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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언 전 의원, 8년 전 가상 유언장…"너희는 정치 안 했으면"

풍월 사선암 2019. 7. 17. 09:01

정두언 전 의원, 8년 전 가상 유언장"너희는 정치 안 했으면

 

1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북한산 자락길에서 숨진 채 발견된 정두언(62·사진) 전 새누리당 의원의 유서에는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정 전 의원은 8년 전 종합문예지인 한국문인에 기고했던 가상 유언장이 회자되고 있다. 정 전 의원은 A4용지 한장 반 분량의 이 가상 유서에 가족에 대한 사랑, 치열했던 인생, 부모님에 대한 후회 등을 담아냈다.

 

그는 ‘OO, OO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라는 가상 유언장 첫 부분에서 "아빠가 이 세상에서 너희를 제일 사랑했다는 사실은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마지막으로 꼭 해주고 싶었다""너희가 있어 나는 늘 행복했고, 너희가 없었으면 내 인생은? 글쎄?"라고 적었다.

 

당시 재선 의원이었던 그는 "이제 와서 고백하지만 난 너무 완벽한 인생, 후회 없는 인생을 추구해왔다"면서 "애초부터 되지도 않을 일인 걸 알았지만, 결코 포기가 안 되더구나. 그 덕분에 내 인생은 너무 고달팠던 것 같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막상 눈을 감으려니 후회가 되는 일도 많구나. 솔직히 난 우리 부모님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단다"라며 "하늘나라에 가면 만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부모님께 사과도 받고 사죄도 드리고 싶구나"라고 부모님에 대한 후회도 표현했다.

 

정치인으로의 힘든 삶도 털어놨다. 그는 "정치라는 거칠디거 친 직업 때문에 (마음이) 많이 상하고 나빠졌지"라며 "너희도 가급적 정치는 안 했으면 좋겠다. 한번 발을 담그면 빠져나오기가 참 힘들지. 늘 권력의 정상을 향해서 가야 하니까"라고 했다.

 

그는 "유언장을 처음 쓸 때는 막연하고 막막했는데 이런 식으로 쓰다 보니 끝이 없을 것 같다""속편을 더 쓰기 위해서는 며칠이라도 더 살아야겠구나"라고 끝을 맺었다.

 

조선일보 2019.07.17 08:09




가상 유언장 (호희, 호찬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

 

아빠가 이 세상에서 너희를 제일 사랑했다는 사실은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마지막으로 꼭 해주고 싶었다. 너희가 있어 나는 늘 행복했고, 너희가 없었으면 내 인생은? 글쎄? 물론 어련히 잘 하겠지만 엄마를 부탁한다. 난 엄마에게 분명히 좋은 남편이 아니었다. 엄마뿐 아니라 너희에게도 사과를 하고 싶구나. 엄마는 정말 좋은 사람이고, 난 엄마가 아니었으면 내 인생은 정말 엉망이 되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엄마에게 잘 해주고 싶었는데, 몹시 후회가 된다. 너희가 내 몫까지 해주지 않겠니? 면목이 없지만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막상 이곳을 떠나려니 아쉬운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구나. 이제 와서 고백하지만, 난 너무 완벽한 인생, 후회 없는 인생을 추구해왔다. 애초부터 되지도 않을 일인 걸 알았지만 결코 포기가 안 되더구나. 그 덕분에 내 인생은 너무 고달팠던 것 같다. 이제 좀 여유를 가져보려 했더니 하나님은 그 기회를 안 주시는구나. 일종의 벌인 셈이지. 인생을 남용하려 한 죄! 너희들은 나처럼 헉헉대며 살지 않기를 바란다. 물론 너희들은 엄마를 닮아서인지 잘 하더구나.

 

그래도 너희에게 한마디 충고를 남긴다면, 인생에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시련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고 믿기를 바란다. 누구나 그렇듯이 내게도 혹독한 시련이 많이 있었지만, 결국 그것을 극복하면 내 인생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가 되더구나. 하나님은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시련을 더 주신다고 믿기를 바란다.

 

한편으로, 막상 눈을 감으려니 후회가 되는 일도 많구나. 솔직히 난 우리 부모님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단다. 어렵고 힘들게 사시긴 했지만, 너무 거칠게 사신 탓인지 자식들을 너무 화나고 힘들게 하셨지. 하늘나라에 가면 만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부모님께 사과도 받고 사죄도 드리고 싶구나. 호희가 언젠가 내가 한 말에 화가 나 며칠간 말도 않고 있다가미안하다는 말이 그렇게 힘들었나요란 책을 내게 준 게 기억이 난다. 그간 너희들에게 상처를 준 일이 있으면 모두 한꺼번에 미안하다고 할 테니 아빠를 용서해주기 바란다. 그리고 너희 아이들에게도 언제라도 미안하다는 말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홍은동 장동건이었다가 최근 홍은동 현빈으로 바뀐 호찬이에게 특히 미안한 것은 어릴 적 그렇게 예뻤을 때 예뻐해 주지 못한 일이다. 가끔 호찬이의 어릴 적 사진을 보면 손자만 낳아봐라. 곱빼기로 예뻐해 줄게하는 사랑의 욕구가 용솟음친다. 근데 그걸 아직껏 못하고 있다니, 물론 너희가 24, 26살이긴 하지만.

 

난 너희가 자랑스러운 게, 너희들은 남매가 사이가 너무 좋았지. 물론 지금도 그렇고. 우리 형제들이 그렇게 못 살아서 그런지 아빠는 너희들이 너무 부러웠단다. 너희는 참 마음이 비단결같이 고운 사람들이다. 아빠도 원래는 그랬는데, 정치라는 거칠디 거친 직업 때문에 많이 상하고 나빠졌지. 너희도 가급적 정치는 안 했으면 좋겠다. 호희가 약간 기질이 있어보여서 하는 말이다. 여기에 한번 발을 담그면 빠져나오기가 참 힘들지. 늘 권력의 정상을 향해서 가야 하니까

 

막상 눈을 감으려니, 눈에 밟히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구나. 어련히 잘 하겠지만 호리, 연이 잘 돌봐주고, 연이는 늦었지만 결혼을 시켰으면 한다. 호리가 세상을 떠나면 연약한 연이가 홀로 집을 지키며 견디기가 몹시 힘들 것 같다. 연이도 자기 엄마 닮은 딸을 낳아 같이 살면 되지 않겠니? 연이가 몸이 약해 걱정이지만 아빠는 그랬으면 한다.

 

, 너희들은 엄마를 닮아 정리정돈이 잘 안되는 건 사실이 아니니? 내가 없으면 누가 그 일을 할지 걱정이구나. 도저히 안 될 것 같으면, TV에서 봤는데, 정리 알바생도 있더라. 하늘에서 정리가 안 된 집을 내려다보면 너무 갑갑할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니 새겨들었으면 한다.

 

, 너희들은 잘 모르겠지만 엄마는 배가 고프면 신경질이 심해지는 스타일이다. 그것 때문에 체중관리가 안돼 늘 고생이지만. 그러니 엄마가 공연히 짜증을 내면 급히 먹을 것을 내밀 준비를 해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엄마 코고는 것도 너희는 잘 모를 것이다. 혹시 엄마랑 같이 자게 되면 먼저 잠드는 것이 상수니 잊지 말길 바란다.

 

유언장을 처음 쓸 때는 막연하고 막막했는데, 이런 식으로 쓰다보니 끝이 없을 것 같다. 속편을 더 쓰기 위해서는 며칠이라도 더 살아야겠구나. 호희야, 아빠한테 우황청심환 좀 가져다주렴

 

 

이 가상유언장은 사단법인 새한국문학회 에서 발간하는 종합문예지 한국문인 6/7월호 '못다한 이야기 종이배에 싣고' 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