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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 ‘꿈만같던 일이 꿈같이 이뤄졌다’

풍월 사선암 2007. 3. 27. 15:50
박태환 ‘꿈만같던 일이 꿈같이 이뤄졌다’

 

[JES 이충형] 수영 남자 자유형 400m 결승전이 시작된 호주 멜버른 로드 레이버 아레나.

 

자신이 존경한다는 그랜트 해켓(호주) 등 세계 강호들과 나란이 경기장에 들어선 박태환은 뭉클했다. 12회째 접어든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인이 결승에 오른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 타고난 승부사는 곧 " 이 자리에 섰으니 우승도 할 수 있을 것 " 이라는 대담한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는 결승에서도 메달이 예상되는 선수가 배정받는 5번 레인에 섰다.


직전 대회인 2005 몬트리얼 세계선수권에서의 '아픈 추억'이 순간 뇌리를 스쳤다. 당시 이 종목에 출전했던 박태환은 자신의 기록에 훨씬 못미치는 성적으로 예선 탈락했다. 경기장에서 그를 지켜보던 아버지 박인호 씨도 이심전심이었다. " 식사 관리를 못해줘 상한 햄버거를 먹어 배탈이 났었다 " 며 잠시 당시의 안타까움을 회상했다.


박태환의 이름이 불려졌을 때 부모를 비롯한 10여 명의 한국인 응원단만이 환호했다. 대신 8번 레인의 해켓이 호명되자 경기장을 떠나갈 듯한 호주 관중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이 환호는 3분 후 박태환의 기적 같은 역전 레이스에 놀라움의 환호로 바뀌었다. 전광판에 그의 이름이 1위로 나타나자 박태환은 정신이 아득한 가운데 두 손을 번쩍 들어 손가락으로 전광판을 가리키며 조용히 환호했다.


경기 후 믹스트존의 주인공도 단연 박태환이었다. 그를 지나가던 해켓은 인터뷰에 응하던 박태환의 등을 치며 기분 좋은 미소를 보냈다. 5위로 골인한 피터 반더카이(미국)는 " 사실 컨디션이 좋아 우승을 노렸지만 실패했다. 박태환은 최고중의 최고(greatest) " 라고 추켜세웠다.


외국 기자들이 한국 취재진에게 박태환의 통역을 부탁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프랑스 유력 스포츠일간지인 '레퀴프'의 밥티스트 르네 기자는 " 박태환이 한국에서 수영을 배웠느냐. " " 한국에서 수영이 인기 종목이냐 " 고 물었다. 한국의 수영 등록선수는 다이빙ㆍ수구 등을 모두 합쳐 3000명 정도다. 일본은 12만명에 달한다


경기를 지켜본 수영계 인사들을 " 눈물이 글썽일 정도였다 " 며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이동운 대한수영연맹 이사는 " 성실성과 근성을 타고난 선수다. 아직 고등학생이어서 관리만 잘 하면 올림픽 3연패도 가능한 선수 " 라고 말했다.


1966년 방콕 아시안게임에 수영 대표로 참가했던 이병두 한체대 교수도 " 세계선수권 결선 무대에 선 것도 꿈만 같은데 우승은 정말 믿기지 않는다 " 며 기뻐했다.


멜버른=이충형 중앙일보 기자 [adch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