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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기행편① 서대문형무소역사관

풍월 사선암 2010. 8. 3. 18:50

아픈 역사의 흔적을 따라

서울, 한눈에 보기…역사문화기행편①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우리 근·현대사 격동기의 수난과 민족적 고통이 고스란히 서려 있는 아픈 역사의 현장,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찾아 나선다. 서대문독립공원에 들어서면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 모양의 독립문(사적 제32호)이 맨 먼저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 독립문은 갑오개혁 이후 자주독립의 결의를 다짐하던 독립협회에 의해 중국과의 사대외교의 상징이던 영은문(迎恩門)을 허물어낸 자리에 세워졌다고 한다. 하지만 독립문에 담긴 이 같은 민족자강에의 의지는 이내 일본제국주의의 교묘한 계략에 의해 희석되고 만다.

 

일본의 침략이 가속화되면서 범민족적 독립운동이 전개되어가자 일본 제국주의는 우리 민족의 독립에 대한 의지를 억누르기 위해 1908년 이 독립문 바로 뒤편에 최초의 근대식 감옥인 <경성감옥>을 만든다. 이렇듯 일제는 민족자주독립의지의 상징적 건축물인 독립문을 마치 독립투사를 투옥하는 경성감옥의 정문인 것처럼 배치시킴으로써, ‘독립운동은 곧 감옥행, 독립투사는 범죄자’라는 고도의 심리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우리 근대사에 등장한 <경성감옥>은 이후 일본 군부가 감옥을 한민족 탄압의 주요 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새로운 감옥들을 증설해나감에 따라 <서대문감옥>, <서대문형무소>로 불리다가 해방 후 <서울형무소>, <서울구치소> 등으로 불리며, 그 이름의 변화만큼이나 수많은 민족수난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독립 운동의 성지,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독립문을 지나 새롭게 조성된 산책길을 따라 서대문독립공원의 드넓은 광장을 거슬러 오르면 순국선열 추념탑, 3.1독립선언 기념탑, 서재필선생 동상, 독립관,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등 많은 역사유적들을 마주치게 된다. 독립공원의 유적 하나하나가 안겨주는 숙연한 기운을 마음에 담고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들어선다. 이 역사관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제에 맞서 싸운 애국선열들의 넋이 서려 있는 독립 운동의 성지일 뿐만 아니라, 방문객들에게는 항일 독립운동에 대한 일본 제국주의의 탄압과 고통의 현장들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한 교육장이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원래 15개동이었던 옥사를 역사성과 보존가치를 고려하여 7개 동만을 원형대로 보존하고 있는데, 그나마도 지금은 개보수 및 복원 공사가 한창이다. 현재 진행중인 전시관 옥내외 공사로 인하여 여러 전시물들을 옥사로 이전하여 전시하는 등 전반적으로 어수선한 와중에도, 서대문형무소의 담장과 망루 등은 일제 강점기 당시의 모습을 고이 간직한 채 이곳이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혹독한 수형생활을 치르던 감옥이었음을 넌지시 알려준다.

 

옥사를 감시하기 위해 만든 건물이자 수형자들에게 끊임없이 세뇌교육을 시키던 공간 ‘중앙사’만이 아닌 일반옥사 곳곳에도 일제의 입장에서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 특수범죄자로 분류된 독립운동가들을 모질게 탄압한 흔적들이 가득하다. 이밖에도 수형자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군수용품을 작업토록 하였던 공간 ‘공작사’, 나병에 걸린 수형자들을 따로 가두어 두었던 ‘한센병사’, 그리고 여성독립투사들을 별도로 가두기 위해 만들어진 ‘유관순 지하 감옥’까지, 역사박물관에서는 그 당시 제국주의의 허상에 사로잡혀 있던 일제의 만행과 이곳에 갇혀 지내야 했던 독립 운동가들의 비참한 옥중 생활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가혹한 시대의 현실을 비추어주던 거울, 옥중 문학

 

체험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공작사의 한쪽 벽면에는 한용운의 시 '무궁화를 심고자' 등 문인들의 액자가 다수 걸려 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조국 독립을 향한 열망으로 강압적인 일본 군부세력과 맞서 싸우다 투옥되어 모진 고초를 겪었던 애국지사 중에는 한용운, 심훈, 이용학, 그리고 함석헌 등 다수의 문인들도 포함되어 있다. 특히 만해 한용운의 '무궁화를 심고자', '설야'를 비롯하여, 소설가 심훈의 '옥중에서 어머니께 올리는 글월' 등의 문학작품들은 일제 강점기라는 가혹한 현실을 우리에게 비추어주며 당시 옥중 생활의 비인간적 상황을 조금이나마 짐작토록 해준다.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심훈의 '옥중에서 어머니께 올리는 글월'의 배경도 바로 이 곳 서대문형무소다. 우리 민족의 저항이 점차 강해져감에 따라 더 많은 애국투사들을 강제 수감해야 했기에 일제의 계속적인 감옥 증설에도 불구하고 감옥은 절대적으로 부족하였다. 당시 감방의 현실은 문자 그대로 짐승의 우리와 같은 상황이었다. 평당 7.9명의 애국지사들이 수용되어 누워서 잘 수조차 없어 ½ 또는 ⅓씩 교대로 자야 했을 정도로 비좁았고, 햇빛과 통풍이 잘 되지 않아 어둡고 습기와 악취가 가득 찼으며, 심지어 용변시설조차 갖추어지지 않아 변기통을 두고 살아야 할 정도로 처참한 감방의 현실에서 수감자들은 인간 이하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 같은 열악한 감옥의 실정에 배고픔과 모진 고문, 그리고 처형의 공포 등이 더해져 극단적인 상황에 놓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심훈의 편지글에는 인간적인 불평과 두려움의 토로보다는, 오히려 감방에 갇힌 자신을 걱정하는 어머니를 안심시키려는 작가의 효성과 조국독립을 향한 뜨거운 열망이 절절이 우러나와 읽는 이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든다.

 

옥중에서 어머니께 올리는 글월

 

(전략) 어머니! 날이 몹시도 더워서 풀 한 포기 없는 감옥 마당에 뙤약볕이 내리쪼이고, 주황빛의 벽돌담은 화로 속처럼 달고 방 속에는 똥통이 끓습니다. 밤이면 가뜩이나 다리도 뻗어 보지 못하는데, 빈대, 벼룩이 다투어 가며 진물을 살살 뜯습니다. 그래서 한 달 동안이나 쪼그리고 앉은 채 날밤을 세웠습니다. 그렇건만 대단히 이상한 일이 있지 않겠습니까? 생지옥 속에 있으면서 괴로워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누구의 눈초리에도 뉘우침과 슬픈 빛은 보이지 않고, 도리어 그 눈들이 샛별과 같이 빛나고 있습니다.(중략)

 

어머니! 어머니께서는 조금도 저를 위하여 근심하지 마십시오. 지금 조선에는 우리 어머니 같으신 어머니가 몇 천 분이요, 또 몇 만 분이나 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어머니께서도 이 땅의 이슬을 받고 자라나신 공로 많고 소중한 따님의 한 분이시고, 저는 어머니보다도 더 크신 어머니를 위하여 한 몸을 바치려는 영광스러운 이 땅의 사나이외다. (이하 생략)

 

비단 심훈의 편지글뿐만 아니라 목숨을 내걸고 독립을 외치던 애국지사들의 옥중 문학작품에는 공통적으로 자신을 낳아준 친어머니 이외에도 자신을 존재하게 한 조국이라는 더 큰 어머니를 향한 간절한 절규가 담겨 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또 하나의 어머니인 조국을 되찾기 위해 하나뿐인 자신들의 소중한 삶을 초개와 같이 내던지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애국지사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음을 저절로 떠올리게 하는 역사의 증언대이다. 그 누구라도 <서대문형무소역사관>과 <독립공원> 곳곳을 돌아보면 창살 하나 벽돌 한 장마다 얼룩져 있는 우리 역사의 아픈 상흔을 통해 평소 잊고 지내던 조국과 자유의 소중함을 다시한번 깨닫게 될 것이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따라잡기

 

위치

서울시 서대문구 의주로 247 (현저동 101번지) (우)120-080

 

교통편

1)지하철: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5번 출구

2)버스 : 현저동 또는 독립문정류장에서 하차

ㆍ간선(파랑)버스 : 471, 701, 702, 703, 704, 720, 752

ㆍ지선(초록)버스 : 7019, 7021, 7023, 7025, 7712, 7737

ㆍ광역(빨강)버스 : 9701, 9703, 9705, 9709, 9710, 9711, 9712

 

개장시간

오전 09:30 ~ 오후 18:00 (동절기에는 1시간 단축)

매주 월요일 휴무(공휴일일 경우 다음 날 휴무)

 

입장요금

일반 1,500원, 청소년/군인 1,000원, 어린이 500원

단체(30인 이상) 20% 할인

 

안내서비스

단체관람의 경우 예약하면 도슨트(Docent : 박물관 전문해설가)의 전문적인 안내 및

한국어, 일본어 그리고 영어 등 해설서비스 제공

 

연락처 (02) 360-8590~1 / FAX : (02) 363-9752

홈페이지 http://www.sscmc.or.kr/culture2/default.a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