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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프로 입문, 바늘구멍보다 좁다

풍월 사선암 2008. 1. 19. 23:19

[Why] "프로 입문, 바늘구멍보다 좁다"…

바둑 연구생들의 세계는

 

유창혁 九단은 프로기사 수가 날로 늘어가는 상황에서 모든 기사에게 대국료를 지급하는 현재의 기전 운영 방식은 한계에 다다랐다는 지적과 함께, 홍보 효과 극대화와 실력 강화를 위해 상위권의 아마추어 기사들에게 프로대회 참가 기회를 주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 이인묵 기자


하루 10시간 이상 바둑에 전념


지난 17일 오전 10시 서울 성동구 홍익동 한국기원 4·5층 연구생 대국실에선 제4회차 연구생 리그가 열렸다. 첫수가 놓이는 '딱'소리와 함께 조용하던 대국실은 금세 시간 계측기를 누르는 소리와 바둑돌을 올려놓는 소리로 가득 찼다. 대국실은 시끄러운 동시에 적막했다. 남자 연구생 120명으로 가득 찬 5층 옥탑 대국실엔 바둑돌 소리로 가득했지만, 숨소리조차 나직했다.


'연구생 제도'는 한국 바둑이 세계 최강이 된 이유였다. 하지만 바둑계 일부에선 연구생 제도가 인재를 쫓아내는 제도가 돼버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3일 유창혁 九단이 쓴 글에서도 현행 연구생 제도는 "늦게 터지는 재목(材木)에게 숨쉴 여지를 주지 않는 제도"로 비판 받았다.


연구생 제도의 운영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연구생들은 12명씩 남자 10조, 여자 4조로 나뉜다. 각 조에서 한 달 11판씩 바둑을 두고, 이 성적에 따라 상위 조 9~12등과 하위 조 1~4등이 자리를 바꾼다. 최하위조의 네 명은 연구생 신분을 빼앗긴다.


프로가 되는 인원은 1년에 최대 10명. 내신 성적순으로 남자 2명, 여자 1명이 자동 입단하고, 나머지 일곱 자리는 승단 대회를 통해 가려진다. 문제는 연구생은 많은데, 프로의 문은 지나치게 좁다는 것.


게다가 만 18세가 넘으면 연구생에서 퇴출된다.

 

한국에서 프로 기사를 가장 많이 배출한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권갑룡 바둑도장. 이곳의 문이 열리는 시간은 아침 9시, 문을 닫는 시간은 밤 9시다. 남자 연구생 1조에 속해있는 김성진(18)군도 이곳에서 하루 12시간을 보낸다.


김군의 하루는 단조롭다. 아침에 도착하자마자 기보를 보고, 사범과 지도 대국을 둔 후 복기한다. 정석을 암기하고, 수읽기를 푼다. 가끔 도장의 친구들과 농구를 하기도 하지만 요즘은 거의 12시간 꼬박 바둑만 둔다. 김군은 "연령제한까지 딱 1년이 남은 만큼 바둑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둑도장들은 대부분 합숙소를 운영한다. 프로 지망생이라면 보통 하루에 10시간 이상 바둑 공부를 한다. 하지만 합숙소에 들어오면 하루 평균 14시간 가까이 바둑 공부를 한다. 눈 뜬 시간 내내 바둑만 하는 셈이다.


대부분 프로 지망생들은 중학교에 진학할 때쯤 바둑과 공부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한다. 이때가 기력(棋力)이 가장 많이 느는 시기이지만, 학교 공부 부담도 같이 늘기 때문이다. 서울 신정동에 있는 양천대일도장의 김희용 원장은 "보통 이때쯤 기재(棋才)가 뛰어난 애들은 공부를 포기하고 바둑에 전념한다"며 "기력 향상을 위해선 이 시기에 바둑 공부를 많이 하는 게 좋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학업을 포기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권갑룡 八단은 "연구생들은 입단하기 전부터 이미 프로로 살고 있다"며 "프로로서의 성공도 좋지만 인성 교육도 포기한 채 승부사만을 키우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만 18세 넘으면 자동 퇴출돼


많은 연구생들이 일찍부터 학업을 포기하고 바둑에 몰두하고 있지만, 연구생이 입단하지 못하고 '일반인'으로 내쳐지는 현상은 해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2003년 15.9세이던 평균 입단 연령은 2007년 17.2세로 높아졌다. 입단 제한 연령인 만 18세를 거의 꽉 채운 숫자다.


지난해 초단 열풍을 일으킨 한상훈 二단 역시 연구생 나이 제한에 걸린 만 18세 때(2006년 12월)서야 입단했다. 한 二단은 LG배 세계 기왕전 결승전에 진출한 후 가진 인터뷰에서 "1군(1~5조)에는 나 정도의 실력을 가진 연구생이 5명은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까지 연구생 1조에 있다가 연령 초과로 연구생에서 퇴출된 함영우(20)씨는 "7살 때부터 바둑만을 해왔기 때문에 다른 길(공부를 통한 진학)을 갈 생각은 없다"며 "일반인 입단 대회를 통해 프로를 노리고 프로가 안 되더라도 바둑 사범으로 남을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함씨처럼 '일반인 입단 시험'에 매달린 사람만 해도 50명이 넘는다. 대부분 연구생 1조를 거친 쟁쟁한 인재들이다.


연구생 출신 일반인들이 늘고 있지만 한국기원은 오히려 일반인 입단의 길을 좁혔다. 일본에서 열리는 세계대회 우승자를 특별 입단하도록 하는 제도를 폐지한 것이다. 그 대신 한국기원은 해외와 국내 아마 대회 우승자에게 국내 일반인 입단대회 본선 16강 시드를 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로 이 대회를 통해서 입단한 '일반인'은 최근 5년 동안 한 명에 불과하다.


17일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10대의 한국기원연구생들이

1등부터 120등을 가리는 리그전을 열고있다. /이명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