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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해외 바둑뉴스 베스트 5는?

풍월 사선암 2008. 1. 9. 11:06
2007 해외 바둑뉴스 베스트 5는?
대만바둑사상 첫 세계대회 우승이 가장 돋보여
[2007년 해외 바둑뉴스 베스트5] 김경동 

 

 

2007년 만년 세계 바둑대회에서 들러리만 설 것 같던 대만이 LG배에서 저우쥔쉰 9단이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세계바둑사상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열도 일본에서는 52세의 조치훈 9단이 노익장을 과시하며 최다 타이틀 기록을 수립해 나갔으며, 콩지에 7단은 3년간의 구리 9단의 아성을 깨고 1위 자리에 올랐다. 또한 천야오예 9단이 TV바둑아시아 결승전에 진출하면서 세계최연소 9단이 되는 진기록을 남긴 한 해 였다. 슬라이드 처럼 지나간 이 사건들을 돌이켜 본다.


저우쥔쉰, 대만바둑사상 첫 세계대회 우승!

저우쥔쉰 9단이 금년 초 제11회 LG배 세계기왕전 결승전에서 중국의 후야오위 8단을 2:1로 꺾고 대만 바둑사상 최초로 세계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이 결승전은 정치적으로 미묘한 관계에 있는 양안(兩岸)이 벌이는 최초의 세계바둑대회 결승전이어서 대만과 중국의 바둑팬들은 양안의 자존심 싸움으로 까지 평가했던 대국이었다.


저우쥔쉰 9단의 우승이 확정된 순간 천수이볜 총통은 대만 대표부를 통해 축전을 보내왔고, 귀국 후 그를 관저로 초청하여 접견하며 격려했다. 저우쥔쉰 9단을 접견한 천수이볜 대만 총통은 8월경 벌어지는 제3회 중환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 개막식에 참석하겠다고 약속을 했고, 결국 세계 바둑사상 처음으로 국가 원수급인 천수이볜 대만 총통이 개막행사에 참석으로 이어졌다.


우승을 차지한 저우쥔쉰 9단이 11월 15일, 응창기바둑기금회에서 근무하고 있는 14살 연상의 정수칭(鄭淑卿)씨와 화촉을 밝혔다. 정수칭씨 일본기원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는 왕밍완 9단, 정밍황 9단, 정밍치 7단의 친 여동생으로 응창기바둑기금회에서 근무를 하면서 저우9단의 매니저 역할을 하면서 음양으로 그를 도왔다.


특히 정수칭씨는 LG배 결승전에서 1:1 동점이 되었을 당시 저우9단을 격려하는 등 정신적으로 많은 힘이 되어 주었으며, 우승을 차지한 후 더욱 사랑의 감정이 싹튼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결승전 제3국에서 저우9단이 반집승을 거두며 대만 바둑사를 새롭게 썼다.


조치훈, 십단전 3연패와 71회 최다 타이틀 획득 노익장!

52세의 노익장을 과시하며 조치훈 9단이 십단 타이틀 3연패와 함께 생애 통산 71번째 타이틀 획득했다. 지난 4월 25일 일본 도쿄에 있는 일본기원에서 열린 제45기 일본 십단전 도전5번기 최종국(5국)에서 타이틀 보유자인 조치훈 9단이 도전자 야마시타 게이고 9단을 종합전적 3:2로 꺾고 십단전 3연패를 기록했다.


조치훈 9단은 3월경에 NHK배 우승으로 70번째 타이틀을 획득하고 난 뒤 십단전에서 타이틀 방어에 성공하며 71번째 우승 기록을 달성하며 일본 최다 타이틀 획득 기록을 이어갔다.


조치훈 9단은 이어 11월에 벌어진 제32기 기성전 도전자 결정전에서 장쉬 9단에게 승리를 거두면서 대망의 도전권을 손에 넣었다. 2000년 왕리청 9단에게 기성을 빼앗기며 5연패 문턱에서 넘어졌던 조치훈 9단으로선 약7년 만에 밟게 되는 결승 무대에 오르면서 야마시타 게이고 9단을 상대로 또 하나의 타이틀 추가와 함께 ‘일본 1인자’로 부상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조9단의 뒤를 이어 사카다 에이오(坂田榮男) 9단이 64회로 2위를 달리고 있다. 1983년 제2기 NEC배(당시 63세) 우승이 사카다 9단의 마지막 우승 기록이다.


슈퍼 루키 천야오예, 세계최연소 9단 등극!

2007년은 중국 바둑의 소표(小豹)세대의 대표주자인 천야오예 9단에게 뜻 깊은 한 해가 됐다. 지난 6월 13일 벌어진 제19회 TV바둑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천야오예 5단(당시)이 최철한 9단을 꺾고 결승에 진출을 확정 지으면서 세계최연소 9단이 된 것.


1989년 12월 26일 생인 천야오예 5단(당시)은 제11회 LG배 세계기왕전 준우승, TV바둑아시아선수권대회 세계대회 1회 우승(TV아시아 포함) 혹은 두 차례 세계대회 준우승을 차지하면 곧바로 9단으로 승단한다는 중국 승단규정에 따라 9단이 됐다.


슈퍼 저단진들의 강세로 최근 들어 단위의 개념이 약해지고는 있지만 이는 중국 최연소 9단은 물론 ‘세계 최연소 9단(17세 6개월)’ 달성이라는 의미에서 세계바둑사의 또 다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하지만 현재 국내 랭킹 14위인 천야오예 9단은 같은 소표 세대인 박문요 5단(8위), 리저 6단(10위), 저우루이양 5단(11위) 등 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고 볼 수 없는 상황에서 2008년을 맞게 됐다.


한국은 박영훈 9단(85년 4월 1일 생)이 2004년 7월 5일 후지쯔배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19세 3개월 4일 만에 9단으로 승단했다. 1999년 12월 입단한 박9단은 국내 최단기간 9단 승단기록도 함께 보유하고 있다.


천스위엔, 대만 1인자로 급부상!

지난 10월 천원, 왕좌, 국수와 함께 대만 3대 타이틀로 불리는 국수전 도전기에서 대만기원 사상 도전5번기 타이틀전에서 처음으로 최종국까지 가는 혈전을 벌인 끝에 타이틀 보유자인 천스위엔 7단이 샤오정하오 5단을 행운의 반집승으로 물리치고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천7단으로서는 금년 CMC배 TV속기전 우승, 천원전 우승에 이어 3번째 우승을 차지하는 순간이다.


특히 지금까지 대만 랭킹 1,2위로 인정받고 있는 저우쥔쉰 9단, 린즈한 7단이 아직 국수 타이틀전 무대 조차도 밟아보지 못한 상황에서 천스위엔 7단이 대만 3대 기전중 하나인 국수전에서 2연패를 달성함으로써 천7단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천스위엔 7단은 2005년 중환배 국수전 우승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생애 첫 우승의 기쁨을 맛 본 이후 같은 해 동강배 우승 등을 비롯하여 2006년 국수전 우승, 2007년 CMC배 TV속기전 우승, 천원전 우승 등에 이어 생애 6번째 우승을 기록했다.


특히 천7단은 금년 7월 대만 최대 기전인 천원전에서 ‘번기 대국’의 불패신화를 이어온 대만의 1인자 저우쥔쉰 9단을 3:1로 꺾고 타이틀을 획득한 뒤 이어 대만 3대 타이틀 중 하나인 국수 타이틀 마저 거머쥐면서 명실 공히 1인자로서의 자리를 굳혔다고 평가받고 있다.


한국기원 소속이기도 한 천스위엔 7단은 군 복무 문제로 귀국했다가 지난 5월말 병역특례 복무를 마쳤다. 당초 천7단은 병역문제를 해결한 뒤 다시 한국기원 소속기사로 활동하려했지만 천원, 국수 등 주요 메인 타이틀 보유자인 관계로 한국기원 복기가 늦어지고 있다. 천스위엔 7단은 2009년까지 대만 바둑발전을 위해서 대만에서 활동할 것으로 보인다.


콩지에, 3년 만에 구리 아성 깨고 랭킹 1위 등극!

한국 바둑계의 1인자가 이창호 9단에게 이세돌 9단으로 바뀌어 가는 시점에서 중국 바둑계에서도 랭킹 1위가 바뀌었다. 지난 9월 말경 중국기원이 공식 발표한 중국 랭킹에서 콩지에 7단이 2715점을 획득하며 각각 2694점, 2687점을 얻은 후야오위 8단, 구리 9단을 근소한 차이로 따돌리고 1위 자리를 차지했다. 3년 만에 중국랭킹 1위가 바뀐 것이다. 지금까지 10여 차례 1위 자리를 지켜온 구9단은 후야오위 8단에게도 밀려 3위로 추락했다.


생애 처음으로 2700점 대를 돌파하면서 1위 자리를 차지한 콩지에 7단의 랭킹 1위 등극은 이번이 두 번째. 콩7단은 지난 2004년 8월 31일 발표된 랭킹에서 생애 처음 1위 자리에 오른 것 3년 만에 다시 한번 1위 자리에 올랐다.


조훈현, 서봉수, 유창혁, 이창호가 중심이 됐던 세대의 한국바둑 아성을 공략하는데 앞장섰던 중국 바둑의 창하오, 저우허양, 뤄시허, 왕레이, 류징, 샤오웨이강 등의 육소룡(六小龍) 세대가 중국 바둑의 주축에서 물러난 지 벌써 오래이다. 지금은 창하오 9단만이 제구실을 하고 있을 뿐 구리 9단, 후야오위 8단, 콩지에 7단 등을 ‘삼총사(三劍客)’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이들 삼총사는 최근 3차례(2006년 12월 31일, 2007년 4월 31일, 8월 31일)의 랭킹 발표에서 상위 1,2,3위 자리를 독식했다. 특히 구리 9단은 2003년 4월 31일 발표된 랭킹에서 생애 처음 랭킹 1위 자리를 차지하면서 ‘소호시대’를 활짝 열었고, 그의 독주는 2004년 한 차례 주춤하다가 금년 초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이번 콩지에 7단의 1위 등극은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실제로 콩7단은 랭킹 1위 등극 후에 국내 성적도 랭킹 1위에 걸맞는 결실을 맺지 못했으며, 국내 타이틀 무관에 세계대회에서도 눈에 띄는 성적을 보여주지 못해 콩지에 7단의 1위 등극은 ‘3일 천하’로 끝이 날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