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삼겹살 많이 먹는 이유가 '불행한 역사' 때문?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이야기.
전 세계 삼겹살을 한국인이 다 먹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당연히 돼지고기 부위 중 삼겹살이 가장 비싼 곳도 우리나라다.
한국인의 삼겹살 소비는 세계서 월등히 많다. 성인 평균 4일에 한 번 정도는 삼겹살 1인분을 먹는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다. 삼겹살 먹는 날이라는 '삼삼데이'가 있고, 먼지를 마신 뒤에는 삼겹살을 먹어야 목구멍에 낀 먼지를 벗겨낼 수 있다는 속설까지 등장했다. 황사가 나타나는 봄철이면 삼겹살의 소비가 더 늘어나기도 했다. '소주에는 삼겹살'의 줄임말인 '삼소'라는 단어까지 생겼다.
#소주짝궁 #삼삼데이 #서민음식
소주 안주로는 삼겹살이라는 공식이 많은 사람의 머릿속에 자리해오며, 서민의 희로애락을 함께 해온 국민 고기로 자리 잡았다. 삼겹살의 눈부신 인기로 돼지고기의 다른 부위는 판매가 되지 않는 불균형 때문에 안심, 등심, 뒷다릿살, 목살, 앞다릿살 등의 소비를 촉진하는 캠페인까지 등장한 때도 있었다. 숫자 3이 겹치는 3월 3일은 '삼삼데이' 혹은 '삼겹살데이'다. 2003년 파주축협이 구제역 파동으로 어려움에 빠진 양돈농가를 지원하기 위해 3이 겹치는 이 날을 정한 것이 시초다.
수요는 계속 느는데, 가격은 금값
한국 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집계한 지난 5월 말 국내산 냉장 삼겹살 소매가격은 100g에 2238원으로 평년 가격인 1971원보다 13.5%나 올랐다. 여름 휴가철이되면 삼겹살은 더욱 귀한 몸이 된다. 이러한 한국인들의 삼겹살 수요에 따라, 상대적으로 값이 싼 목살부위를 사용하는 '목삼겹'이나 삼겹살에 돼지의 껍질부위를 붙여 정형한 '오겹살'이라는 메뉴까지 등장했다.
대형마트에서는 최근 수입 삼겹살 판매량이 가파르게 늘어났다. 1년 전 전체 삼겹살 매출액 가운데 3.9%에 불과했던 수입 삼겹살은 5월 기준 13.5%로 3배 이상 급증했다. 몇 년 전만 해도 냉동이라는 이유로 인기가 없었지만,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가장 큰 원인은 삼겹살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면서 국산 삼겹살값이 100g에 2000원을 넘는 이른바 '금(金)겹살' 현상이 3년 넘게 계속됐기 때문이다. 국민 식품이며 서민을 대표하던 삼겹살이 서민에게 부담을 주는 금겹살로 변신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됐다.
'삼겹살'이라는 이름부터 왜 한국인은 이 부위를 유독 많이 먹는가에 대한 궁금증은 종종 있어왔다. 서민들이 먹는 삼겹살에 대한 기원과 기록은 찾아보기 힘들어, 그 역사를 정확히 알기란 어렵다. 이 '삼겹살'이 국어사전에 등재된 것은 1994년이다. 살코기와 지방이 3단으로 층층이 겹쳐져 있어 원래 이름은 '세겹살'이었으며, 개성 사람들이 유난히 즐겨 먹었다고 전해진다. 개성 인삼의 '삼(蔘)'과 조화를 이뤄 삼겹살이 되지 않았겠냐는 추측도 있다.
1960~70년대 대규모 양돈산업은 일본에 수출하려고 만들어진 것,
일본 사람들이 본격 고기를 먹기 시작하면서 돼지를 키워야 했다…
맛칼럼니스트 황교익
'불행한 역사' 뒤에 있던 삼겹살의 존재
그렇다면 왜, 그리고 언제부터 즐겨 먹었을까? 고기 및 음식 산업에 오래 종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보면, 1970∼80년대에 이루어진 대일(對日) 수출 때문이라고 한다. 수출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당시, 공산품 수준이 낮을 때라 산과 바다에서 잡고 기른 것도 많이 수출했는데 그중 돼지고기도 있었다고 한다. 일본이 기록적인 경제 호황기를 맞으며 고기 소비가 급속도로 늘었고, 이때 한국에서 기른 돼지의 등심과 안심 부위 수출이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일본은 돈가스용으로 이 두 부위를 선호한다.)
그랬더니 수입해 가지 않은 삼겹살과 족발, 머리, 뒷다리가 한국에 남더라는 것이다. 이때 족발집과 순댓국집이 많이 생겼다. 뒷다리를 이용한 육가공(햄과 소시지) 산업도 호황을 맞았다. 살로우만 햄, 진주햄, 남부햄 같은 브랜드가 우리 귀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시점이다. 삼겹살은 기름이 많아 햄과 소시지에 적당하지 않았고 베이컨은 한국에 아직 퍼지지 못했을 때다. 그래서 자연스레 구이용으로 보급되기 시작했을 것으로 업계는 추측하고 있다.
생소하던 삼겹살, 1970년대 중후반부터 인기
원래 우리는 돼지 갈비를 주로 먹었지 삼겹살을 많이 굽지는 않았다. 삼겹살은 주로 찌개나 수육용으로 팔렸다고도 한다. 과거의 돼지는 사육 방식이 달라서 지금처럼 층층이 기름과 살코기가 엇갈려 쌓이는 삼겹살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말도 있다. 그래서 삼겹살 구이라는 게 존재하기 어려웠다는 말이다. 어쨌든 삼겹살이 시중에서 인기를 끈 것은 1970년대 중후반이라는 게 정설이다.
'원조 서서갈비'로 유명한 연남서식당. 1953년 문을 열었다. /이대현 제공
일본에 수출했던 돼지 부위는 주로 안심, 등심이었고
한국에 남는 것은 삼겹살·족발· 머릿고기·껍데기 등이었다
맛칼럼니스트 황교익
일부 강원도의 산악 지대에서 먼저 굽기 시작했다는 설도 있다. 탄광 도시의 술집에서 목의 기름기를 씻어내는 데 특효라며 삼겹살 구이가 퍼졌다는 것이다. 동시에 도시에 뿌려지면서 값싸게 구워 먹기 시작했다는 유추를 하기도 한다. 이때 연료의 보급도 한몫했다고 추정된다.
삼겹살, 족발, 내장, 머리 고기…
삼겹살과 비슷하게 1970년대 인기 음식은 바로 '족발'이었다. 1960년대에 일본과 대만에 돼지고기를 수출했던 한국은, 잘 안 팔리는 다리·머리·내장·피 등 남은 부속물들을 한국 서민들에게 팔기 시작했다. 이후 족발, 순대, 머리 고기가 인기를 끌게 됐고, 1970년대에는 족발집이 호황을 누렸다.
순대국, 삼겹살, 족발, 머리 고기. /조선DB, PIXABAY
이렇게 삼겹살은 많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지만, 그 유래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분분하다. 비록 값이 싼, 남는 부위였으면 어떠랴. 예부터 한국인과 삶과 함께해 온 이 정겨운 음식은 지금도 눈부신 사랑을 받고 있다.
■ 참고 미식가의 허기 / 박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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