 심의조정을 받아 제작하도록 하였다. 화폐도안에 사용된 선현의 초상중 다 오백원권 및 천원권의 도안은 정부의 심의를 거쳐 제작한 것이었으나 가 오천원권 및 가 만원권의 경우 표준영정 심의이전에 이미 제작되어 이의 표준영정 대체를 추진하게 된 것이다.

가 천원권 1975.8.14

나 오천원권 1977.6.1

나 만원권 1979.6.15

한국은행은 정부의 승인하에 1982년 1월 화폐체계정비계획을 수립 현용화폐의 규격과 도안을 전면적으로 조정한 새로운 은행권 및 주화를 발행하였다. 향후, 현금자동인출기, 자동정사기 등 자동화에 대비하여 위·변조화폐 감별을 위한 특수화학, 기계감응요소를 강화하고 특히 액면을 표시하는 점자를 첨가하여 맹인의 권종구분이 용이하도록 하였으며, 인쇄 적합도등 지질향상을 도모하고 용지의 강도를 강화하여 선진국 수준으로 화폐의 품질을 높였다. 주화에 있어서는 500원 은행권을 대체하여 500원화를 발행함으로써 자동 판매기 보급등에 따른 고액주화 수요에 부응하여 현재 화종별로 다소 불일치 되어있는 문자 및 숫자의 배열 등 주화 도안의 통일성을 도모하였다.

나 천원권 1983.6.11

다 오천원권 1983.6.11

다 만원권 1983.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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