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생활글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하여 - 김현태
어릴 땐 그랬지요
나이 든다는 것이 높은 벼슬인 줄 알았지요
멋진 양복 입고
때론 동네 예쁜 누나들을 끼고 활보하는 삼촌처럼
어른이 된다는 건 부러웠지요
그래서 그랬지요
매년 새해 아침이 밝아오면
떡국을 무려 네 그릇을 비우며
하루 빨리 어른이 되길 기원했지요
그 덕에 언제나 화장실에 쪼그려 앉았고
그렇게 세월은 화장실에서 익어갔지요
배설하는 동안,
코밑 수염은 굵어지고
세월은 내 키보다 더 자라나
이제는
사는 것이 괜히 서러운 나이가 되니
모든 것이 아슬아슬해 보이네요
목련꽃의 화려함을 즐기기 전에
괜히 곧 지고 말 초라한 모습이 눈물겨워
바라 볼 수 조차 없는,
백사장에 남긴 발자국 앞에서
한 걸음 더 내딛지 못하고
자꾸 등 뒤를 바라보고마는,
첫눈이 내리는 계절이 오면
누군가가 시계탑 앞에서
기다려 줄 것 같은 소설 같은 낭만을
아직도 기대하는,
남에게 쉽게 나이를 물어보면서
정작 누군가가 내게 물으면
차마 말 못하고
그저 부끄러워 절뚝이는
내 무거운 나이,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그게 서러워
오는 새해는 떡국을 먹지 않았지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내 떡국을
어린 아들 녀석이 잽싸게 비우는 걸 바라보며
생각했지요.
내가 늙어 너는 자라고
내가 늙는 사이 그대는 먼저 눈사람이 되었구나,
하고 생각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