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싸하고 쌉싸래한 그 맛, 전국 소주 기행(紀行)
한국인의 희로애락과 함께 한 술이라면 단연 소주를 꼽을 수 있다. "언제 소주 한잔하자"는 인사가 정겹게 느껴지는 주당(酒黨)이라면, 국내 여행을 계획할 때 '이것 한장이면 준비 끝'이다.
국내 여행의 재미 중 하나는, 바로 그 지역만의 특색이 담긴 음식을 먹어보는 것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의 묘미를 느끼며 그 지역의 음식을 즐길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또 있다. 바로 그 지역에서 즐기면 더욱 맛있고 특별하게 느껴지는 지역별 소주다.
지역별 소주가 생긴 이유
정부는 1973년 지방 소주 업체를 육성한다며 1도(道) 1사(社) 규정을 만들었다. 이 규정 때문에 1970년까지만 해도 200여 개였던 소주 업체는 통폐합을 통해 10년 뒤 10여 개로 대폭 줄었다. 1976년에는 주류 도매상들이 사들이는 소주의 50% 이상을 자기 지역 소주회사에서 사도록 하는 '자도주(自道酒) 의무구입제도'도 마련했다. 이 자도주 보호규정은 1996년 헌법재판소의 "자유경쟁원칙에 위배된다"는 위헌 결정에 따라 폐지됐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해당 지역 소주 제조업체의 지역 정서 호소 활동 등으로 각 지역에서 생산된 소주가 선호됐다.
1998년 10월 19일 하이트진로가 알코올 도수 23도의 '참이슬'을 출시하기 전 소주의 알코올 도수는 25도였다. 기존 도수보다 2도 낮춘 '참이슬' 출시 2년 만에 하이트진로는 전국 시장 점유율 50%대라는 안정적인 기반을 갖게 된다. 2조 원으로 추정되는 국내 소주 시장에서 업계 1위 지위를 단단하게 다졌다. 출시 당시 23도 제품으로 출발한 '참眞이슬露'은 리뉴얼 과정을 통해 현재는 20.1도로 도수가 낮아졌으며(現 참이슬 클래식) 17.8도 참이슬 후레쉬와 함께 국내 소주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인기 안주들 - (왼쪽 위부터)쭈꾸미 숙회, 닭발, 돼지껍데기, 오돌뼈, 대창, 골뱅이, 삼겹살, 감자탕, 홍합탕
두산주류는 2006년 알코올 도수 20도의 '처음처럼'으로 참이슬에 반격을 시도했다. 두산주류는 1993년 강원도 소주 업체인 경월소주를 인수했고, 이후 2009년 롯데주류에 인수됐다. '처음처럼'은 출시 17일 만에 1천만 병, 6개월도 안 돼 1억 병이 판매되는 등 성공 가도를 달렸다. 소주 원료의 80%가량을 차지하는 물을 '알칼리 환원수'로 바꾸고, '물 입자가 작아 목 넘김이 부드러운 소주', '세계 최초 알칼리 환원수 소주'임을 강조해왔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도루묵·양미리 구이, 오징어 순대, 도치알탕, 장치찜
충북의 대표적 향토기업인 ㈜충북소주의 '시원한 청풍'은 일라이트(illite)* 정제공법을 도입해, 부드럽고 깨끗한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 청풍명월의 본향인 제천시 청풍면의 이름을 떠올리게 한다.
* 일라이트(illite): 육각수를 만드는 음이온을 다량으로 발생시키는 견운모의 일종으로 수중에서 다량의 용존산소를 발산하고 물분자를 활성화시키는 성분으로 알려져있다.
(왼쪽부터) 도리뱅뱅이, 붕어찜, 어죽
대전·충남 지역의 대표 소주인 맥키스컴퍼니의 'O2린'은 청정산소를 3단계에 걸쳐 주입해 용존 산소량을 3배로 높였다며, 부드럽고 산뜻한 소주의 맛을 강조하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굴 구이, 물잠뱅이탕, 간재미 회 무침, 굴전, 굴 보쌈, 생선국수
'참이슬'로 전국 소주 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하이트진로는 2013년에 지방 소주 회사 '보배'와 합병했다. 1957년에 설립된 보배는 전북지역의 대표적 소주 회사로 1997년 하이트진로 계열에 편입됐다. 현재 하이트진로의 '하이트'는 전북 지역의 대표 소주로 참이슬과 함께 하이트진로의 1위 굳히기에 일조하고 있다.
(왼쪽 위부터) 풍천 장어, 백합죽, 애저찜
보해양조의 주력 제품인 '잎새주'는 광주·전남 지역의 대표 소주다. 보해양조는 작년, 잎새주 리뉴얼을 통해 8년 만에 디자인을 바꿨고, 라벨 상단에 캐나다산 메이플 로고를 넣어 '메이플 소주'임을 강조했다. 천연 감미료인 캐나다 청정 단풍나무 수액 함량을 높였다고 한다. 잎새주의 고향인 남도 음식과의 궁합과 소비자 트렌드를 반영해 알코올 도수를 18.5도로 기존 제품 대비 0.5도 낮췄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꼬막 무침, 꼬막탕, 홍어 삼합, 낙지, 해물탕, 민어찜, 민어 부레
금복주의 '맛있는 참' 소주는 대구와 경북 지경의 자도주로 52.9%로 과반을 점하고 있다.(2015년 3월 기준)
(왼쪽 위부터) 황태해장국, 황태찜, 과메기, 대게, 고래고기, 물회, 참문어, 장바우감자탕, 갱시기
좋은데이
무학이 2006년 출시한 소주 '좋은데이'는 '~데이'라는 부산 사투리에 '좋은'이 더해져 탄생했다. '좋다'와 'Good day'라는 중의적인 의미를 가진 친근감 있는 명칭으로 부산·경남을 대표하는 소주로 자리매김했으며, 청정 샘물을 사용한 16.9도의 초 저도(低度) 소주로 인기를 얻고 있다. 2015년에는 '좋은데이 컬러시리즈'를 출시하여 수도권에도 돌풍을 일으켰지만, 차차 과일 맛 소주 인기가 떨어지면서 무학의 수도권 소주 시장 점유율이 낮아졌다.
C1
부산 소주 시원(C1)으로 잘 알려진 대선주조㈜는 올해로 86년 사업 경력을 자랑하는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향토기업이다. 2014년 출시한 '시원블루'는 '2015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대상을 받고, 세계 3대 국제주류품평회 IWSC와 몽드셀렉션에서 각각 동상과 은상을 받는 등 국내외로 맛과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2015년 말에는 '순한시원'을 내놓아 부산의 저도 소주 시장에 새로운 출사표를 던졌다.
화이트
화이트는 무학이 지난 1995년 1월 '자연을 그대로 담은 소주'를 컨셉으로 선보인 소주다. 화이트 소주는 이후 여러 번의 리뉴얼을 거쳐 현재 19도에 이르렀으며, 좋은데이와 함께 무학을 대표하는 소주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왼쪽 위부터) 오향장육, 돼지국밥, 만두, 양곱창
제주도의 술로 가장 널리 알려진 건 투명한 유리병에 담긴 '한라산' 소주다. 술 좀 마신다는 제주 사람들은 그중에서도 '하얀 병 노지 것'을 즐겨 찾는다. ('노지 것'은 냉장고 밖 상온에 둔 소주를 말한다.) 21도의 꽤 높은 도수를 자랑하는 한라산 소주를 미적지근하게 해 더 독하게 마시는 것이다. 제주도의 식당에서 한라산 소주를 주문했을 때 "어떤 걸로 드려요?"라고 묻는다면 차가운 것과 노지 것, 이 옵션을 기억하면 좋다.
진한 노지 한라산 소주를 즐겨 마시는 애주가들이 여전히 많지만, 부드러운 술을 선호하는 트렌드에 따라 계속해서 도수를 낮춘 초록색 병의 '한라산 올래'도 출시 됐다.
(왼쪽 위부터) 제주 흑돼지, 고기국수, 전복 삼합, 생선회, 고사리 고기 지짐, 몸국
조선일보 입력 : 2017.06.01 00:00 | 수정 : 2017.06.12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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