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월의 쉼터/고향사선암

산으로 간 당신 - 일구삼삼

풍월 사선암 2009. 6. 17. 17:50

 

산으로 간 당신 - 일구삼삼


전봇대 하나 서 있는 골목길 늦은 밤에

비틀거리며 걷고 있는 당신은

삶의 뒤안길에 자빠지고 허덕이는

탕아의 모습이었지요.


어스름한 저녁 녘

식당 한 켠에 졸고 있는 당신은

절망-그것이었지요.


전철 유리창을 무심히 응시하는 당신은

이미 이 세상의 미련은

잊은 지 오래이었지요.


온통 뒤죽박죽이 된 시간의 편린 속에

당신의 인생은

쓰레기통에도 쓸어 넣을 수 없었던

상처 덩어리이었지요.


눈 들어 고여있는 얼룩진 방울에는

어느새 山이 다가와 감싸고 있네요.


한줌의 바람이

떨어진 나뭇잎들을 일으킬 적에

당신의 눈동자에는 산릉들이 일렁거리고

山그림자 드리워진

먼 곳을 응시하는 당신에게서

그리움의 화신을 보았답니다.


늘 고개 숙여 땅만 향하던 당신이

山에만 가면 하늘 보며

그렇게 도도한 건 웬일인가요.


장돌뱅이처럼 수다와 위선을 부리던 당신

당신이 돌아와 다시 말을 잊으면

당신은 벌써 山으로 달려가고 있었지요.


찌들어 허기진 당신

당신의 소금기 하얀 바지춤에서

어찌

초라한 옛 당신을 상상이나 하겠어요.


억새풀 흩날리는 바람재에서

배낭에 기대어 단풍에 물든 당신

당신의 얼굴에는 아스라한 미소가

흐르고 있었지요.


산길을 돌아

그리움처럼 서 있는 야생화

돌아보고 또 돌아보던 당신

당신은 시려오는 가슴을

상념 속에

묻어야 했지요.


당신이 돌아오면

먼지 이는 산모퉁이 신작로에서

어둠이 깔린 저편 고개 마루에서

당신이 돌아오면

모닥불 저만큼에 지피우고

바위에 기대어

당신의 그 긴 이야기를 듣고 싶네요.


쓰러지고 고꾸라져

안부에 쳐 박혀 있었던

당신의 모습과

물 한 모금 목에 붓고 털썩 주저앉아

바라보는 서편 하늘에 구름과

그 아래 빨간 감나무들이 서있는

산동네 이야기와

억수로 퍼붓는 소나기를 맞으며

천둥번개에 가슴 졸였던

당신의 이야기를.....


그래도 당신은

이윽고 아침이오면

다시금 훌쩍

山으로 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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