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생활/바둑,오락

기품(棋品)의 4단계

풍월 사선암 2007. 7. 11. 14:52

 

기품(棋品)의 4단계

 

바둑을 참답게 즐기기 위해서는 기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2%가 아닌 적어도 20% 이상 부족하다. 그럼 그 부족함은 무엇으로 메워야 하나? 기품이다. 기품(氣品)이 아닌 기품(棋品)을 말한다.


기력이 충만해도 천박한 바둑이 있는가 하면, 비록 바둑 자체는 거칠지만 품격을 갖춘 바둑도 있는 법이다. 굳이 대국자를 고르라면 전자보다는 후자를 선호하는 편이다. 기품을 지닌 한 판의 바둑은 한 주전자의 맑은 차를 마신 후처럼 개운하기 그지없다.


기품에는 네 개의 단계가 있다. 그것은 사람이 나이를 먹어가는 것과 많이 닮았다. 바둑이 늘어가듯 기품도 변해간다. 바둑이 정체하듯 기품 역시 마찬가지. 기품은 본인의 천성 또는 인격의 고하에 크게 영향 받는다는 점에서 오히려 바둑 기량을 늘리는 일보다 까다로울 수도 있다.

 

기품의 첫 번째 단계는 ‘구걸(求乞)’의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다른 것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상대로부터 가져올 생각만을 하게 된다. 사람으로 치면 유아기와 아동기에 해당할 것이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익히는 말은 ‘~ 주세요’이다. 과자 주세요, 장난감 사 주세요, 불자동차 그려 주세요 … 등 아이들이 부모에게 하는 대부분의 언어는 이 ‘주세요’로 가득 차 있다.


바둑도 마찬가지. 유아기와 아동기의 수준에서는 오로지 ‘~ 달라’의 선을 넘지 못한다.

“집을 달라.” “대마를 달라.” “살려 달라.”

바둑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인과에 따른 응보임을 깨닫지 못 하는 한 이 첫 단계를 벗어날 수 없다. 중급자의 수준에서도 이 ‘구걸’의 단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사람들을 제법 보았다. 안타까운 일이다.


기품의 두 번째 단계는 ‘독백(獨白)’의 단계.


무작정 ‘내놔’의 단계를 넘어 상대방에게 내 뜻을 전하는 단계이다. 첫 ‘구걸’의 단계보다는 일보 나아갔으나 아직까지는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는 못하는 단계이기도 하다. 즉, 일방통행의 골목길을 지나는 것과도 같다. “우상귀에 내가 돌을 다섯 개나 투자했으니 들어올 생각을 마시오(그러나 여전히 침입의 맛이 남아 있음)” “비록 실리를 조금 내주었지만 두터움을 얻었으니 내가 유리하지 않겠소? (실은 상당한 중복임)”


일방적인 독백의 단계를 넘어서면 비로소 세 번째 단계인 ‘소통(疏通)’의 경지에 다다르게 된다.

 

적어도 소통의 경지에는 올라야 ‘바둑을 둔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력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게 되면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이 경지를 맛보게 된다. 물론 기력이 다소 약하더라도 부지런히 기품을 닦으면 소통의 즐거움을 누릴 수도 있다. 소통의 단계는 글자 그대로 대국자가 한 수 한 수 대국을 통해 서로 마음이 통하는 단계이다. 그야말로 수담(手談)의 경지이다. 소통의 단계에 이르면 대국 중 별 말이 필요없다. 대부분의 뜻을 수(手)를 통해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단계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그 안에서도 천차만별의 차이를 보인다. 소통에도 수준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바둑을 두는 와중에 말이 많은 사람일수록, 특히 말을 통해 승부에 영향을 미쳐 보겠다는 의지가 강한 사람일수록 소통의 단계 중 밑바닥을 차지한다.


기품의 최종 단계는 ‘동행(同行)’의 단계이다.


이는 소통이 극치로 이루어질 때 득할 수 있는 경지로 그야말로 기품의 최고 경지를 일컫는다. 동행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이미 승부는 의미가 없어진다. 옛말에 ‘이겨도 좋고 져도 좋은 것이 바둑’이라 하였는데, 바로 동행의 경지를 말함이다. 오랜 벗을 만나 달 밝은 밤에 탁주 한 사발 걸치며 마당 평상에서 두는 바둑. 모처럼 따로 사시는 부모님 댁을 찾아 아버지와 두는 바둑(본래는 두 점 바둑이나 아버지에게 백을 쥐어 드린 바둑).


회사에서 명퇴를 당한 뒤 재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후배와의 바둑. 암 수술을 받고 병상에 누워 있는 친구를 찾아 나누는 바둑 한 판. 동행의 단계에서 바둑은 비로소 승부의 굴레를 벗는다. 바둑은 선(善)이요 위로가 되고, 즐거움과 기쁨이 된다. 바둑은 담(談)이 아닌 마음(心)이 된다. 대국자들은 바둑판에서 눈을 돌려 서로 한 곳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어깨를 맞댄 채, 손을 굳세게 잡고 함께 나아갈 수 있게 된다. 동행을 하게 된다.


오래도록 바둑과 함께 하고, 바둑을 두어 오면서 기품이란 반드시 기력과 비례하는 것만은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다. 기품에도 단급을 매길 수 있다면, 기력은 아마5단인데 5급도 안 되는 기품이 있는가 하면 비록 9급의 기력이라 해도 기품은 유단자에 달하는 바둑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왕이면 기력보다는 기품이 앞서는 사람과 바둑을 두고 싶다. 그런 사람들과 소통하고, 원 없이 동행해 보고 싶다. 비록 그 동행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 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