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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에 위기탈출 승부수 있지요

풍월 사선암 2009. 6. 2. 23:35

 

“반상에 위기탈출 승부수 있지요”

 

바둑과 경영 모두 수읽기가 핵심이다. 바둑 역시 의사결정의 연속이라고 표현할 수 있고, 과정에서 미래 예측의 기술이 중요하다.


열아홉 줄 반상 위에 인생이 있고, 경영이 있다. 한 수를 위해 고심하는 바둑기사의 모습은 매일매일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경영자들의 모습과 닮았다.


바둑기사를 반상의 CEO라 부르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그래서인지 바둑을 예찬하는 CEO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두 명을 꼽자면 구자홍 LS그룹 회장과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이 있다. 구 회장은 바둑이 “흑백이 조화되면서 무한한 세계를 창조한다는 점에서 기업의 전략경영, 가치혁신경영과 그 맥을 같이한다”고 밝힌 바 있다.


안 의장 역시 자신의 책 《영혼이 있는 승부》를 통해 ‘부분적인 이익보다 전체 국면을 보는 태도’, ‘이론을 체화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점’, ‘요소를 차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전략’ 등 세 가지를 바둑으로부터 배웠다고 기술하고 있다.


최근 《바둑 읽는 CEO》라는 책을 펴낸 정수현 명지대학교 바둑학과 교수는 이외에도 “바둑을 통해 경영자들은 미래 예측의 기술을 터득할 수 있다”고 말한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면 경영 현장에서 ‘장고 끝에 악수’를 두는 실수를 범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경영자라면 당연히 탐나는 기술이다.


그렇다면 바둑에서 어떻게 미래 예측의 기술을 배울 수 있을까.

정 교수는 ‘축도 모르고 바둑 두지 마라’는 바둑 격언을 먼저 꺼낸다. ‘축’이란 상대를 대각선으로 몰고 가는 유명한 수법으로 미래 예측능력이 없이 축으로 몰리면 크게 잃는다.


따라서 상대가 내 돌을 축으로 몰 경우 어떻게 될 것인가를 내다보지 않고는 바둑을 둘 수 없다는 말이다. 이처럼 한 수를 두기 위해 몇 수 앞을 내다 봐야 하는 것이 바둑이다.


승리에 대한 집착이 자충수 불러

정 교수가 바둑과 경영의 유사성에 천착하기 시작한 것은 CEO를 대상으로 하는 유명 웹사이트로부터의 강연 요청 때문이었다.


웹사이트 측은 ‘바둑과 경영’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부탁했고, 정 교수는 강연을 준비하면서 바둑과 경영이 통하는 점이 많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다.


바둑은 대국자가 바둑돌을 적재적소에 투입하는 ‘운석(運石)’을 통해 경기를 조율하는 것이 기본이다. 기업의 CEO가 조직의 운영을 통해 생산과 판매 등의 활동을 펼치는 것과 비슷하다.


정 교수는 “바둑이나 경영 모두 어떻게 운영의 묘를 살려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는 점에서 비유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정 교수는 또한 “바둑이나 경영 모두 수읽기가 핵심이라는 점에서도 닮았다”고 말한다. 바둑 역시 의사결정의 연속이라고 표현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미래 예측의 기술이 중요하다는 점이 기업을 경영하는 과정과 흡사하다는 뜻이다.


이러한 유사성 때문에 바둑의 격언이 경영의 격언으로 그대로 치환되기도 한다. 여러 격언 중 정 교수는 바둑을 잘 두기 위한 10계명이 담긴 <위기십결(圍棋十訣)>에 첫 번째로 나오는 ‘부득탐승(不得貪勝)’, 즉 ‘승리를 탐내면 이기지 못한다’는 격언을 예로 든다.


정 교수는 “경영 현장에서 경쟁에 대한 과한 집착 때문에 자충수 혹은 무리수를 두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처럼 바둑에서도 승리를 하기 위해선 마음을 비우라”고 말한다.


실제 대국에서도 승부에 대한 집착으로 경기를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자리에서 판을 보라’는 의미의 ‘반외팔목(盤外八目)’, ‘자신의 세력이 약할 때는 화평책을 취하라’는 뜻의 ‘세고취화(勢孤取和)’, ‘상대를 얕보면 진다’는 뜻의 ‘경적필패(輕敵必敗)’, ‘바둑판 앞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라’는 뜻의 ‘반전무인(盤前無人)’, ‘작은 이익은 버리고 큰 이익을 추구하라’는 뜻의 ‘사소취대(捨小取大)’와 같은 반상 위의 격언들은 꼭 바둑판 앞에서만이 아니라 인생의 여러 현장, 경영의 여러 현장에서도 반드시 귀 기울여봄 직한 말들이다.


상대의 기풍을 알아야 승리

이기기 위해선 전략과 전술이 필요하다. 바둑이나 경영만이 아니라 모든 경쟁관계에서 그렇다. 전력과 전술은 상대방을 탐색한 후에 나오는 것이 보통이다.


정 교수는 “대국에서 승리를 하기 위해선 먼저 상대의 기풍(棋風)을 알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기풍은 기사들이 저마다 바둑을 두는 스타일을 이르는 말이다.


이를테면 이창호 9단은 신산(神算)이라는 별명이 말해 주는 것처럼 오래 곱씹으며 계산하는 스타일이다. 때문에 장기전으로 갈수록 이창호 9단을 이기기 힘들어진다고 한다.


이세돌 9단은 정반대의 기풍을 가지고 있다. 초반부터 강력한 공격력으로 밀어붙이는 대마불사(大馬不死)형이다. 조훈현 9단은 제비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그만큼 대국을 빠르게 진행하는 스타일이다.


이처럼 상대마다 특유의 기풍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만 승리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 정 교수의 생각이다.


경기불황기에 대처하는 경영자의 자세에 대해서도 바둑이 가르침을 줄 수 있을까.

정 교수는 “불리한 상황이 되면 보통 둘 중 하나를 택하게 된다”고 말하는데, 그 두 가지 방법은 승부수를 던지거나 인내심을 발휘해 다시 올 기회를 기다리는 방법이다.


정 교수는 “불리한 상황에서 승부수를 던지는 것은 너무 위험부담이 큰 선택”이라며, “CEO들은 위험부담이 있는 선택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신 정 교수는 이창호 9단의 기풍을 설명하며 ‘인내의 전략’을 설파한다.

이때의 인내는 무조건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다. 새롭게 도약할 기회를 엿보는 적극적 행위이다.


정 교수는 “이창호 9단은 불리한 상태에서도 끊임없이 바둑판의 형세를 판단해 현재의 상황을 점검하는 일을 했다”며, “그렇게 마침내 도약의 기회를 잡고 승리를 거두는 것이 이창호 9단의 주특기였다”고 말한다.


정 교수는 불황기의 CEO들도 이창호 9단의 전법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이코노믹 리뷰 / 이재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