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애송시

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 - 조지훈

풍월 사선암 2019. 1. 31. 11:55

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

 

조지훈 시비 건립

 

조지훈 선생의 시비 뒤로 그의 옛 연구실이 있던 서관이 보인다


지난 29() 오후 5시 서관에서 인촌기념관으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조지훈 시비 건립 제막식이 있었다. 조지훈 시비 건립은 본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 설립 6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조지훈 선생 타계한 지 38년만에 세워졌다. 하늘, , 사람을 각기 상징하는 화강암 세 조각으로 만들어진 시비 앞쪽에는 <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가 새겨졌으며 뒷면에는 조지훈 선생의 약력이 새겨졌다. 시비에 담긴 글씨는 조지훈 선생의 부인 김난희 여사가 직접 썼다.

 

4·19 혁명이 일어난 지 보 름 뒤인 196053일자 본지에 어느 스승의 뉘우침 에서라는 부제와 함께 실렸던 이 시는 혁명 전 혼탁한 자유당 정권 상황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교수들의 자기반성과 혁명에 몸을 바쳤던 학생들에 대한 찬사를 담고 있다.


◀시비 제막식에 참석한 사람들

 

제막식에서 조지훈 시비 건립 추진 위원회 위원장 최동호 교수(문과대 국어국문학과)"조지훈 선생이 돌아가신 뒤 꾸준히 시비 건립을 추진해왔지만 이제서야 시비가 건립됐다"며 그 동안의 경과를 설명했다. 이날 제막식에는 조지훈 선생의 장남 조광열씨 등 유족과 홍일식 전 총장을 비롯한 학내 인사, 교우와 재학생 약 200여명이 참석했다. 기념사와 축사에 이어 성유저(문과대 국문06)씨가 시비에 새겨진 <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를 낭독했으며, 시인 정진규(문과대 국문58), 오탁번 교수(문과대 영문63)등이 축시를 낭독했다


시비에 새겨진 <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


한편, 시비 제막식이 끝난 뒤, 백주년 기념관에서 본교 국어국문학과 설립 60주년을 기념하는 축하 공연과 만찬이 이어졌다.


고대신문사 조은경 기자 승인 2006.10.05 00:49



늬들 마음 우리가 안다

- 어느 스승의 뉘우침에서 -


조지훈


그날 너희 오래 참고 참았던 義憤이 터져

怒濤와 같이 거리로 거리로 몰려가던 그때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硏究室 창턱에 기대 앉아

먼 산을 넋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午後 二時 거리에 나갔다가 비로소 나는

너희들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물결이

議事堂 앞에 넘치고 있음을 알고

늬들 옆에서 우리는 너희의

불타는 눈망울을 보고 있었다.

 

오늘이라 왜 이다지 더욱 세찬고

이룩하기도 전에 흔들리는 社稷

艱難한 운명 속에

 

十年이란 세월이

흘러간 오늘

하늘이여 또 한번

열리라 비는 마음!

 

산천도 많이는 변했구나

鳳凰은 오지 않고

까마귀떼만 어지러이

우짖는다 해도

 

이 터전은 조상이 점지하신

못 잊을 고장

우리의 소망은 끊일 수 없다.

 

오늘도 國土의 둘레를

바닷물은 꿈결같이 찰싹이고

하늘은 예대로 翡翠빛 하늘

한떼의 丹頂鶴은 훨훨 날아 오르라.

 

이는 흰 옷 입은 겨레의

조촐한 마음의 상징이어니

아 그런 날을 기다리며 산다.

나의 祖國!





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

-어느 스승의 뉘우침에서

 

趙 芝 薰(조 지 훈)

 

그날 너희 오래 참고 참았던 義憤(의분)이 터져

怒濤(노도)와 같이 거리로 거리로 몰려가던 그때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硏究室(연구실) 창턱에 기대 앉아

먼산을 넋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午後 二 時(오후 두 시) 거리에 나갔다가 비로소 나는 너희들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물결이

議事堂(의사당) 앞에 넘치고 있음을 알고

늬들 옆에서 우리는 너희의 불타는 눈망울을 보고 있었다.

사실을 말하면 나는 그날 비로소 

너희들이 갑자기 이뻐져서 죽겠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쩐 까닭이냐.

밤 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나의 발길은 무거웠다.

나의 두 뺨을 적시는 아 그것은 뉘우침이었다.

늬들 가슴 속에 그렇게 뜨거운 덩어리를 간직한 줄 알았더라면

우린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 학생들은 氣槪(기개)가 없다고

병든 先輩(선배)의 썩은 風習(풍습)을 배워 不義(불의)에 팔린다고

사람이란 늙으면 썩느니라 나도 썩어가고 있는 사람

늬들도 자칫하면 썩는다고……

 

그것은 정말 우리가 몰랐던 탓이다.

나라를 빼앗긴 땅에 자라 악을 스며 지켜왔어도

우리 머리에는 어쩔 수 없는 병든 그림자가 어리어 있는 것을

너희 그 淸明(청명)한 하늘 같은 머리를 나무램 했더란 말이다.

나라를 찾고 侵略(침략)을 막아내고

그러한 自主(자주)의 피가 흘러서 젖은 땅에서 자란 늬들이 아니냐.

그 雨露(우로)에 잔뼈가 굵고 눈이 트인 늬들이 어찌

民族萬代(민족만대)의  脈脈(맥맥)한 바른 핏줄을 모를 리가 있었겠느냐.

 

사랑하는 학생들아

늬들은 너의 스승을 얼마나 원망했느냐

現實(현실)에 눈감은 學問(학문)으로 따리장수가 한다고

너희들이 우리를 민망히 여겼을 것을 생각하면

정말 우린 얼굴이 뜨거워진다. 등골에 식은 땀이 흐른다.

사실은 너희 先輩(선배)가 약했던것이다 氣慨(기개)가 없었던 것이다.

每事(매사)에 쉬쉬하며 바로 말한마디 못한것 그 늙은 탓 純粹(순수)의 탓 

超然(초연)의 탓에 어찌 苛責(가책)이 없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너희를 꾸짖고 욕한 것은

너희를 경계하는 마음이었다. 우리처럼 되지 말라고

너희를 기대함이었다. 우리가 못할 일을 할 사람은 늬들 뿐이라고―

사랑하는 학생들아

가르치기는 옳게 가르치고 행하기는 옳게 행하지 못하게 하는 세상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스승의 따귀를 때리는 것쯤은 보통인

그 무지한 깡패떼에게 정치를 맡겨놓고

원통하고 억울한 것은 늬들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럴줄 알았더면 정말

우리는 너희에게 그렇게 말하진 않았을 것이다.

가르칠 게 없는 훈장이니

선비의 정신이나마 깨우쳐 주겠다던 것이

이제 생각하면 정말 쑥스러운 일이었구나.

 

사랑하는 젊은이들아

붉은 피를 쏟으며 빛을 불러 놓고

어둠 속에 먼저 간 수탉의 넋들아

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 늬들의 공을 온 겨레가 안다.

하늘도 敬虔(경건)히 고개 숙일 너희 빛나는 죽음 앞에

해마다 해마다 더 많은 꽃이 피리라.


아 自由(자유)를 正義(정의)를 眞理(진리)를 念願(염원)하던

늬들 마음의 고향 여기에 이제 모두다 모였구나.

우리 永遠(영원)히 늬들과 함께 있으리라.

 

1960. 4. 20.

 

<196053-고대신문 제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