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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의 기력(棋力) 체계

풍월 사선암 2016. 6. 25. 00:07

 

프로와 아마추어의 기력 차이에 대한 문제는 애기가(愛棋家) 사이에서는 빠질 수 없는 가십거리이다. “아마추어 정상급 기사가 정상급 프로기사와 바둑을 둔다면 치수는 어느 정도일까?”, “프로기사끼리의 실력 차이는 존재할까? 존재한다면 어느 정도일까?”, “프로기사의 단위는 어떻게 정해지나?”, “기력이란 무엇인가?” 등 풀릴 듯 풀리지 않는, 정답이 없을 것 같은 문제가 야기되곤 한다.

 

이에 독자들이 궁금할 만한 기력과 관련된 내용을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자료와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프로와 아마의 단위 제도>, <기력의 구성 요인>, <프로기사의 기력 차이>, <프로기사와 아마추어의 기력 차이>로 나누어 설명하고자 한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단위 제도

 

바둑의 실력기력은 급과 단, 그리고 프로의 단이라는 세 개의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급은 18급에서 1급까지 18단계로 나뉘며, 아마추어의 단은 초단에서 7단까지의 7단계로 구분되어 있고, 프로의 단은 초단에서 9단까지 9단계로 나뉘어 있다.

 

일반적으로 급의 단계에서는 한 급에 접바둑의 치석 1점의 차이가 나는 것으로 구분한다. 예를 들어, 3급과 5급의 차이는 두 점의 치수라는 식으로 표현된다. 기력은 수준이 올라갈수록 기술적 내용이 다양해지고 어려워지는 특징을 갖는다.

 

급의 기력에서 최고의 단계인 1급 다음 단계는 으로 구분되는 색다른 영역이다. 현재 아마추어의 단은 초단에서 7단까지로 구성되어 있다. 단과 단 사이의 기력 차이는 치석 1점의 차이라고 할 수 있으나, 실제로는 차이에 대한 기준이 약간 애매하다. 초단에서 3단까지는 한 단에 1점의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지만, 4단에서 7단까지는 한 단에 1점씩이 아니라 그 이상의 차이가 나기도 하고, 때로는 반점이나 그 미만의 차이가 나기도 한다.

 

프로기사의 단은 아마추어의 단과 엄격하게 구별되어 있다. 프로의 단은 제도 시행 초기에는 초단과 3단이 정선의 치수로 두는 기력 차이를 가졌으나, 현대로 접어들면서 기력 평준화 현상이 나타나 단 사이의 차이를 치수로 구별할 수 없게 되었다. 현재 프로의 단은 기력보다도 직업에 종사한 경력을 의미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

 

아마추어 단과 프로 단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아마추어 6단이나 7단의 경우 프로기사 하위 층에 비하여 기력이 결코 낮지 않다고 할 수 있으나, 프로기사 중상위권에게는 정선 정도의 치수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1년 월간 바둑에 게재된 프로아마대항전 공고()와 제3위전 이창호 9단과 김동섭 아마7단의 제3위전 관전기 기사

 

과거 월간 바둑에서 시도한 프로기사 정상급과 아마추어 정상급과의 대결에서는 아마추어 고수 집단이 3점의 치수로 내려간 적도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아마추어 정상급이 프로 고단자와의 대국에서 승리를 거둔 일도 적지 않고, 우리나라에서도 삼성화재배 오픈기전에서 아마추어 대표선수가 프로기사에게 승리를 거둔 일이 있다.

 

따라서 아마추어의 단과 프로기사의 단이 정확하게 어느 정도의 차이가 난다고는 얘기하기가 어렵다. 프로의 단과 아마추어의 단을 구별하여 한국기원에서는 아마추어 단을 아라비아 숫자로(예를 들어, 2단과 같이), 프로 단을 한자로(예를 들어, 단처럼) 표기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 한국기원에서는 프로기사와 아마추어의 기력 차이를 치석수로 환산하여 제시하고 있다.

 

치수 조정 기준표

 

우리나라 프로기사의 단위 제도는 1950620일 한국기원에서 처음으로 제정하였다. 19544101회 승단대회를 개최한 이후 승단대회 규정은 여러 번 개정을 거쳐, 20117월 개정된 승단대회 규정을 현재 사용하고 있다. 승단은 모든 기사들이 참가하는 종합대회 성적을 바탕으로 하는 일반승단과 특별한 성적을 올리면 승단하는 특별승단으로 나뉜다.

 

한국기원 승단대회 규정

 

201412월 현재 한국기원 소속 기사는 <3>과 같이 총 296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총 단위의 수는 1,562단이다.

 

201412월 현재 한국기원 소속 프로기사 단위 구성

 

이와 같은 프로기사의 단위 제도의 약점은 단위의 본질이 기력 차이를 구분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기력 차이를 분명하게 나타내지 못하는 데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기원에서는 배태일 박사가 통계적 이론에 바탕을 두고 고안한 프로기사 랭킹 제도(The Elo Rating System)’2009년부터 도입하여 시행하고 있다.

 

아마추어의 기력체계는 약간 복잡하다. 한국기원은 공식적으로 아마추어의 기력은 단(초단7)과 급(118)25개의 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한국기원은 대한바둑협회와 함께 30급부터 시작하는 어린이 단급체계를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어린이 승단·급 심사대회에서 대국을 하고 문제를 푸는 어린이들

 

아마추어의 단위는 한국기원에서 인정하는 기력체계 이외에 대국 장소에 따라 오프라인, 온라인으로 분류할 수 있다. 오프라인의 경우 흔히 기원중심의 단위체계이다.

 

일반적으로 기원에서는 단이 없으며 최고 1급부터 기력을 구분하고 있다. 동일한 1급이라 할지라도 최강1, 1, 보통1, 약한1급과 같은 기력 내에 또 다른 기력 차이의 구분을 하고 있다. 기원내의 상대적 차이에 의존하는 현실적인 방식을 취함으로써, 기원마다 차이가 나며 지역마다 차이가 나는 문제점이 있다.

 

온라인의 경우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벗어나 다국적 불특정 다수와 대국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각 사이트마다 약간씩 다르게 승강급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25급부터 9단으로 나뉜다. 온라인 단위 제도는 방대한 실전결과를 이용하여 단위 체계를 만들어 기력 차이를 안정적으로 제시하는 특징이 있다.

 

기력의 구성 요인

 

기력은 바둑을 두어나감에 따라 필요한 능력으로, ‘바둑 내적 요인바둑 외적 요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바둑 내적 요인이란 바둑기술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지식, 수읽기, 가치판단으로 구성되어 있고, 바둑 외적 요인은 심리적 요인, 환경적 요인, 체력 요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력요인 구성도

 

지식은 바둑돌의 모양 형성과정과 결과, 그리고 각 모양이 갖고 있는 특성에 대한 오랜 바둑의 경험에서 추상화 된 비교적 보편적인 바둑 지식이다. 수읽기란 대국 중 목표 상태로 이르게 할 수단을 찾아 그 결과를 검색하는 작업이다. 가치판단은 몇 가지 가능한 돌의 변화 중에서 최선의 것을 평가, 선택하는 일이다.

 

심리적 요인은 대국자의 긴장도(심리 불안의 정도), 상대에 대한 인지, 착수 선택에 나타나는 개인적인 기질, 컨디션 등 대국자의 심리상태에 따라 게임 결과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다. 환경적 요인이란 제한시간(게임 시간), 대국장소(& 어웨이), 대국 환경(대면바둑 또는 인터넷바둑) 등 게임의 승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체력은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외적요인이다.

 

순수하게 바둑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바둑 내적 요인만을 가지고 기력을 정의하는 것을 협의의 기력이라 하고, 경기력(競技力)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외적 바둑 요인을 포함하여 기력을 정의하는 것을 광의의 기력이라고 한다.

 

2010년 아시안게임 바둑 부문에 참가해 금메달을 획득한 이슬아 3단은 대국 당시 컨디션 조절과 집중력 향상을 위해 머리에 침을 꽂고 대국해 화제가 됐었다.

 

프로기사의 기력 차이

 

프로기사의 기력 차이는 너무 조밀하여 일반적인 치수로 구분하기가 힘들다. 바둑 TV 해설가로 유명한 김성룡 9단의 에피소드다.

 

2000년 어느 봄 날 필자에게 김9단이 말하기를 나는 이제 이창호 9단에게 한계를 느껴 승부세계를 떠나려 한다.”는 것이다. 이 당시 김 9단은 한국랭킹 10위 안에 드는 실력의 소유자였다. 얼마나 차이가 나기에 그러나 싶어 물었더니 포석도 약하고 중반, 사활, 끝내기까지 모든 면에서 부족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너무 궁금한 나머지 정선 정도 차이인가?”하고 되물었더니 김 9단이 나도 프로기사라며 버럭 화를 내는 것이었다. 아마추어인 필자는 어이가 없었다. 화를 내는 이유가 궁금해 그럼 어느 정도 차이가 나는지재차 묻자 김 9단 왈, “집으로 환산하면 2집 이내일 거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마추어의 바둑에서는 끝내기에서만 몇 집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다반사라 적잖게 놀랐다. 바둑의 모든 면에서 차이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2집 이내라는 것과 그것을 극복하기 힘들어 승부를 포기하겠다는 것에서 프로기사의 기력에 대한 깊이를 새삼 이해하게 되었다.

 

그럼 현재 우리나라 프로기사들의 기력 차이는 얼마나 될까? 너무 민감한 문제라서 기력에 대해 연구해온 필자도 설명하기가 조심스럽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프로기사의 실력을 지속적으로 평가해 온 국가대표 지도부와 한국바둑리그 감독, 그리고 선수에게 면접조사를 실시한 결과로 설명을 대신하고자 한다.

 

정보 공유가 원활하지 않았던 1990년대 이전에는 프로기사의 기력 차이가 실제로 약간 컸던 것 같다. 1980년대 조훈현 9단에 도전했던 도전 5강의 치수 고치기는 정선으로 끝났지만 2점까지 내려가는 수모를 당할 정도였다. 하지만 인터넷의 발달로 거의 실시간 정보 공유가 가능한 현재에는 그 차이가 매우 적다고 한다. 기력차이가 나타나는 가장 큰 요인은 공통적으로 수읽기를 들었다. 수읽기 차이는 공부량과 비례한다고 했다. 100년에 한번 나올까말까 하는 기재가 있더라도 공부량을 따라가기 힘든 것이 현실이란다. 2003LG배 세계대회를 우승한 이세돌 9단이 세계 제일의 기사가 누구인가란 질문에 답한 말이다. “내가 제일 공부를 많이 하기 때문에 내가 세계 제일이다”.

 

세계 최초의 통계적 바둑랭킹 시스템을 창안해 국내 및 세계프로기사 랭킹을 발표하고 있는 배태일 박사

 

배태일 박사가 고안한 한국 랭킹을 기준으로 기력 차이를 설명하기도 하였다. 모 기사는 박정환을 포함한 상위랭커와 약 20위권의 기사 사이의 기력 차이를 집으로 환산한다면 2집 이내라는 것이다. 이들의 승패는 평균 31패 이상의 차이를 보인는 것을 감안하면 2집이란 차이가 얼마나 큰 것인지 알 수 있다.

 

20위권 기사와 50위권 기사는 분명하게 승률 차이가 나는데 그 차이는 1집 정도, 50위권과 100위권과의 차이도 1집 정도로 추산하였다. 그러면서도 상위 랭커와 100위권 기사가 4집 정도의 차이가 나는 것에는 의문을 나타냈다. 논리적으로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보다는 적은 차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기사는 배태일 박사의 랭킹점수를 가지고 기력 차이를 분석하였다. 점수 차이가 500점 정도 나면 상위랭커가 이길 확률이 90% 이상이라는 것이다. 이 경우의 차이도 집으로 환산하면 2집 이내 정도란다. 20위권 기사가 500점 정도의 차이를 보이고 있고, 20위권 기사와 50위권 기사는 200점 차이, 50위권 기사와 100위권 기사는 250점 차이를 나타내는 것으로도 그 기력차이가 조밀하게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프로기사의 집중력은 체력 요인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보통 나이와도 상관관계가 높게 나타나는데 김민희(프로기사, 명지대 겸임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30대 후반이 되면 승률이 현격하게 저하되는 것을 규명하였다. 30대가 되면서 이창호의 성적이 하향세로 돌아선 것은 좋은 예이다. 체력 요인이 승패에 영향을 주는 지에 대한 간접적인 증명은 최명훈 9단의 제안에서 알 수 있다. “모든 기사가 참여하는 기전을 기획한다면, 연령 차이에서 오는 기력 차이 극복을 위해 초읽기 시간을 연령에 따라 다르게 적용하는 것을 제안할 것이다. 10대 기사는 10, 20대 기사는 20, ……, 50대 기사는 50, 60대 기사는 60, 이렇게 준다 해도 젊은 기사가 유리할지 모르겠다.”

 

남자기사와 여자기사의 기력을 비교하면 어떨까? 현재 여자 랭킹 1(통합 랭킹 86)는 최정 5단이고, 2(통합 랭킹 99)는 김혜민 7단이다. 랭킹 1위인 박정환과는 최정이 904점 차이, 김혜민이 958점 차이이다. 위에서 제시한 것을 적용하면 호선으로는 이길 확률이 0에 가깝다. 20위 기사와도 400점 정도의 차이가 나는 것을 감안하면 기력 차이가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정선 정도의 차이는 아니라는 것이 인터뷰에 응한 기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최상위권 기사와 최하위권 기사의 기력 차이는 2점까지도 벌어질 수 있다고 한다. 이는 공부량과 바둑 외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하였다. 갓 입단한 기사와 최정상급 기사와의 기력차이는 정선에 가깝다고 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기력 차이

 

프로와 아마추어 사이의 기력 차이는 시대별로 정리하는 것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40대 이상을 일컫는 시니어의 경우 1점 반에서 2점 정도의 차이가 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로와 아마추어가 함께 참여하는 기전에서 선에 덤5집의 핸디캡을 주고도 프로기사가 우승하는 것을 보면 대략 짐작할 수 있다. 포석 등 기보에 관한 정보를 비교적 용이하게 접하면서 기력차이가 줄어들었다고는 하나 절대적인 공부량과 심리적, 환경적 요인이 작용하는 대회의 성적은 아무래도 프로기사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주니어의 경우는 기력 차이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입단을 목표로 공부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고 프로기사와의 대국기회가 많아지면서 실력 차이가 좁아진 것은 사실이다. 오픈기전에 참가하여 본선에 올라가는 아마추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근거다. 하지만 최상위권 기사와의 치수는 정선 이상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이다. 최정상급 아마추어 대부분이 입단을 하는데, 갓 입단한 프로기사와 최정상기사의 치수가 정선 정도라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또한 최정상의 주니어 아마추어 선수를 순수한 아마추어라 보기는 어렵다는 것을 고려하면 프로와 아마추어의 기력 차이는 2점 이상이라는 것이 더 타당하다.

 

바둑의 수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바둑의 실력 차이 또한 다른 게임에 비해 폭넓게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아마추어가 기력을 향상시키는 방법은 협의의 기력 요인, 즉 바둑 내적 요인을 학습하는 것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프로의 세계는 다르다. 바둑 내적 요인 외에 바둑 외적 요인을 얼마나 잘 통제하는가도 매우 중요하다. 이 글에서는 밝히지 못했지만 바둑 외적 요인이 경기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통해 바둑 실력이 더 향상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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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진환 | 명지대학교 바둑학과 교수, 이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