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생활글

[2008 겨울 희망편지] [3] 유리벽 사이에 둔 "사랑해"

풍월 사선암 2008. 12. 17. 13:05

 

입국 거부당한 교포 "1초라도 남편 얼굴만"

어려움이 닥칠수록 부부란 참 소중한 힘

김계용·대한항공 통합커뮤니케이션실 차장


내가 인천공항 출국장 내 통과여객 카운터에서 근무하던 때의 일이다.


한 여자 승객이 입국 거부를 당했으니 선양(瀋陽)행 항공기로 강제출국시키라는 출입국사무소의 연락을 받았다. 입국장으로 내려가보니 중국교포로 보이는 50대 여자 승객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일본 오사카에 있는 딸을 만나고 중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국에서 노무자로 일하고 있는 남편을 만나려고 입국하려다 거부당했던 것이다.


출입국 규정에 따르면 일본 비자가 있는 중국인은 한국 비자가 없어도 입국이 가능하다. 그러나 규정은 규정일 뿐, 최종 판단은 출입국 담당 직원이 하게 된다. 담당 직원은 그 아주머니의 불법체류를 염려했던 것 같다. 당시는 세계적인 테러 위험으로 공항입국심사가 무척 엄격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허리를 다쳐 고생하는 남편을 위해 약을사 들고, 몇 년 만의 부부상봉을 꿈꿔왔던 아내의 소망은 그렇게 꺾여버릴 판이었다.


다급해진 아주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나에게 입국을 시켜달라고 애원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입국이 거절된 이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선양행 항공 스케줄을 조정해 주는 것밖에 없었다. 아주머니는 아무리 사정해도 소용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나중엔 "입국은 안 해도 좋으니 입국장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남편 얼굴을 1초 만이라도 보게 해달라"며 흐느꼈다. 아픈 남편을 보기 위해 힘든 걸음을 한 아내가 쓸쓸히되돌아가게 된 모습을 보자니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그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대한항공 라운지가 있는 공항 4층 복도 왼쪽 벽에는 큰 통유리가 설치돼 있다. 그 유리를 통해 보세구역 바깥쪽을 볼 수가 있다. 나는 아주머니손을 잡고서 라운지가 있는 복도로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 무전기로 다른 직원에게 "입국장 밖에 기다리고 있는 남편을 모시고 바깥쪽 4층 식당으로 오라"고 부탁했다.

 

 

몇 분 뒤 부부는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만났다. 휴대전화로 서로를 연결해드렸다. 마치 교도소에서 수화기로 대화하는 장면 같았다. 부부는 보자마자 눈물을 주르륵 쏟았다. 그들의 첫 마디는 "사랑해"였다. 지금 생각하면 몸에 닭살(?)이 돋는 대화였지만,당시에는 그 어느 드라마나 영화보다도 슬프고 감격적인 장면이었다. "밥은 드셨어요?" "…." "허리는 어때요?" "…." 말없이 울기만 하던 남편이 대답했다. "… 내 걱정 마라." 옆에서 지켜보던 직원과 나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입맞춤도 포옹도 없이 20여분간 짧은 대화를 나누고 비행기 시간에 쫓겨 헤어졌지만,두 사람은 "그래도 얼굴을 봐서 위로가 되었다"며 우리에게 고마워했다. 그 고마움의말에서 절절한 진심이 느껴졌다.


나는 지금도 가끔 두 분을 만날 수 있게 도와드린 4년 전의 일이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나이가 들수록, 그리고 어려움이 닥칠수록 부부란 참 귀하고 소중한 인연이라는 것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두 분이 아직도 사랑한다는 고백을 하면서 살고 계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