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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결혼풍속도 개룡남은 NO! 파파리치는 YES!

풍월 사선암 2010. 9. 4. 11:02

新 결혼풍속도 개룡남은 NO! 파파리치는 YES!

 

‘개천의 용’ 전문직보다 직장 시원찮아도 ‘아버지가 부자’여야…

 

“시부모님을 모셔야 한다는 입장에서 볼 때 ‘있는 집’과 ‘없는 집’의 ‘모시다’ 개념이 조금 다르지 않을까요? 있는 집에서는 자식이 부모님을 모실 때 상대적으로 경제적 부담이 적을 것이고 없는 집에서는 더 크겠죠. 홀로 ‘개천의 용’일 경우에 형제를 포함하면 경제적 부담이 커지는 건 자명하고요. 그리고 ‘개룡남은 효자다’라는 측면에서, 없는 집임에도 개천의 용이 되었다는 건 그만큼 부모 혹은 가족의 조력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죠. 따라서 개룡남의 환경 요인은 간과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서울대 포털사이트 ‘스누라이프’의 익명글 중

 

인터넷상에서 ‘개룡남 논쟁’이 뜨겁다. ‘개천에서 용 난 남자’의 준말인 개룡남은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나 자수성가한 남성을 뜻하는 신조어. 실제로 대학 게시판이나 여성전용 포털에서는 ‘개룡남’에 대한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서울대 포털사이트 ‘스누라이프’에는 40~50개의 개룡남 관련 글이 올라와 있다. “개룡남 논쟁 자체가 불편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부모·형제의 (개룡남에 대한) 기대치를 무시할 수 없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여성 포털 ‘마이클럽’ ‘미즈넷’ 등에는 개룡남 남편을 둔 탓에 시부모와 갈등이 심하다는 글에 수십 개의 댓글이 달려있다. 심지어 청소년들이 주로 찾는 게임사이트의 자유게시판에 자신을 “과학고에 다니는 개룡남입니다”라고 소개하며 “장래가 걱정된다”고 토로하는 10대들까지 있다.

 

선우 설문조사서 70%가 “개룡남보다 파파리치”

 

“이 남자 개룡남인 것 같은데…. 혼수·예단 3억에 강남 아파트까지 해가야 하는 것 아녜요?”

A결혼정보회사에 근무하는 5년차 커플매니저 이수진(38)씨는 최근 1~2년 사이 ‘개룡남’에 대한 문의를 자주 받는다고 한다. 이씨는 “개룡남이라도 전문직이면 무조건 ‘오케이(OK)’ 하던 시절은 끝났다”면서 “아무리 의사, 변호사라도 고소득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씨는 “여유 있는 가정에서 자란 전문직 남성은 신랑감으로 당연히 1순위”라면서 “하지만 전문직이라도 개룡남이면 아예 만나볼 생각도 하지 않는 여성도 있다”고 했다. 아직도 결혼시장에서 신붓감은 외모, 신랑감은 직업을 따지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전문직 남성이라고 다 같은 1순위는 아니라는 것이다.

 

“직업만 좋은 남편은 피곤하다 이거죠. 가난한 집안환경에 SKY 나온 전문직 ‘개룡남’과 서울 중위권 정도 대학을 나오고 중견기업을 다니면서도 집안이 빵빵한 남성을 비교하면 당연히 후자가 더 인기있습니다. 한마디로 예전엔 신랑감 고를 때 직업과 집안환경을 8 대 2 비율로 따졌다면 요즘에는 반반이라는 거예요. 특히 개룡남인 경우 부모가 지나치게 혼수·예단 등을 요구할 거라고 지레 겁먹더라고요.”

 

실제로 각종 조사에서는 지난 10여년 전에 비해 ‘이상적인 배우자상’이 달라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내 최대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회원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1997년부터 2003년까지 1위로 꼽혔던 의사·변호사 등의 전문직 남성은 2004년 이후 공무원에 선두를 뺏겼다. 심지어 최근 3년 사이 전문직 종사자는 ‘금융맨’에 밀려 2위에도 오르지 못했다. 듀오 담당자는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전문직 종사자는 개인사업자일 뿐이라는 인식이 강해졌기 때문에 순위에서 밀리는 것”이라면서 “최근에는 의사라도 리스크가 높은 성형외과·피부과 같은 개업의보다는 안정적인 대학병원 의사를 더 선호한다”고 말했다.

 

결혼정보업체 관계자들은 고학력·전문직 여성일수록 개룡남을 기피하는 경향이 더 두드러진다고 입을 모은다. 결혼정보회사 선우가 지난해 7월 의사·판사·한의사·변호사 등 전문직 여성 16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남성을 소개받으면 나도 모르게 조건부터 살핀다’는 질문에 응답자의 63.3%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특히 ‘개룡남과 집안 좋고 유전적인 장점이 많은 남성 중에 어느 쪽을 더 선호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10명 중 7명(70.5%)이 후자를 꼽았다.

 

“잘난 아들에 대한 시댁 기대 부담스럽다”

 

“시부모님은 4남매 중 외아들인 남편에게 모든 것을 걸고 뒷바라지를 했다고 합니다. 대학을 나온 것은 남편뿐이고, 법대 졸업 후 사법고시에 합격해 동네 자랑거리가 되었답니다. (중략) 남편은 가난한 집안의 유일한 태양입니다. 시댁의 자랑스러운 희망이요, 주인공이죠. 경제적인 지출도 문제지만 시간적으로도 또 정신적으로도 얼마나 부담이 되고 피곤한지 모르겠습니다. 조금이라도 소홀할라 치면 집안에 여자가 잘 들어와야 한다는 둥, 옛날엔 효자였는데 결혼하고 변했다는 둥, 시어머니와 시누이들의 등쌀에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습니다.” - 한 여성지 고민상담 코너에 기고한 ‘개천에서 용 난 남편, 시댁 등쌀에 못살겠어요’ 중

 

개룡남을 기피하는 여성 가운데 잘난 아들에 대한 시댁의 기대가 부담스럽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개룡남=효자’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시댁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는 게 불만인 것. B 결혼정보회사 7년차 커플매니저 한모(42)씨는 “부유한 가정에서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자라야 가정도 잘 꾸릴 수 있다고 믿는 여성이 의외로 많다”고 했다. 특히 놀라운 것은 신세대 ‘장모’들의 생각이다. 한씨는 “미혼여성들이 개룡남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딸 가진 엄마들이 개룡남 사위를 더 못마땅해한다”고 말했다. “딸이 시댁에서 눈치 보느라 고생할 것”이라는 게 그 이유다.

 

“1950~1960년대에 태어난 세대만 해도 ‘자수성가’라는 게 가능했죠. 요즘에는 개천에서 용 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잘난 아들 가진 집에서는 얼마나 더 유세를 떨겠느냐면서 엄마들이 더 싫어해요. 불과 5년 전만 해도 딸 손 잡고 와서 의사, 변호사 사위 찾던 엄마들이 이제는 ‘평범해도 좋으니 집안부터 보자’고 하십니다. 얼마 전에는 (신랑감) 직업은 됐으니까 시부모가 100억대 자산가인 집안에 시집보내고 싶다는 어머님이 있었는데 ‘돈은 있다가도 없는 거지만 없다가 있을 확률은 더 낮다’는 말을 듣고 씁쓸하더라고요.”

 

“어렵게 성공했더니 이런 소리 듣나” 성난 남성들

 

대다수 남성은 최근 불거진 개룡남 논쟁에 대해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지난해 8월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트 게시판에 올라온 ‘개룡남은 죽어도 싫다’는 글은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됐지만 다수의 남성들로부터는 ‘불쾌하다’는 반응을 들었다. 미혼여성이라고 밝힌 네티즌이 쓴 이 글은 “개천에서 용 난 남자와 만나면 같이 개천에 들어가게 된다”는 게 주 내용이었다. 남성들은 “그런 환경에서 열심히 해 성공을 해도 이런 소리나 듣고 비참하다” “개천이 당신들이 사는 더러운 강보다 깨끗하다”고 반박했다. 특히 “이렇게 따지는 여자들은 얼마나 대단한지 그게 더 궁금하다” “남자 스펙 잴 때마다 자존심 상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최근에는 대놓고 ‘파파리치(Papa+Rich의 합성어)’의 일상을 소개하는 케이블 TV의 리얼리티 프로그램도 등장해 ‘개룡남을 싫어하는’ 요즘 젊은 여성들의 취향을 파고들고 있다. ‘파파리치’는 한마디로 부자인 아빠 덕에 호강하면서 사는 ‘도련님’들을 가리키는 말로 개룡남과 대척점에 서 있다. 결국 방송이 잠정 중단된 이 프로그램은 제작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 대다수 네티즌에게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 프로가 소재로 삼은 파파리치에 대한 남녀의 시각차이는 뚜렷했다. 남녀 만남을 주선하는 회사인 ‘프렌밀리’가 20세에서 39세의 미혼남녀 1129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파파리치’에 대해 여자는 대부분 흥미롭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남자는 대부분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파파리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여성 응답자 2명 중 1명(56.4%)은 “드라마가 아닌 진짜 상류층의 생활을 볼 수 있다는 점이 긍정적”이라고 답했지만 남성 응답자 82.7%는 “계층 간 갈등만 조장할 것”이라며 부정적이었다. ‘대한민국 상위 1%의 리얼한 일상이 궁금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선 여성 응답자의 65.5%가 “진짜 상류층들은 어떤 삶을 사는지 궁금하다”라고 답했지만 남성의 60.34%는 “별로 궁금하지도, 알고 싶지도 않다”고 답했다.

 

남편보다 시아버지 스펙을 따지는 시대

 

결혼정보회사 비에나레 이경 실장은 개룡남 기피현상을 불안정한 경제상황 속에서 결혼으로 재테크하는 ‘혼테크(결혼+재테크의 합성어)’족이 늘어나는 결과라고 설명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자수성가한 남성들은 결혼시장에서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남편감으로 인식됐지만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가 닥친 이후 인기가 뚝 떨어졌다. 결혼을 계기로 최대한의 경제적 이익을 내려는 여성들이 주식에 투자할 때와 마찬가지로 상대의 리스크부터 따지기 시작한 결과다. 이 실장은 “신랑감보다 시아버지 스펙을 더 따지는 것도 개룡남 기피현상과 함께 나타난 변화”라고 꼬집었다. 시아버지의 경제력과 사회적인 위치가 결혼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경 실장은 “여성들은 시아버지가 얼마나 지원해주느냐에 따라 출발선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면서 “특히 시부모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집 장만은 어렵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실제로 결혼적령기인 20대 후반~30대 초반의 남성이 자기 힘으로 집을 사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이 실장은 “문제는 결혼 후 함께 꾸려나가기보다는 모든 게 갖춰져 있는 상대를 만나고 싶어하는 여성이 많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정 듀오 클래식팀 팀장은 “개룡남에 대해 비호감을 나타내는 미혼여성이 부쩍 늘어난 것이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자수성가형 남성의 의지력이나 강인한 생활력은 여전히 높이 살 만하다”고 말했다. 개룡남의 경우 어려운 환경을 딛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케이스들이기 때문에 책임감, 인내심, 개척정신이 강한 장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수정 팀장은 “결혼 상대자를 찾는 데 있어 개룡남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보다는 미래 가치와 잠재 능력이 뛰어난지, 책임감이 강한 사람인지를 알아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서 “상대방의 조건만 따지지 말고 나부터 결혼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심선혜 기자 fresh@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