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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쯔배 우승하고 돌아온 박영훈 9단

풍월 사선암 2007. 7. 11. 11:23

박영훈, 세돌이 형과 '번기 승부'를 벌이고 싶어요

후지쯔배 우승하고 돌아온 박영훈 9단

 

 

끝내기로 신산(神算) 이창호 9단을 누른 소(小)신산. 한국에 10번째 후지쯔배 우승컵을 안긴박영훈 9단을 만나러 김포공항으로 갔다. 인터뷰도 겸해 박영훈 9단의 부모님께 함께 공항에 가자고 연락 했으나 "아들이 쑥스럽다며 나오지 말라 한다"고 웃는다.


"부모와 함께 인터뷰를 하고 싶다." "아들을 맞는 사진을 찍고 싶다."는 기자의 끈질긴 요청으로 어렵게 박9단의 부모님을 공항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이창호 9단과 박영훈 9단이 탄 비행기가 도착하기 약 1시간 전에 박영훈 9단의 아버지 박광호 씨와 어머니 박은규 씨를 만났다.


박영훈 9단의 부모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즈음 단장 윤기현 9단을 선두로 두 기사가 모습을 나타냈다. 우승자 박영훈 9단은 물론 이창호 9단의 얼굴도 아주 밝아 보였다. 비록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마중 나온 박9단의 가족에게 웃는 얼굴로 축하인사를 건네는 이창호 9단의 모습에서 여유가 느껴졌다.


다소 피곤한 듯한 모습의 박영훈 9단의 손을 끌고 공항 한 켠에 있는 벤치로 이동했다. 부모님이 카트를 밀며 따라오자 급히 손사래를 친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바둑스타이지만 인터뷰 하는 모습을 부모님께 보이기는 어색한 모양이다.


오랜만에 세계대회에서 우승했다. 늦었지만 소감은 어떤가?

그 동안 개인적으로도 성적이 나빴고 세계대회에서 중국에 밀리는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한국기사끼리 결승대국을 두어 기뻤다. 많은 팬들의 응원 덕분에 우승까지 할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좋은 모습 보이겠다.


바둑 내용이 모두 미세한 끝내기 승부라 보는 이들이 끝까지 가슴을 졸였다. 이제는 끝내기 부분에 자신감이 아주 많이 붙은 것 같은데?

자신이 붙었다고 하기는 좀 그렇고 초반이나 중반보다 종반이 더 편한 건 사실이다. (기자: 일부러 끝내기 승부를 유도했나?) 그렇지는 않지만 두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렇게 흘러가는 것 같다.


우승하기까지 가장 힘들었을 때는?

특별히 어느 순간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준결승이나 결승대국 모두 유리한 바둑이 아니었기에 힘겹게 추격해야 했다. 결승에서도 반집 정도는 불리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결승대국에서 우승을 자신한 시점은?

바둑판이 없어서 정확히 이야기하기 힘들다. 중반 즈음에는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마무리에 접어들며 조금 이익을 보고 괜찮다고 생각한 정도이다. 그러나 미세하게 유리해졌다고 승리를 자신할 수는 없었다.


후지쯔배에서 한국기사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건가?

하하.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인연이 좀 있는 것 같긴 하다. 한국선수들이 비교적 많이 출전해서 성적이 좋은 건지도 모른다(웃음).


바둑이 많이 변한 것 같다. 예전엔 속도를 중시하는 바둑이 많았는데 요즘은 많이 두터워졌다. 스타일을 바꾸려고 많이 노력했다고 들었는데?

예전 스타일에서 조금씩 한계를 느끼기도 했고 다양한 스타일의 바둑을 두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좋은 수와 나쁜 수가 있을 뿐 기풍이나 스타일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요즘은 두터운 바둑이 편하게 느껴져 그 쪽으로 가려고 하는 편이다.


기성전 우승에 이어 후지쯔배에도 우승했다. GS칼텍스배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데 비해 바둑리그나 한국물가정보배 등의 속기전 성적은 좋지 않은데?

속기보다 시간이 많은 바둑이 더 편하다. 속기를 둘 때는 자신감도 떨어지고 성적도 나쁜 것 같다. (기자: 2005년에 바둑리그에서 주장들을 상대로 전승 거둬 팀을 우승시켰다. 자신감이 떨어진다는 말은 지나친 겸손 아닌가?) 그때만 성적이 좋았다. 입단한 이후로 2005년을 제외하고 속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일이 없다(웃음).


평소에 어떤 식으로 공부하는가? 끝내기가 강해지는 비결이라도 있나?

그런 비결은 나도 모른다(웃음). 주로 최규병 사범님 연구실에서 기보를 놓아보며 공부한다. 기보를 놓아보며 끝내기 부분에서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앞으로 성적을 내고 싶은 특별한 기전은?

일단 GS칼텍스배에서 도전자가 되어 이세돌 9단과 번기 승부를 벌여보고 싶다. 삼성화재배도 곧 시작하니 열심히 해보겠다.

 

조치훈 9단에게 뼈아픈 실착으로 져 준우승한 뒤에 바로 후지쯔배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충격이 오래갈 것으로 예상했는데 본인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진 기억은 빨리 잊는 편인가?

비교적 진 바둑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성격이다.. 그러나 삼성화재배에서 준우승한 이후로 계속 성적을 못 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삼성화재배에 욕심이 난다.


큰 승부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오늘 계획은 어떻게 되나?

글쎄, 잘 모르겠다. 원래 부모님이 안 오시는 것으로 알았는데…. 분당(최규병 9단 연구실)에 가서 사범님과 동료들에게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웃음).

 

인터뷰를 마치고 박영훈 9단은 부모님과 함께 공항문을 나섰다. 일행을 기다리며 박9의 어머니에게 박9단은 집에서 여가시간을 어떻게 보내냐고 살짝 물어보았다. 박은규씨는 뜸들이지 않고 "인터넷으로 바둑만 둬요. 정말 바둑 아니었으면 뭐하고 살았을까 저도 궁금해요."라며 웃는다.

 

항상 바둑만 생각하는 23살의 청년 박영훈. 지나간 과거보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기에 후지쯔배를 딛고 더 넓은 세계로 도약할 박영훈 9단의 미래를 기대해 본다.


<사진/ 월간바둑 이주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