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생활글

내 친구 봉주야! 힘내라. 황영조편

풍월 사선암 2008. 12. 21. 11:11

[조선닷컴 주말특집] "내 친구 봉주야! 힘내라"

스타를 넘어서다 <제6편> 황영조편

이학준 기자 arisu01@chosun.com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는 이봉주와 38살 동갑내기 친구다. 황영조는 이봉주가 '베이징의 영웅'으로 거듭나길 기원했다. 사진=김영관

 

허준영.황영조와 이봉주는 친구다. 한 명은 마라톤 감독이고, 다른 한 명은 선수다. 친구니까 다른 점보다 같은 점이 많은 건 당연하다. 만 38살 동갑내기. 초등학교부터 뜀박질을 잘했다. 전국대회에 나가면 앞줄에서 달렸다. 마라톤 국가대표로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대한민국 국민 가운데 이들 이름을 모르는 이가 적다.


두 친구는 24일 중국 베이징에서 만난다. 이번엔 황영조가 방송 해설위원이고, 이봉주는 국가대표 선수다. 친구의 달리는 모습을 다른 친구가 마이크를 들고 중계할 것이다.


먼저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황영조는 친구를 생각하면서 말했다. “봉주야, 이번엔 진짜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뛰렴. 여자 마라톤 우승자도 우리랑 동갑이야.” 그의 말대로, 이번 마라톤에선 1970년생이 대세다.


황영조를 만난 지난 1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엔 가는 비가 내렸다. 검은 선글라스를 쓴 그에게 던진 첫 질문은 어리석었다. “한국 육상의 미래는 밝은가요?” 한참을 머뭇거리던 황영조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육상이나 수영에서 금메달을 따는 우리 선수는 사실 돌연변이죠.” 한번 말문이 터지자 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그 중엔 비인기종목 메달리스트의 서러움도 있었다. 체육협회에 대한 질타와 팬들에 대한 섭섭함도 있었다. 마라톤 훈련의 혹독한 고통도 있었다. 친구인 이봉주에 대한 애틋함도 있었다.


그럼, 심각한 이야기는 나중에. 먼저 황영조와 이봉주가 함께 달렸던 1989년 일본 요미우리 단축마라톤 대회로 돌아가 보자.


◀ 황영조(38)선수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남자마라톤 우승을 차지하는 모습.

 

“내 친구, 봉주야. 힘내라!”


어린 영조는 사이클 선수였다. 달리기에 대한 기억은 초등학교 가을운동회에 남아있다. “다섯 명씩 뛰는 운동회에서 일등을 하면 공책 세 권을 줬어요. 내 차례가 다가오면 입술이 바짝바짝 타고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죠. 그리고 달려나가면 아슬아슬하게 일등을 했어요. 그때만 해도 내가 마라톤에 재능이 있는 줄 몰랐어요.”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육상으로 종목을 바꿨다. 지독한 가난이 원인이었다. 소년은 비오는 날, 버스 타고 등교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6㎞를 걸어 통학했다. 버스 요금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이클 장비를 구입할 돈은 더더욱 없었다. 팬츠만 입고 냅다 달리는 마라톤으로 눈길이 갔다. “고등학교에서 육상 시작하니까 장학금 10만원씩 주지, 국가대표 상비군 들어가니까 6개월에 한번씩 60만~80만원씩 주지. 그게 좋아서 죽어라 뛰었죠.”


출전하는 대회마다 우승 트로피를 독차지했다. 맨 앞이 강원도 대표인 황영조, 바로 뒤가 충청도 대표인 이봉주였다. 그렇게 잘 달리는 두 친구는 일본 요미우리 단축마라톤에 나가 일을 내고 말았다. 주최측이 반환점에 도착해 표식을 세우기도 전에 지나쳐 버린 것이다. 워낙 빨리 달린 덕분이다. 아무리 달려도 반환점이 보이지 않아 뒤돌아보니 주최측 인사가 당황한 얼굴로 빤히 쳐다보더란 이야기다. “당연히 한국 신기록을 세웠죠.” 시쳇말로 친구들은 함께 뛰는 동안 거칠 것이 없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황영조는 한국 마라톤의 56년 묵은 한(恨)을 풀었다. 고(故) 손기정 옹(翁)이 일장기를 달고 우승했던 그 종목. 그는 태극기를 달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그것도 막판에 일본 국가대표 모리시타 선수를 제쳤다. 국민들은 열광했고, 그는 ‘몬주익의 영웅’으로 불렸다.


이제 이봉주 차례다. 모두가 이봉주 역시 황영조 처럼 우승을 하리라 믿었다. 기대는 번번히 무너졌다. 은퇴를 앞둔 이봉주에게 베이징올림픽은 마지막 경기가 될 것이다. 황영조의 응원과 기대는 각별하다.


“쥐도 코너에 몰리면 고양이를 뭅니다.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출전한 봉주에겐 ‘정신력’이라는 강한 무기가 있습니다. 저는 친구가 꼭 일을 낼 거라 믿습니다.”


◀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는 이봉주와 38살 동갑내기 친구다. 황영조는 이봉주가 '베이징의 영웅'으로 거듭나길 기원했다. 

 

비인기종목 금메달리스트=돌연변이


황영조는 달변이다. 씁쓸한 이야기도 맛있게 한다. 그가 쏟아낸 불만들을 정리했다. 새겨들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한국 육상의 미래를 물었을 때, 그는 ‘돌연변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기초운동 분야의 금메달은 기적이란 뜻이다. 대표 돌연변이는 본인과 박태환이다.


“훌륭한 선수가 나오려면 선수층이 두터워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거든요. 결국 기대할 수 있는 건 어떤 돌연변이의 출현이죠. 지금 상황에서 육상이나 수영에서 금메달리스트를 만들어내는 건 절대 쉽지 않아요.”


마라톤, 수영, 핸드볼, 배드민턴, 역도 등 비인기종목의 인기는 ‘4년에 한번씩 16일 동안 피는 꽃’에 비유했다. 올림픽에만 반짝하고 사라지는 국민들의 관심을 꼬집은 것이다.


“배드민턴 혼합복식 금메달은 얼마나 반가운 소식인가요? 하지만 며칠 지나면 메달리스트가 누군지도 기억 못하는 게 우리 모습입니다. 정말 안타깝고 슬픈 일이죠.”


황영조는 주장한다. 사회가 비인기종목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재교육을 책임질 것. 이름만 대면 알만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가운데 사회적응에 실패한 이가 많다고 했다. 그의 설명과 대책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국가와 협회가 올림픽 메달리스트에게 장기 유학 기회를 주거나, 체계적인 사회적응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세계 1등이었던 선수들이 집에서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올라요. 공부를 시켜서 국가대표 코치도 만들고, 국제심판도 만드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일부 팬들에 대한 섭섭함도 언급했다. 그는 1996년 은퇴를 선언했다. 마라톤 선수로는 한창 전성기인 25살. 많은 이들이 황영조를 손가락질했다. “배가 부르니까 뛰질 못하는구나.” 그는 이렇게 항변했다.


“마라톤 훈련이 얼마나 고된 줄 아세요? 매일 지옥에 다녀오는 기분입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준비할 때. 너무 힘들어서 달리는 차에 뛰어들려고 했어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몰라요.”


그래도 마라톤에 대한 황영조의 자긍심은 끝없다. “마라톤이 왜 올림픽의 꽃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화를 버럭 내며 말했다.


“마라톤을 보면 올림픽을 다 본거나 다름없어요. 폐막식 직전에 도시 전체를 다 도는 경기예요. 메인 스타디움에서의 시상식도 다른 종목과는 차원이 달라요. 그 넓은 스타디움에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의 기분이란. 마라톤이 왜 올림픽의 꽃이라뇨? 제일 중요하니까 맨 마지막에 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