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생(後生) - 이재무
후생은 마도로스로 살아가리라
가정 같은 건 꾸리지 않으리라
각 나라 항구마다 안개처럼 나타나서
염문을 뿌리고 고양이처럼 사라지리라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바람처럼 떠돌다가 거품처럼 사라지리라
서너 개의 외국어를 익히고
아코디언 연주로 향수를 달래리
매일 아침 구두를 닦고 상아 파이프로
담배를 피우리
삶은 짧고 추억은 깊으니
오직 현재에만 몰두하리라
마음껏 아름답게 시간을 낭비하리라
나는 표절 시인이었네
나는 표절 시인이었네 고향을 표절하고 엄니의 슬픔과 아부지의 한숨과 동생의 좌절을 표절했네 바다와 강과 저수지와 갯벌을 표절하고 구름과 눈과 비와 나무와 새와 바람과 별과 달을 표절했네 한 사내의 탕진과 애인의 눈물을 표절하고 기차와 자전거와 여관과 굴뚝과 뒤꼍과 전봇대와 가로등과 골목길과 철길과 햇빛과 그늘과 텃밭과 장터와 중서부지방의 사투리를 표절했네 그리고 그해 겨울 저녁의 7번 국도와 한여름의 강진의 해안선을 표절했네 나는 표절 시인이었네
너무 큰 슬픔
눈물은 때로 사람을 속일 수 있으나 슬픔은 누구도 속일 수 없다. 너무 큰 글픔은 울지 않는다. 눈물은 눈과 입으로 울지만 슬픔은 어깨로 운다. 어깨는 슬픔의 제방. 슬픔으로 어깨가 무너지던 사람을 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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