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뛰기 선수가 멀리서부터 달려와 탄력을 받아 뛰어오르듯, 피라미들도 저만치 뒤에서부터 달려와 수면을 박차고 뛰어 올랐습니다. 그러나 물고기 앞을 가로막고 있는 수중보는 작은 물고기들이 뛰어 오르기에는 너무 높았습니다. 높이 뛰어 올랐다가 맥없이 거꾸로 고꾸라지기도 하고, 거친 물살에 처박히듯 미끄러지며 떨어지기도 합니다. 웬만하면 한두 번 해보다 포기할 법도 한데, 피라미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또 다시,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수없이 뛰어 오르기를 하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에겐 포기란 없다’라고 이야기 하는 듯 하였습니다. 가끔 일을 진행하다 장애물을 만나면 한두 번 시도해 보고 포기하곤 했던 연약한 제 모습이 부끄러워졌습니다. 피라미들이 포기하지 않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언제나 실패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가능한 한 공중에 높이 뛰어 오른 뒤, 쏟아지는 물살을 타고 거슬러 헤엄치며 수중보를 넘기에 성공하는 녀석들이 간혹 있었습니다. 물살이 거칠기 짝이 없었지만, 이 물살이 있기에 그것을 타고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사실도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수중보를 뛰어넘은 피라미들에게는 얄궂은 인생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백로와 해오라기가 수중보 위서 잠복근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백로와 해오라기는 피라미들의 길목을 딱 버티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지켜보니 백로와 해오라기의 사냥은 그야말로 한 편의 코미디 같았습니다. 백로는 기다란 목을 차곡차곡 접고 있다가 물고기를 발견하는 순간, 스프링이 튕겨 나가듯 순식간에 물고기를 낚아챕니다. 목이 길다 보니 주위에 살짝이라도 떠오르는 웬만한 물고기는 백로의 식사 꺼리가 됐습니다.
이와 달리 해오라기는 백로에 비해 턱없이 짧은 목을 지니고 있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물고기를 보고 날쌔게 목을 뻗어 보지만 어림도 없었습니다. 백로 곁에서 침만 흘리고 있는 불쌍한 해오라기를 보다 보니 제 목이라도 잠시 빌려주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해오라기의 불리함은 짧은 목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백로는 다리가 긴 덕에 깊은 물에도 첨벙 들어가 이리저리 다니며 물고기를 낚아챕니다. 다리가 짧은 해오라기에게는 꿈같은 이야기이지요. 그러나 백로에 비해 신체적 불리함을 지닌 해오라기이지만, 백로보다 뛰어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인내심이었습니다.
백로는 긴 다리와 목이 있기에 조금 기다리다 지치면 직접 물속으로 들어가 이리저리 배회합니다. 반면 해오라기는 뜨거운 뙤약볕 아래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그 기다림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순간 해오라기 입에 큼직한 물고기가 퍼덕거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불공평해 보이는 세상에서 짧은 목과 다리로 자신만의 방법으로 멋진 삶을 살아가는 해오라기에게 삶의 지혜를 한 수 배워 보는 하루입니다.
'서강 지킴이' 최병성 목사는 강원도 영월군의 서강 가의 외딴집에서 11년째 살고 있다. 영월 동강과 짝을 이룬 천혜의 비경인 서강 유역에 쓰레기 매립장이 들어서려 하자 사재를 털어 반대운동을 펼쳤다. 최근에는 청소년 생태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 진행하고 생명의 소중함을 글과 사진을 통해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슬이야기'와 '딱새에게 집을 빼앗긴 자의 행복론'이 있다. 홈페이지는 www.greenearth.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