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양식/정보,상식

실버 천국 남·이·섬 그곳에 가면 80세까지 일한다

풍월 사선암 2006. 7. 1. 13:37

실버 천국 남·이·섬 그곳에 가면 80세까지 일한다

73세 도공·69세 선장·62세 화초관리인… 직원 35%가 55세이상

停年은 80세‘사오정·오륙도 시대’에 행복한 별천지


▲ 남이섬 곳곳의 화초를 가꾸는 곽철건씨.

 

드라마 ‘겨울연가’의 무대였던 강원도 춘천 남이섬은 은퇴자들의 천국이다. 연인들로 가득한 이 섬에 무슨 소리?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눈 밝게 이 섬을 둘러봐야 한다.


섬으로 들어 가는 경기도 가평의 선착장과 남이섬을 오가는 배 5척 중 4척의 선장은 60대다. 신성일 선장(69)은 인천의 행정지도선 선장 출신. 공무원으로 퇴직한 뒤 2년 전 남이섬에 다시 취업했다. 신 선장은 “태풍 속에서도 배를 끌고 다녔는데 조용한 호수에서 배 모는 것이야 일도 아냐. 내가 몸 관리만 잘하면 여든까지는 문제 없다”고 말했다.


남이섬 선착장에 내려 5분 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도자기 공방. 이 공방의 책임자는 올해 73살의 석성계 할아버지다. “여기서 도자기 구우려면 힘을 좀 써야 해. 도자기 옮기고 장작도 패서 날라야 하거든. 내 나이 칠십이 넘었지만 아직은 짱짱해. 요즘은 젊은 사람들이 기술자를 조수 취급 한다니까. 이것 들어 달라, 저것 옮겨 달라…. 그래도 내가 아직까지 힘이 남아 있으니까 다 해줘.”

 

▲ 연인들의 섬 남이섬은 곳곳에서 땀 흘려 일하는 은퇴자들이 가꾸고 있다. 남이섬의 상징이

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을 ㈜남이섬의 노인 직원들과 젊은 직원들이 함께 걸어가고 있다.

(왼쪽부터)석성계, 강현정, 신현분, 김명희, 곽철건씨. 이석우기자

 

남이섬의 상징이 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은 물론 섬 곳곳에 앙증맞게 자라고 있는 화분과 안내판에도 모두 이들의 손길이 닿았다. 환경관리팀 곽철건(62)씨는 “저기 채송화와 나무도 내가 가꾸고 청소도 내 담당이야. 일이 쉽지는 않지만 이 나이에 직장 갖고 일할 수 있다는 게 어디냐”고 말했다. 남이섬의 겉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것은 젊은 연인들이지만, 이면에는 고령자들과 은퇴자들이 맹활약하고 있는 것이다.


섬을 운영하는 ㈜남이섬 전체 직원은 87명. 이중 55세 이상 직원이 31명(35%)이다. 직원 세 명 중 한 명은 일반 회사 같으면 이미 퇴직 연령을 넘긴 사람들인 셈이다. 70세가 넘은 직원도 5명이 있다. ㈜남이섬의 회사 사규에는 ‘직원의 정년은 80세’라고 돼 있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55세에 1차 정년퇴직을 하고 회사에서 다시 채용하고 있다. ‘사오정’ ‘오륙도’ 시절을 살아 가는 대한민국 직장인들에겐 남이섬은 별천지(別天地)인 셈이다.


남이섬이 실버들의 일터로 변신하기 시작한 것은 2001년 9월 강우현 사장이 취임하고 나서부터다. 강 사장은 1960~70년대부터 이곳에서 일용직으로 일해 왔던 사람들을 2004년부터 직원으로 채용하기 시작했다. 일하는 사람들의 생활이 안정돼야 섬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공개 채용을 할 때도 연령제한은 없다. ‘부지런하고 정직한 사람’은 누구나 남이섬 직원으로 지원할 수 있다. 실버들 사이에 소문이 나면서 2004년 12월 공개채용 때는 대기업, 은행 은퇴자 400여명이 몰려 들기도 했다.


강 사장은 “나이 드신 분들이 일하는 속도는 느리지만 듬직하죠. 새로운 일을 배우는 데 더디지만 일단 일을 배우고 나면 꼼꼼하게 마무리 하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 곳 직원들의 한 달 월급은 최소 월 120만원 이상이다.


이런 실버들의 활약을 보면서, 남이섬의 젊은이들도 꿈을 꾼다. 이 곳 공방에서 일하고 있는 김명희(28)씨의 말. “칠순이 넘으신 석성계 어르신이 사시는 것 보면 정말 멋지지 않나요. 소문에는 애인도 있으시데요. 호호~. 저도 여든 살이 될 때까지 남이섬에서 일하고 싶어요. 저도 품위 있고 자신감 있게 늙어가고 싶거든요.”


춘천 남이섬= 이석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