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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짧아 슬픈짐승 해오라기?

풍월 사선암 2006. 6. 8. 20:17

목이 짧아 슬픈 짐승 해오라기?


미디어다음 / 글, 사진 = 최병성 목사 / 새틀편집 : 돌구름


길을 가다 하천을 가로막은 수중보 위에 물총새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오랜만에 만나는 귀한 친구였습니다. 얼른 차를 세우고 살금살금 다가갔지요. 그러나 녀석은 반가운 제 마음을 몰라주고 야속하게도 훌쩍 날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물총새를 카메라에 제대로 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속에 다이빙을 해서 물고기를 잡아먹는 물총새가 이곳에 있었다면, 분명 물이 깊고 물고기도 많이 있을 거란 사실이지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경사진 하천 둑을 조심스레 내려가 보니 눈앞에 장관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산란철을 맞아 상류로 올라가기 위해 피라미들이 물살을 헤치고 뛰어오르고 있었습니다. 한두 마리가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물고기들이 높이 뛰어오르기 대회를 하는 듯 줄줄이 뛰어오르고 있었습니다. 바라보는 제게는 멋진 장관이지만, 사실 피라미들에게는 생사를 건 사투와 다름없었습니다.

 

 

검은댕기해오라기가 말합니다. "기다림은 사냥의 '필수'입니다"라고.

고도의 집중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같은 놈이 아닙니다. 또다른 해오라기가 말합니다.

"기다림은 사냥의 '기초'랍니다"라고.

 

중대백로가 긴목을 휘두르며 해오라기 앞에서 으스대고 있는 듯합니다.

 

봄의 생기를 물씬 품고 '팔팔'하게 자란 피라미들이 수중보를 앞에 두고 마냥

뛰어 오르고 있습니다. 마치 물고기 높이뛰기 대회라도 벌어진 듯합니다.

 

아무리 거친 물살이라도 필사적으로 헤엄쳐 올라가는 피라미입니다.

수중보 위에서 기다리는 얄궂은 인생은 모른 채...

 

검은댕기해오라기가 목이 짧은 한계를 느끼고 있습니다.

피라미를 눈앞에서 또 놓치고 말았습니다.

 

이에 반해 백로는 거의 백발백중입니다. 스프링처럼 감았다 튕겨나가는

목과 부리는 어김없이 피라미를 건져들고 맙니다.

 

백로가 금방 잡은 피라미를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그 자태가 마치 해오라기에게 "너도 해봐"라는 듯합니다.

 

드디어 검은댕기 해오라기가 피라미를 입에 물었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꿀맛 행복입니다.

어두육미이기 때문에 머리부터 먹는 것일까요?

 

같은 장소에서 각각 다른 모습과 조건으로 먹이를 기다리는 백로와 해오라기.

마치 그들의 모습이 서부극에 나오는 '황야의 결투'만 같습니다.

 

높이뛰기 선수가 멀리서부터 달려와 탄력을 받아 뛰어오르듯, 피라미들도 저만치 뒤에서부터 달려와 수면을 박차고 뛰어 올랐습니다. 그러나 물고기 앞을 가로막고 있는 수중보는 작은 물고기들이 뛰어 오르기에는 너무 높았습니다. 높이 뛰어 올랐다가 맥없이 거꾸로 고꾸라지기도 하고, 거친 물살에 처박히듯 미끄러지며 떨어지기도 합니다. 웬만하면 한두 번 해보다 포기할 법도 한데, 피라미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또 다시,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수없이 뛰어 오르기를 하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에겐 포기란 없다’라고 이야기 하는 듯 하였습니다. 가끔 일을 진행하다 장애물을 만나면 한두 번 시도해 보고 포기하곤 했던 연약한 제 모습이 부끄러워졌습니다. 피라미들이 포기하지 않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언제나 실패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가능한 한 공중에 높이 뛰어 오른 뒤, 쏟아지는 물살을 타고 거슬러 헤엄치며 수중보를 넘기에 성공하는 녀석들이 간혹 있었습니다. 물살이 거칠기 짝이 없었지만, 이 물살이 있기에 그것을 타고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사실도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수중보를 뛰어넘은 피라미들에게는 얄궂은 인생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백로와 해오라기가 수중보 위서 잠복근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백로와 해오라기는 피라미들의 길목을 딱 버티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지켜보니 백로와 해오라기의 사냥은 그야말로 한 편의 코미디 같았습니다. 백로는 기다란 목을 차곡차곡 접고 있다가 물고기를 발견하는 순간, 스프링이 튕겨 나가듯 순식간에 물고기를 낚아챕니다. 목이 길다 보니 주위에 살짝이라도 떠오르는 웬만한 물고기는 백로의 식사 꺼리가 됐습니다.

 

이와 달리 해오라기는 백로에 비해 턱없이 짧은 목을 지니고 있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물고기를 보고 날쌔게 목을 뻗어 보지만 어림도 없었습니다. 백로 곁에서 침만 흘리고 있는 불쌍한 해오라기를 보다 보니 제 목이라도 잠시 빌려주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해오라기의 불리함은 짧은 목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백로는 다리가 긴 덕에 깊은 물에도 첨벙 들어가 이리저리 다니며 물고기를 낚아챕니다. 다리가 짧은 해오라기에게는 꿈같은 이야기이지요. 그러나 백로에 비해 신체적 불리함을 지닌 해오라기이지만, 백로보다 뛰어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인내심이었습니다.

 

백로는 긴 다리와 목이 있기에 조금 기다리다 지치면 직접 물속으로 들어가 이리저리 배회합니다. 반면 해오라기는 뜨거운 뙤약볕 아래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그 기다림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순간 해오라기 입에 큼직한 물고기가 퍼덕거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불공평해 보이는 세상에서 짧은 목과 다리로 자신만의 방법으로 멋진 삶을 살아가는 해오라기에게 삶의 지혜를 한 수 배워 보는 하루입니다.


'서강 지킴이' 최병성 목사는 강원도 영월군의 서강 가의 외딴집에서 11년째 살고 있다. 영월 동강과 짝을 이룬 천혜의 비경인 서강 유역에 쓰레기 매립장이 들어서려 하자 사재를 털어 반대운동을 펼쳤다. 최근에는 청소년 생태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 진행하고 생명의 소중함을 글과 사진을 통해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슬이야기'와 '딱새에게 집을 빼앗긴 자의 행복론'이 있다. 홈페이지는 www.greenearth.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