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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후 11년…‘은퇴자 관리’가 국가 장래다

풍월 사선암 2007. 4. 9. 08:17
  은퇴후 11년…‘은퇴자 관리’가 국가 장래다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 시내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렘브란트 풍차 공원. 이 나라 출신 화가 렘브란트의 동상과 풍차가 어우러져 네덜란드 정취가 물씬 풍기는 이곳에서 한가로이 햇볕을 쬐고 있는 노부부를 만났다. 아내와 함께 산책을 나온 얀 스토커(69) 씨는 전기 엔지니어로 일하다 10년 전 은퇴해 지금은 여유로운 은퇴생활을 즐기고 있다고 했다. “아내와 저는 각각 월 2000유로(약 240만 원)정도 연금을 받아요. 둘이 합쳐 4000유로죠. 연금의 3분의 1은 국가에서, 나머지는 기업연금을 통해 받습니다. 1주일에 3, 4번 골프치고 여행도 자주 갑니다.”》


미국 애리조나 주 피닉스의 ‘은퇴자 도시’ 선시티. 이곳에서는 부부가 한 달에 150만 원 정도만 부담하면 골프 수영 운동 영화 등을 모두 즐길 수 있다. 65세에 은퇴한 뒤 선시티로 이주했다는 플로이드 하이든(77) 씨는 “1년에 6개월씩 이곳과 미시간 집을 오가면서 생활하고 있는데, 선시티 생활비가 미시간의 절반 수준밖에 안 된다”고 귀띔했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는 은퇴 이후에도 비교적 안락한 노후생활을 보내는 노년층이 많다. 전문가들은 연금 사회복지 시스템 등의 제도와 함께 미국과 유럽 사회에 뿌리내린 ‘은퇴자 관리(Retirement Management)’가 안락한 노후생활에 적잖은 기여를 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은퇴자 관리는 ‘현역 시절에 열심히 모은 퇴직자 산으로 죽을 때까지 잘 먹고 잘사는 것’을 말한다. 자산을 불리기보다 퇴직자산의 고갈을 최대한 늦추면서 잘 쓰고 지내는 게 은퇴자 관리의 핵심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는 한국은 2026년에는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 이상인 ‘초고령 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체계적인 연금시스템과 은퇴자 관리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은퇴 이후 자금의 주요 기반이 되는 국민연금을 둘러싸고 정부와 정치권의 의견 차가 커 갈수록 재정 부담이 커질 것이 확실시되는 국민연금제도 개편이 진통을 겪고 있다. 본보는 은퇴자 관리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현실에서 미국 영국 네덜란드 일본 등 선진국들의 은퇴자 관리 시스템을 현장 취재하고 국내 실태도 점검하는 시리즈를 시작한다. 이번 시리즈에 맞춰 본보 취재팀은 한국의 은퇴자 관리 수준을 알아보기 위해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에 은퇴자 503명의 일대일 면접조사를 의뢰했다. 50∼71세의 은퇴자를 대상으로 은퇴 전후의 생활을 조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사 결과 은퇴자의 66.8%(336명)는 ‘은퇴 전에 은퇴 대비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또 전체 조사 대상자의 73.6%(370명)는 ‘현재 보유 자산과 연금으로 은퇴 생활을 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또 현재 보유 자산(금융자산 평균 6634만 원, 부동산자산 평균 1억8037만 원)으로 앞으로 평균 11.72년을 생활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응답자의 평균연령이 59세인 점을 감안하면 약 71세에 노후자금이 고갈된다는 뜻이다.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 손성동 실장은 “선진국들은 철저한 연금제도와 은퇴자 관리로 노후대비가 철저하다”며 “이에 반해 한국은 조기 퇴직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졌으면서도 아무런 대비를 하지 못한 채 은퇴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 동아일보 & 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