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애송시

여보! 비가 와요 - 신달자

풍월 사선암 2008. 11. 27. 23:33

 

 

여보! 비가 와요 - 신 달 자

   

아침에 창을 열었다.

여보! 비가 와요.

 

무심히 빗줄기를 보며 던지던

가벼운 말들이 그립다.

   

오늘은 하늘이 너무 고와요.

혼잣말 같은 혼잣말이 아닌

그저 그렇고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소한 일상용어들을 안아 볼에 대고 싶다.

 

너무 거칠었던 격분

너무 뜨거웠던 적의

우리 가슴을 누르던 바위 같은

무겁고 치열한 싸움은

녹아 사라지고

 

가슴이 울렁거리며

입이 근질근질 하고 싶은 말은

작고 하찮은

날씨 이야기 식탁 위의 이야기

 

국이 싱거워요?

밥 더 줘요?

 

뭐 그런 이야기

발끝에서 타고 올라와

가슴 안에서 쾅하고 울려오는

삶 속의 돌다리 같은 소중한 말

안고 비비고 입술 대고 싶은

시시하고 말도 아닌 그 말들에게

나보다 먼저 아침밥 한 숟가락 떠먹이고 싶다.

 

*는 신달자 시인이

결혼 후 9년 되던 해에 남편이 뇌졸증으로 쓰려져

24년을 병수발 한 후 세상을 떠난 뒤 쓴 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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