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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기행편③ 서울역

풍월 사선암 2010. 8. 3. 19:11

서울역 옛날과 지금은

역사문화기행편③ 서울역

 

서울역 시계탑 시계는 째깍째깍 뒤로 간다

 

유안진 시인의 시처럼 정말 서울에 있으면서 서울의 것이 아닌 그런 공간이 서울역이다. 이곳은 팔도강산 모든 이들에게 고향역 같이 정든 역이다. 누구에게는 여행길, 또 누구에게는 퇴근길, 또 그 누구에게는 고향으로 가는 길이다. 핸드폰 없던 시절, 사람을 만날 시에는 언제나 서울역 시계탑 앞에서 만나야 했다. 너무 넓어서 찾기 힘들어 만나기보다는 엇갈리기 일쑤였던 서울역. 결국 그립던 얼굴 만나지도 못하고 그냥 기차 시간에 쫓겨 고향 내려가기 바빴던 서울역. 언제나 각지 사람들로 붐비는 만원의 서울역. 서울역사의 묵은 먼지와 손때 속에는 그런 사연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서울 중구 봉래동 2가 122번지에 위치하는 서울역은 사적 제284호로 지정된 건물이다. 서울역 건물은 일본이 중국 대륙 침략의 발판으로 경의선과 경원선을 이용하기 위해 1922년 6월에 공사하여 1925년에 완공한 경성역사에서 출발했다.

 

지하 1층과 지상 2층의 돌과 벽돌을 혼합한 건물은 서양의 18세기 절충주의 양식에 의해 지어졌다. 건물의 평면은 중앙부에 큰 홀을 두고, 그 앞쪽에 2층 높이의 큰 현관을 외부로 돌출시켜 입구로 삼았으며, 홀 좌우에 2층 높이의 곁채로 연결하고 여기에 2층 건물을 덧붙였다. 지붕 앞 옆에는 오똑한 탑을 세우고, 구리판으로 씌운 돔(dome) 지붕을 덮었다.

 

이후 6.25 전쟁으로 파괴된 것이 복원된 뒤, 군사쿠데타, 80년대 민주항쟁 등 질곡의 근현대사를 묵묵히 지켜왔던 서울역. 건물의 외형은 신축 당시 원형 그대로인데, 수도 서울의 급격한 발전과 함께 늘어나는 수송량을 감당하기 위하여 1960년대 와서는 남부 서부 역사를 신설하게 된다.

 

1988년 9월에는 드디어 신 서울역사가 생기면서 구역사는 본역과 연결해 잠시 쓰이다가 차츰 노숙자들의 아지트 같이 방치되면서 사실상 역사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그래서 한때 폐쇄되었다가 2007년부터 다시 시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으로서의 잠재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9년 현재, 구 서울역사는 원형복원 공사에 한창이다. 아마 내후년 봄쯤이면 새로운 모습으로 시민들에게 선보일 모양이다. 따라서 지금 근처에 가면 가림막이라는 옷을 입은 서울역의 낯선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가림막에는 이 건물이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지나오면서 겪은 애환을 담은 듯 사진들이 앨범처럼 붙어 있다.

 

시와 풍수로 본 서울역

 

구 서울역이 1925년에 지어질 당시 이름은 남대문 정거장이다. 이 남대문 정거장을 지으면서 더불어 방화 부적이 든 물항아리를 상량할 때 올렸다는 얘기가 풍문에 전해지고 있듯이, 서울역은 풍수지리학상 양(火)이 센 곳이라고 한다.

 

1988년 새 역사 건립 당시, 지하지상 30층이냐, 지하지상 33층을 짓느냐는 여론이 있었다. 이는 양에 세다는 음의 극수인 3+3=6으로 풍수 전통을 살리고, 또 수도 서울의 중심역답게 모든 것을 대표하는 상징적 숫자인 33을 살린다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공간을 수호할 수 있다는 개념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서울역은 풍수전통상 화(火)에 속하고, 이 화란 모이는 것보다 흩어지는 형상을 취한다. 그래서일까? 서울역은 항상 물처럼 흐르는 공간이다. 삶도 흐르고 시간도 흐르고 역사도 두 가닥 레일을 타고 흐르는 시간의 공간이자 역사의 공간이 바로 서울역이다.

 

서울은 풍수에서 관악산이 화산이기에 서울을 보호하기 위해 불은 불로 막는다는 맞불을 붙인다는 뜻에서 숭례문의 현판을 세로로 세웠던 도시다. 그런데 서울역 또한 화차(火車)였으니...그 당시 길게는 남대문에서 청파 다리까지, 그리고 폭은 만리현에서 양동에 있는 남관제묘까지 무려 11만평이나 되는 큰 공사인지라 야기되는 문제가 하나둘이 아니었다고 한다.

 

첫째, 천상천하 유아독존 임금님의 수원 참릉길이 잘리게 되어서 불경 막심이요, 둘째 남관제묘의 지맥이 끊어지게 되니 큰일이요, 이에 남지에 화차가 머문다는 것은 서울을 불바다로 만드는 소치라 하여, 무녀들이 대거 동원되어 남대문역 공사 현장에 나타나서 연좌데모로 공사를 방해했다고 전한다. 이에 조정의 대신들까지 나서서 참릉길을 다치지 않게 하고 당시 묻혀 있던 남지를 다시 파 놓는 것으로 민심을 수습하였다는 기록이다.

 

얽혀있는 레일에 얹혀 있는 열차들은

다 신기하게 빠져 나가네

 

잡지 사는 아저씨 분홍 보따리 할머니

떠나가는지 돌아가는지 음음

 

내겐 설레는 여행길 또 누구에겐 퇴근길

또 누구에겐 정든 고향 길

 

오랜만에 온 서울역 여전히 북적이는 역

맥주에 오징어 꼭 땅콩을 사야해

 

오랜만에 벗어나요 가쁘게 숨 쉬는 서울

돌아올 땐 또 반가운 회색 빛

 

어디 어디에 서는지

천안역엔 호도과자 대전역 우동은 여전한지 음음

 

열차의 리듬에 맞춰 나의 휴식을 시작해

변하지 않은 칙칙 폭폭폭

 

<서울역>-김광진, 유희열, 하림 노래

 

우리나라의 중앙, 서울의 성문과도 같은 서울역

 

우리나라 사람들은 상호를 지을 때 제일 많이 쓰는 단어가 중앙이고, 그 다음이 서울이라고 한다. 서울은 옛부터 우리나라의 중앙이다. 속담에 말은 태어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이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있듯이, 서울역은 서울을 떠나는 서울 사람들보다 확실히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목소리로 항상 시장과 같은 곳이다.

 

<경현록>에 "서울은 모든 지역의 근본이요, 임금은 모든 백성의 모범이니 서울에서 하는 일은 모든 지역에서 모두 본받을 것이며, 임금이 좋아하는 바는 모든 백성이 모두 하고 싶어할 것이다"라고 적혀 있듯이 오늘날도 다르지 않다. 각 지방 사람들이 대학과 취직을 선호할 때 가장 1순위 희망지역은 서울이다. 서울은 변방이 아닌 중앙, 이 중앙으로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은 자연질서처럼 거부할 수 없는 것 같다.

 

서울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통과하는 서울의 성문과도 같은 서울역의 원형 복원은 서울에 있어서 서울 것이 아닌 것처럼 아무쪼록 모든 국민이 소망하는 문화공간의 역할을 하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시간이 모든 것을 문화유산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 자신이면서도

나 아니게 사는 나처럼

서울이면서도 서울이 아닌 여기는

세상의 한복판

벌집 쑤신 듯

팔도의 목청 제 빛깔대로 잉잉거리는 여기는

바람 일고 물결 엉키는 가슴팍도 한가운데

뒤웅박팔자들 어긋목지는 여기는

만남은 헤어짐과 떠남은 돌아옴과

동행되는 나란한 철길에서

문득 터득되는 세상살이의 이치

나 자신이면서도

나 아니어야 살 수 있는 나처럼

서울이면서도 서울이 아니어야 구실하는

역아 역아 서울역아.

 

<서울역>-유안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