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맞은 5·16 <下>… 영원한 2인자 [50년 맞은 5·16 <下>… 영원한 2인자] 우린, 가진 것 다 불살랐다 朴대통령이 변하기도 했지만 '좋은 나라' 일념은 계속됐어 아지트 - 청계천에 '상수'라는 술집이 거꾸로 읽으면 수상이야 후르시초프 6시라고 하면 상수에서 6시 만나잔 소리야 장면 총리 체포조 - 박종규가 특수부대 이.. 생활의 양식/역사,인물 2012.12.03
50년 맞은 5·16 <中>… 젊은 장교들의 整軍운동, 그리고 JP [50년 맞은 5·16 <中>… 젊은 장교들의 整軍운동, 그리고 JP] 중정 요원 20명 이끌고 장도영 계엄사령관 잡으러 갔지 그가 말하더군 "왜 이제 왔어?" 3·15 선거 부정 - 방첩대가 주로 한 짓인데 투표용지 통째로 바꾸고는 110% 달성했다고 자랑 整軍운동 - 송요찬 총장에게 말했어 "그만두고.. 생활의 양식/역사,인물 2012.12.03
50년 맞은 5·16 <上>…JP, 그날을 말하다 [50년 맞은 5·16 <上>…JP, 그날을 말하다] 박정희 소장이 그랬어… "서울은 네가 맡아라, 외곽은 내가 손써놨다" 혁명 교감 - 2월에 군복 벗으니 슬프데… 대구 박 소장 만나서 말했지 "서울에서 조직 상당히 했다" 며칠 후 박 소장이 올라와 미국도 움직였다 - 지도자로 박병권 거론됐는.. 생활의 양식/역사,인물 2012.12.03
박정희-전두환-노태우 32년의 再평가 유능, 청빈, 개혁적: 5·16 주체세력은 最强, 最良의 인재들이었다. 특히 박정희-김종필 콤비는 역사의 드림팀이었다. 1951년 韓國戰(한국전)이 진행 중이던 때로부터 5·16 군사혁명 전해인 1960년까지 해외(주로 미국) 유학을 다녀온 군인(86%가 장교)들은 1만 1506명이었다. 육군이 약 7000명으로 가장 많았.. 생활의 양식/시사,칼럼 2011.05.28
5·16,“혁명 같은 건 대중 공감대 확보해야…그래서 첫날 새벽 방송국 장악했지” “혁명 같은 건 대중 공감대 확보해야…그래서 첫날 새벽 방송국 장악했지” JP가 말하는 5·16 선전·홍보의 기획 ◀13일 오전 서울 남산공원을 찾은 김종필 전 총리. 외손자며느리 품에 안긴 증손자를 대견한 듯 가리키고 있다. 50년 전 5·16이 일어나던 그날 새벽에도 그는 방송국이 있던 남산에 왔었.. 생활의 양식/시사,칼럼 2011.05.14
5·16, 50년…혁명은 숫자가 아니다 의지·민심으로 하는 것 “혁명은 숫자가 아니다 의지·민심으로 하는 것” 5·16 50년 … JP ‘3700명의 레볼루션’을 말하다 5·16은 한국사의 가장 드라마틱한 반전이다. 건국의 사명을 완수한 이승만 시대의 바통이 박정희 시대로 넘어가는 장면이다. 박정희의 5·16세력은 산업화와 자주국방을 내걸고 한국 사회의 변혁을 주.. 생활의 양식/시사,칼럼 2011.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