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생활글

눈물의 비디오 “10년 전과 지금은 분명히 다릅니다”

풍월 사선암 2008. 12. 21. 11:57

[조선닷컴 주말특집] “10년 전과 지금은 분명히 다릅니다”

스타를 넘어서다 <14편> - 눈물의 비디오

이학준 기자 arisu01@chosun.com

 

외환위기를 기억한다. 10년 전이다. 햇살이 쏟아져도 따스하지 않았다. 종달새가 지지배배 울어도 즐겁지 않았다. 고궁(古宮) 앞엔 노숙자들이 햇살이 드리우는 곳을 찾아 몸을 뉘었다. 얼마 전까지 관광객이 넘쳤던 곳이다. 신문엔 낯선 단어들이 등장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워크아웃(workout), 구조조정…. 희망은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기자를 키웠던 이모님 가족이 채무자 신세로 조국을 등진 것도 그때였다. 채권자의 등쌀을 피해 미국의 불법체류자가 된 뉴욕 거리. 그 곳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먹거리를 구했다. 사촌동생은 술을 잔뜩 마시면 대서양이 보이는 곳으로 달려갔다. “이 바다를 헤엄쳐 건너면 서울에 도착하고 친구들을 볼 수 있겠지.” 그게 25살 청년의 생각이었다. 다행히도 동생은 바다에 뛰어들지 않았다. 서울에 도착하기 전 술이 깨리란 걸 알았던 까닭이다.


그의 고백을 공중전화 건너편으로 들었을 때. 기자는 대학 졸업반이었다. 도서관 구석에 처박혀 한참을 울었다. 그날 교정에선 제일은행이 제작한 ‘눈물의 비디오’를 상영했다. 컴컴한 강의실에 앉은 100여명의 학생들은 하나 같이 숨을 죽이고 훌쩍였다. 서로가 말하지 못했지만 모두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던 차였다.


제2의 외환위기를 걱정한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눈물의 비디오를 떠올린 이유다.


◆눈물의 비디오, 희망의 비디오


눈물의 비디오의 원제는 ‘내일을 준비하며’다. 폐쇄를 앞둔 제일은행 테헤란로 지점 행원들의 일상을 담았다. 2개월간 촬영하고 1997년 12월 전국 지점장회의에서 공개했다. 회의장은 숙연해졌고 비디오는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졌다. 비디오 중간에 한 여직원이 흐느끼며 “남아있는 사람들이 잘해 예전의 제일은행으로 살려내 주길 바란다”고 부탁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덕분에 눈물의 비디오라는 별칭을 얻었다. 많은 이들이 여기까지만 봤다. 눈물이 앞을 가린 탓이다.


◀ '눈물의 비디오'를 제작해 전 국민의 심금을 울렸던 SC제일은행 민병대(51) 지점장. 그는 "지금도 외환위기의 악몽은 떠올리기 싫다"고 했다. 사진=김영관


헤어지는 행원들은 내일을 이야기한다. 작품 마지막 부분이다. 신입사원은 최선을 다하겠다 다짐하고 선배들은 주저앉지 말라 응원한다. 그 대화는 주문(呪文)이 됐다. 10년 뒤 제일은행은 SC제일은행으로 이름을 변경했을 뿐. 여전히 국내 주요은행으로 자리잡고 있다. 외환위기 직전 5대 시중은행은 ‘조상제한서(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은행)’로 불렸다. 이 가운데 상호를 유지한 곳은 유일하게 SC제일은행 뿐이다. 시대의 아이러니다.


눈물의 비디오를 기획하고 연출한 SC제일은행 민병대(51) 지점장을 만난 것은 지난달 30일 오전이다. 그날 새벽, 한국과 미국은 300억 달러 통화 스와프(상호교환) 체결을 발표했다. 덕분에 일산 주택가에 위치한 은행은 활기차 보였다.


지점장실 문을 여는 기자는 잔뜩 긴장했다. 눈물의 비디오와 관련된 행원들의 엇갈린 운명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일부는 은행을 떠났고 일부만 직장에 남았다. 주인공은 췌장암으로 세상을 등졌다.


조심스럽긴 민 지점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여러 번 “눈물의 비디오를 언급하는 게 부담스럽다”고 했다. 그가 만든 작품처럼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약속했다. 이번에도 주문(呪文)이 되길 기원했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어떤가, 위기에 처한 노사(勞使)는 화합해야 하나, 노동자 권익을 위해 싸워야 하나. 그런 질문은 하지도 않았고 묻지 않았기에 대답도 없었다. 그것 말고도 흘려야 할 눈물과 기억해야 할 가슴 시린 사연이 많았다.


그가 말한 것 가운데 눈물의 비디오에 관련된 것은 단 세 가지만 전한다. 먼저, 떠난 동료들에 대한 기억이다. “정말 가슴 아프게 촬영했죠. 퇴직하는 동료에게 카메라를 들이 미는 건 잔인한 일입니다. 그래도 동료들은 카메라 앞에서 이야길 해줬습니다. 남아있는 동료에게 내 회사를 지켜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생각해도 놀라운 희생정신이고 애사심(愛社心)입니다.”


작품이 세상에 공개된 이후 반응은 기록된 것보다 뜨거웠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보시겠다고 해서 직접 비디오를 들고 청와대를 찾은 적도 있습니다. 언론의 인터뷰가 몰렸고 정부기관과 각종 단체의 상영요청이 이어졌습니다. 방송국의 스카우트 제의도 받았습니다. 저희가 작품을 잘 만든 탓은 아니라고 봅니다. 청계천의 중고가게에서 구한 카메라로 만든 비디오일 뿐인 걸요. 다만 시대의 아픔을 잘 짚은 게 아닐까요? 그만큼 진심이 담겨 있었구요.”


최근엔 다시 인터뷰 요청이 들어온다고 했다. 그는 정중하게 거절하느라 곤혹스럽다. “저 역시 떠올리기 힘겨운 기억이니까요.” 눈물의 비디오에 관해선 거기까지만 하기로 했다.

 

◀ 마라톤은 인생은 물론 국가경제와도 닮았다고 민병대(51) 지점장은 생각한다. 힘겨운 오르막이 있으면 맘 편한 내리막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그는 믿는다.


◆마라톤 그리고 봉사활동


민 지점장이 사회로 진출하던 1982년은 호황(好況)이었다. 재벌기업에도 합격했지만 입사를 포기했다. 그리고 은행 시험을 봤다. 그는 최종 면접에서 말했다. “산업의 역군으로 국가에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그가 합격통지서를 받은 것은 8월 18일이다. 집안의 경사였다. 때문인지 직장에 대한 그의 자부심은 남 다르다. “행원들이 우수합니다. 과거부터 은근과 끈기를 갖춘 분들이 많았습니다. 덕분에 우리 은행이 계속 성장하는 것이겠죠.”


그는 타고난 홍보쟁이다. 그의 손의 거쳐 히트한 작품들이 여럿이다. 건물을 뒤덮은 홍보문구로 기네스 북에도 오른 ‘다시 뛰는 대한민국, 다시 뛰는 제일은행’ 캠페인. 이미 언급한 눈물의 비디오. ‘남편 기(氣)살리기’ 캠페인과 영화 ‘말아톤’의 소재가 된 ‘희망의 비디오’가 그것이다.


원제 ‘My Way’가 희망의 비디오다. 조선일보 춘천마라톤에 참가한 행원들의 모습을 담았다. 눈물의 비디오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지 8개월 만이다. “마라톤은 인생과 같습니다. 기업경제나 국가경제와도 닮았습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구요. 고난과 역경을 견디면 마지막엔 환희를 누릴 수 있지요. 마라톤을 준비하는 우리 직원들의 모습을 통해서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밝은 내일을 준비하자 말하고 싶었습니다.”


민 지점장이 마라톤을 접한 것은 사보(社報) 때문이다. 마라톤 영웅 고(故) 손기정 선수가 제일은행 출신인 것을 아는 사람은 적다. 그와 인터뷰를 했다. “멋진 선배님이셨습니다. 일장기를 보이기 싫어서 결승점 들어올 때 가슴을 움추렸다 하시더군요. 나도 마라톤을 해야지 결심을 했지요.”


그는 최근 봉사활동에도 전념하고 있다. 얼마 전엔 파키스탄에 다녀왔다. SC제일은행의 ‘Seeing is Believing’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Seeing is Believing’은 국내 및 해외 저소득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과 의료봉사 활동이다. 2007년 시작된 이 활동으로 국내외 1176명이 새 빛을 찾았다.


◀ SC제일은행이 펼치고 있는 'Seeing is Believing' 봉사 활동에 참여한 민병대(51) 지점장. 'Seeing is Believing'은 빈민국가의 시각장애인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파키스탄엔 심한 백내장으로 앞을 못보는 이가 많더군요. 단 10분 정도 수술로 앞을 보게 되는 거죠. 환자들이 얼마나 고맙다고 하는지….”


이밖에도 마라톤에 참가한 장애인을 돕는 활동을 한다. 서부노인요양원에 가서 독거노인을 위한 목욕 봉사도 한다. 그가 봉사에 매달리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의 답변이다. “봉사를 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니까요. 불과 4~5년 됐군요. 노인들을 씻기면서 속으로 운답니다. 그 분들에게서 저희 부모님의 모습을, 나아가 제 모습을 보기 때문이겠죠?” 눈물의 비디오와 그의 봉사를 연결하려던 기자의 시도는 실패했다.


◆소박한 그러나 간절한 꿈


은행원의 꽃이라 불리는 지점장. 그에게 남은 소망은 무엇일까. “정년을 채우면서 열심히 일하는 것. 그게 소망이죠.”


하긴 그의 소망이 곧 우리네 소망이리라. 그의 말은 이어졌다. “10년 전 외환위기를 겪은 뒤부터 사람들은 무의식 속에 불안감을 안고 삽니다. 당연한 일이죠. 개인적으로 저희 지점에서 잔돈 세는 기계를 이용하는 고객의 수를 보면서 체감경기를 읽습니다. 최근 들어 작은 돈도 귀하다는 걸 깨닫는 분이 많아졌어요. 그만큼 불안해 하시는 거죠.”


그는 사견(私見)이라는 단서를 달고 말했다. “10년 전과 지금은 분명히 다릅니다. 그때는 세계 경제가 좋은 가운데 우리만 별스럽게 나빴습니다. 지금은 세계 경제의 악영향으로 우리가 잠시 주춤대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그 불안감이 스스로를 옥죄게 한다는 겁니다.”


◀ SC제일은행 민병대(51) 지점장은 불안감이 경제 불안을 가중시킨다고 했다. "서로 믿고 힘을 합하면 지금 위기는 극복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10년 전과 다릅니다." 그의 말이다. 


외환위기를 떠올리면서 이런 말도 했다. “당시엔 금 모으기 운동을 해도 반응이 대단했죠. 힘을 모으자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요샌 외화 모으기 운동을 해도 반응이 신통치 않습니다. 국가를 살리기 보다 나만 위기에서 빠져 나오자는 생각이 많은 게지요.”


그는 침을 꼴깍 삼켰다. “국가가 없는 내가 있을 수 있습니까? 아무리 훌륭한 인재라도 결국 조직의 시스템이 그 사람을 키운 겁니다. 내가 속한 조직이, 국가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어 당부했다. “적은 달러라도 집안에 숨겨놓고 환율 오르는 걸 기다리지 마시고 은행에 예치하시면 기업 활동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게 국가경제를 위하는 길입니다.”


역시 프로페셔널이다. 반론을 제기했다. “요새 젊은이들에게 국가나 조직을 강조하고, 오늘이 아닌 내일을 말하면 쿨(cool)하지 못하다는 핀잔을 들을 겁니다.” 민 지점장은 여기에 대해 정확하게 답변하진 않았다. 다만 그가 길게 이야기한 것을 짧게 정리하자면 이렇다.


“그래, 트랜디하지 못하고 우중충하면 어때? 욕해도 좋아. 하지만 살아보니 우리에게 내일이 있다는 건 좋은 거야. 덕분에 웃으면서 어려움을 견딜 수 있으니 말야.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동료가 있다는 건 더더욱 좋은 일이고. 케케묵어도 이건 진실이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