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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승부 예찬

풍월 사선암 2009. 6. 6. 10:45

[삶의 향기] 승부 예찬

 

일본 막부 시대, 제자백가에 통하고 천문에 정통한 야스이 산데쓰란 바둑의 고수가 있었다. 그는 “바둑판 361로가 우주의 형상을 그린 것일진대 그 전국을 다스리는 가장 긴요한 요충은 태극에 해당하는 한가운데 천원이라야 마땅하다”고 항상 주장했다. 그러다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내가 첫수에 천원을 차지하고 두면 세상 누구한테도 질 리가 없다.”


산데쓰는 가문의 흥망을 걸고 쇼군 앞에서 두는 어성기에서 본인방 가문의 대표인 도샤쿠를 상대로 드디어 천원 바둑을 시도했다. 그러나 결과는 대패였다. 이후로도 실패를 거듭한 산데쓰는 결국 바둑을 떠나 천문으로 직업을 바꿔버렸고 이곳에선 일본 역사에 남을 업적을 이룬다.


바둑판에서 좌표로 ‘3의 3’에 해당하는 자리가 있다. 위치가 너무 낮고 비루한 감이 있어 화점이나 소목처럼 이름조차 얻지 못하고 지금까지도 그냥 ‘삼삼’이라 불리는 곳이다. 하여 바둑의 최고 가문인 본인방가에서조차 이곳에 포진하는 것만은 금기로 여겼다.


먼 훗날 사카다란 대(大)고수가 첫수 또는 세 번째 수로 삼삼을 두어 승리하고, 연전연승의 일인자 조치훈 9단도 삼삼을 즐기면서 상황은 일변했다. 오랜 세월 본인방가의 귀문(鬼門)이었던 삼삼이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당당히 포진법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나는 가끔 바둑이 만약 승부가 아니고 예술이나 정치처럼 제3자에 의해 평가받는 것이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하는 쓸데없는 상상을 해 보곤 한다. 바둑계는 아마도 천원파, 화점파, 소목파 등으로 나뉘어 덧없는 논쟁을 거듭했겠지…하지만 가장 이상적이고 가장 당당한 이론을 갖춘 천원파가 대세를 장악했을 것이고 잔돈푼이나 챙기는 삼삼 따위는 이미 흔적도 없이 말살되었겠지…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좀 더 비약하자면 이창호 바둑은 ‘둔하고 느려 감흥이 없다’는 이유로 유행 한번 타보지 못했을 것이고, 이세돌 바둑은 ‘패기는 넘치지만 아직 바둑의 깊이를 깨닫지 못했다’는 비평과 함께 덜 익은 감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전혀 다른 인물들이 바둑의 대가로 군림하고 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농후하다. 고흐 같은 절세의 화가가 생전에 그림을 딱 한 점밖에 팔지 못했다는 사실을 봐도 시대의 안목이란 유행 따라 힘 따라 왔다갔다하는 것이고 당대 사람들은 그것이 희극이란 사실조차 알 수 없는 노릇이니까.

 

바둑은 다행히 즉각 승부가 나는 것이어서 논란이 필요 없다. 다시 말하면 ‘파’가 없다. 좌파도 우파도 없고 시시각각 변해가는 상황에서 모든 시선은 오직 ‘지금 이 상황의 최선이 뭐냐’는 것에만 집중된다. 선악은 금방 가려진다. 그래서 천원은 화려하지만 헛된 우상이고 삼삼은 누추하지만 인정해야 할 현실임이 드러나고야 만다. 이창호 9단이나 이세돌 9단이 당대에 자신의 천재를 고스란히 인정받을 수 있는 것도 어찌 생각하면 다 ‘승부’ 덕이라 할 수 있다.


최근 한국 바둑의 일인자인 이세돌 9단의 돌출 행동과 그에 따른 징계 여부를 놓고 바둑 동네가 시끄럽다. 옳고 그름을 다 제쳐두고 이 9단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다. 시대와 조우하지 못한 불우한 천재는 얼마나 많은가. 당신은 다행이다. 승부세계에 살아 내가 최고임을 증명할 수 있으니 행복한 천재다. 그러니 다른 소소한 것들은 좀 잊어도 되는 것 아니겠는가.


[중앙일보 박치문 바둑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