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생활글

난향백리(蘭香百里),덕향만리(德香萬里)

풍월 사선암 2020. 1. 8. 23:38

난향백리(蘭香百里),덕향만리(德香萬里)

 

꽃에는 저마다 독특한 향기가 있습니다. 사람도 각각의 인품이 존재하지요. 꽃은 싱싱할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인품 또한 사람의 마음이 맑을 때 가장 빛이 납니다.


 

난향백리(蘭香百里), 난의 향기는 백 리를 가고, 묵향천리(墨香千里), 묵의 향기는 천 리를 가지만 덕향만리(德香萬里), 덕의 향기는 만 리를 가고도 남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중국 남북조시대 송계아(宋季雅)라는 고위 관리가 정년퇴직에 대비해 자신이 살 집을 보러 다녔습니다. 그런데 지인들이 추천해 준 몇 곳을 다녀보았으나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가 집값이 백만 금 밖에 안 되는 집을 천백만 금을 주고 여승진(呂僧珍)이라는 사람의 이웃집을 사서 이사했습니다.


그 집의 원래 가격은 백만금이었지요. 이 얘기를 들은 이웃집의 여승진이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송계아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백만매택(百萬買宅)이요, 백만금은 집값으로 지급했고, 천만매린(千萬買隣)이라. 천만 금은 당신과 이웃이 되기 위한 값이라고 송계아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좋은 사람과 가까이 지내는 데는 집값의 열 배를 더 내도 아깝지 않다는 의미이지요.

 

그럼 우리는 지금 어떤 향기를 피우고 있을까요? 함께하는 이웃이 좋으면 인생이 행복합니다.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덕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덕 있는 자의 모습은 이웃과 함께하는 모습입니다. 그것이 인품의 향기가 만리까지 실어 나르는 뜻이 아닌가요?

 

예로부터 좋은 이웃, 좋은 친구와 함께 산다는 것은 인생에서 무엇보다도 가장 행복한 일로 여겨졌습니다.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은 가장 소중하고 또 오래갑니다. 그럼 좋은 이웃, 좋은 친구는 어떻게 만들어가는 것일까요?

 

널뛰기할 때 내가 높이 올라가려면 상대를 더 높이 올려주어야 합니다. 만남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격이 높아지려면 상대를 배려하고 상대의 격을 더 높이 올려주어야 하지요. 남을 험담하고 깎아내리며 자신이 높아지려는 것은 소인배들이 하는 짓입니다

 

덕향보다 더 향기로운 것은 없습니다. 모든 향기는 바람을 만나면 사라지나 덕향은 바람도 뚫고 갑니다. 부드럽지만 또 무엇보다 강하기도 한 것이지요.

 

[이야기 하나]

여수에서 덕을 베풀어 가문의 명성과 목숨을 지킨 명문가가 있었습니다. 봉소당(鳳巢堂)은 한말에 장사를 해서 큰돈을 번 12천 석의 대부호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잘난 척하지 않고 늘 가난한 과객과 소작인들을 후하게 대접했지요. 그런데 아홉 명이나 되는 자식들을 먹여 살리느라고 소작료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소작인이 있었습니다.


그 처지가 딱하다고 그냥 눈감아 주면 다른 소작인들도 다 문제를 제기할 것이기 때문에 별도의 수단을 취했습니다.

 

그래서 자식이 많은 소작인에게는 수백 가마의 쌀을 배에다 싣고 내리는 하역작업을 맡겼습니다. 그 대가로 소작료를 면제해주면 다른 소작인들과의 형평성에도 문제가 없었지요.

 

[이야기 둘]

여수·순천사건이 났을 때 (1949.10.19) 여수에서 가장 부잣집인 봉소당의 11대 후손인 김성환은 33세의 젊은 나이로 제일 먼저 좌익들에게 잡혀갔습니다. 그런데 당시 좌익의 대장이 바로 그 소작인의 아들이었지요.

 

김성환이 끌려오자 그 대장은 옆에 있던 2명의 호위병에게 밖에 나가 있어.”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의자를 벽 쪽으로 돌려놓고 아무 말 없이 신문만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침묵 상태로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났습니다.

 

끌고 왔으면 심문을 해야지, 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벽을 향해서 신문만 보고 있을까 이런 의문을 품고 있던 김성환은 30분쯤 지날 무렵 도망가라는 뜻으로 판단하고 창문을 통해 야산으로 도망쳐 목숨을 건졌습니다.

 

소작인의 아들은 직책상 대놓고 도망가라고 이야기할 수 없는 처지였고, 그렇다고 자기 조부 때부터 은혜를 입은 봉소당 아들을 죽일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야기 셋]

어느 작은 마을에 국밥집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아이와 할머니가 들어와서 국밥 한 그릇을 시켰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아이에게 그 국밥을 건네고는 맞은편에 앉아 깍두기 한 개만 오물오물 드시며 손자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보셨습니다.

 

다 먹고 나서 할머니가 계산대로 오십니다. 옷 속 이곳저곳에서 꼬깃꼬깃한 돈을 꺼내는 것을 보고, 주인은 안쓰러운 마음에 돈을 안 받고 싶었는데 혹시나 마음을 상하게 하지나 않을까 고민하다가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인은 할머니 오늘은 돈 내지 않으셔도 됩니다. 100번째 손님에게는 공짜로 국밥을 드립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와 손자는 기쁜 마음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서 그 국밥집 건너편에 한 아이가 앉아 있는 게 보였습니다. 바닥에 큰 원을 그려놓고 돌멩이를 던지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며칠 전 할머니와 함께 온 그 아이였습니다.

 

손님이 한 명씩 올 때마다 큰 원에 돌을 던져 넣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는 할머니에게 국밥을 드시게 하고 싶었지만 돈이 없으니까 공짜 손님으로 들어갈 걸 계산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손님이 많지 않아서 돌멩이가 몇 개 없었습니다. 실망한 아이의 얼굴이 멀리서 보였습니다. 국밥집 주인은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서 전화를 걸기 시작했습니다.

 

, 김 사장, 우리 국밥집에 손님들 좀 많이 데리고 와, 내가 공짜로 먹여 줄 테니까? 될 수 있으면 많이 와야 해박 선생님, 오늘 우리 집에 오셔서 국밥 좀 드시죠. 제가 오늘 쏩니다. 친구 분들 좀 많이 모시고 오세요.”

 

조금 지나자 가게에 손님들이 몰려옵니다. 아이의 손이 빨라집니다. 돌멩이가 늘어납니다. 40, 50, 60, 99개가 되자 급히 할머니를 모셔왔습니다. 그리고 자신 있게 아이가 말합니다. 우리가 백 번째 손님이지요?”

 

아이는 할머니 앞에 국밥을 놓고 자신은 깍두기를 오물거리며 할머니가 드시는 것을 행복한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국밥집 주인 역시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았습니다.

 

아이를 생각하는 할머니의 마음도 아름답고 또 할머니를 생각하는 손자의 마음도 아름답지만, 가장 아름다운 마음은 국밥집 주인의 마음입니다. 두 사람만을 위한 감동의 이벤트를 준비한 주인의 마음, 그 마음이 바로 덕인의 마음입니다.

 

덕의 향기는 만리를 갑니다. 이 세상에서 덕보다 더 큰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덕인은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 더 조심하고 챙기는 사람입니다. 7~80년대 사람들이 순박했던 그 시절이 그립네요. 우리 모두 덕향만리덕인의 길을 가면 얼마나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