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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의 기원

풍월 사선암 2009. 6. 2. 23:45

  

바둑의 기원


바둑은 인류가 고안해 낸 최고의 신비스런 경기로 이해되고 있다. 아무리 많은 판을 두어도 끝없이 쏟아지는 변화불측한 창조성에 사람들은 혀를 내두른다. 대단히 흥미진진한 오락적 게임이면서도 그 속에 인생의 원리와 통하는 법칙이 들어있다고 한다.

 

근래에 학자들은 바둑 속에 경제학, 경영학, 생태학 등 다른 분야의 원리와 통하는 법칙이 들어 있다고 주장한다. 서양에서는 심리학자들이 체스를 통해 인간의 사고 매커니즘을 연구하여 많은 업적을 남겼는데, 바둑을 통해 이런 연구를 한다면 훨씬 더 다양하고 재미있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 인공지능 분야에서 사람을 이기는 컴퓨터 바둑을 만들려고 애를 쓰지만 아직 컴퓨터 최고수의 실력은 7급 정도밖에 안 된다.


바둑의 신비함은 이것이 하나의 예술로도 통하고 예도로 일컬어지는 데서도 엿볼 수 있다. 하나의 게임을 두고 당당하게 예술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는 아마 바둑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도(道)’를 운운하는 것은 다른 게임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이처럼 신비한 바둑을 과연 누가 만들었을까? 바둑의 기원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고대 중국에서 고안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인도나 티베트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중국의 옛 문헌에는 삼황오제의 요임금이 바둑을 만들었다고 적고 있다. 세본, 박물지, 현현기경 등 많은 책에 요임금이 우둔한 아들 단주를 깨우치기 위하여 바둑을 만들었노라고 적혀 있다. 어떤 책에는 순임금이 아들 상균을 위해 바둑을 만들었다고 기록해 놓았다.


 
이런 신화적인 기록을 실제 역사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묘한 점은 여러 책에서
한결같이 황제가 어리석고 둔한 아들을 일깨우기 위해 바둑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오늘날 어린이들이 두뇌계발이나 정신집중력 배양 등과 같은 교육적 목적을 위하여 바둑을 배우고 있는것을 수천 년 전에 예언한 것이 아닌가. 바둑이 예부터 여가선용을 위한 놀이로 이용되어 온 것을 생각하면 이 설화는 좀 희한한 면이 있다.


아마도 처음에는 바둑이 놀이수단은 아니었을 것이다. 천체를 관측하는 점성술의 도구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많다. 바둑판의 361로가 1년을 가리키고 네 귀는 춘하추동, 흑백의 바둑돌은 음과 양을 가리킨다는 얘기는 이것과 관련이 있다. 바둑판 위에 바둑돌로 별자리의 움직임을 놓아가며 천체의 운행을 예측하지 않았을까.


중국 출신으로 일본에서 활동한 우칭우엔 9단은 요임금의 아들 단주가 이런 업무를 관장한 제사장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요임금이 황위는 순이라는 사람에게 물려주고 단주에게는 제사장을 시킨 것으로 해석한다.


한편 당나라의 피일휴는 바둑을 춘추전국시대에 전술가들이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바둑이 영토싸움을 표방하는 경기라는 점에서 보면 이 주장도 일리가 있다. 장기가 한나라와 초나라의 싸움을 본뜬 것이라고 볼 때 바둑도 이 시기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한사군이 설치되었을 때 중국 한나라로부터 바둑이 전파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중국의 문물이 한반도로 전래되면서 바둑도 함께 들어왔을 것이다. 바둑에 관한 우리의 최초 기록은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에 나온다. 고구려의 승려 도림이 백제에 거짓망명하여 스파이 활동을 한 이야기가 최초의 바둑사인데, 고매한 바둑을 좋지 않은 곳에 사용한 것이라 바둑팬들의 입맛을 씁쓰름하게 하는 이야기다.


나중에 일본으로 전파된 바둑은 한·중·일 3국을 중심으로 번창하게 되었다. 그리고 바둑의 양식에 약간씩 변화가 생겨났다. 우리나라는 미리 16개의 돌을 깔아놓고 두는 순장바둑을 두었고, 중국은 대각선으로 흑백의 돌을 두 점씩 놓고 두었으며, 일본은 돌을 깔지 않고 두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 정수현·9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