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생활글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하여 - 김현태

풍월 사선암 2020. 1. 13. 19:45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하여 - 김현태

 

어릴 땐 그랬지요

나이 든다는 것이 높은 벼슬인 줄 알았지요

멋진 양복 입고

때론 동네 예쁜 누나들을 끼고 활보하는 삼촌처럼

어른이 된다는 건 부러웠지요

 

그래서 그랬지요

매년 새해 아침이 밝아오면

떡국을 무려 네 그릇을 비우며

하루 빨리 어른이 되길 기원했지요

 

그 덕에 언제나 화장실에 쪼그려 앉았고

그렇게 세월은 화장실에서 익어갔지요

배설하는 동안,

코밑 수염은 굵어지고

세월은 내 키보다 더 자라나

이제는

사는 것이 괜히 서러운 나이가 되니

모든 것이 아슬아슬해 보이네요

 

목련꽃의 화려함을 즐기기 전에

괜히 곧 지고 말 초라한 모습이 눈물겨워

바라 볼 수 조차 없는,

 

백사장에 남긴 발자국 앞에서

한 걸음 더 내딛지 못하고

자꾸 등 뒤를 바라보고마는,

 

첫눈이 내리는 계절이 오면

누군가가 시계탑 앞에서

기다려 줄 것 같은 소설 같은 낭만을

아직도 기대하는,

 

남에게 쉽게 나이를 물어보면서

정작 누군가가 내게 물으면

차마 말 못하고

그저 부끄러워 절뚝이는

내 무거운 나이,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그게 서러워

오는 새해는 떡국을 먹지 않았지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내 떡국을

어린 아들 녀석이 잽싸게 비우는 걸 바라보며

생각했지요.

 

내가 늙어 너는 자라고

내가 늙는 사이 그대는 먼저 눈사람이 되었구나,

하고 생각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