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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두 번 흔든 인간과 기계의 승리[이세돌 VS 알파고]

풍월 사선암 2016. 3. 14. 08:09

역사를 두 번 흔든 인간과 기계의 승리  

 

[이세돌 VS 알파고]

 

인간과 기계는 선의의 경쟁을 벌일 수 있을까.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에게 3연속 패배하던 이세돌 9(가장 왼쪽)4국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둔 뒤 기자회견장에 앉았다. 가운데는 알파고의 아버지로 불리는 구글 딥마인드의 CEO이자 구글 엔지니어링 부사장 데미스 하사비스 박사, 오른쪽은 딥마인드가 자랑스러워하는 '강화학습'을 총괄하고 있는 리서치 사이언티스트 데이비스 실버 박사다

  

인공지능의 도전을 받아들인 세계 최강의 프로기사는 자신만만했다.

 

여러 분야에서 인공지능은 사람의 능력을 뛰어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둑, 바둑에서만큼은 인간의 실력에 범접할 수 없었다. 19줄 바둑판 속 경우의 수는 우주의 원자 수보다 많고 그것을 모두 탐색하는 건 수퍼컴퓨터로도 수백만년이 걸릴지 수억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바둑은 수많은 과학자들은 좌절시켰다. 몬테카를로 메서드를 가져다 쓰면서부터는 인공지능 바둑의 실력이 일취월장했지만 프로기사를 호선에 이긴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심지어 넉점에도 이길까 말까였다. 획기적인 무언가가 나오기 전까지는 답이 없다고 개발자들은 입을 모았다.

 

그런던 중 구글 딥마인드가 인공신경망 알고리즘을 사용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도전했다. 그들은 심층신경망을 써서 탐색의 범위와 깊이를 줄여서 훨씬 강력해졌다고 주장했다.

 

그 인공지능 알파고는 스스로 학습을 했다. 클라우드에 3000만개의 포지션을 집어넣고서 분석과 자가 대국을 했다. 기보 하나당 200수씩 잡아보니 16만장의 기보다. 이 방대한 양의 기보를 자습한 인공지능은 4주에 100만판의 훈련을 했다. 프로기사가 1년에 1000판을 대국한다고 가정했을 때 프로기사의 대국량 1,000년치를 알파고는 한달 만에 해낸 셈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직관·창의성을 넘어서리라고는 좀처럼 생각 들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인공지능이 유럽에서 활동하는 중국 프로기사와 뒀다는 기보를 보면 굉장히 발전한 인공지능인 것을 알 수 있었지만 프로 수준으로 인정해주기엔 부족했다. 중국 프로기사 판후이와의 대국과 이세돌 vs 알파고 대국 사이엔 5개월이 있었지만 그 기간은 알파고의 기량이 상승하기에 넉넉한 시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세계 최강의 기사 이세돌 9단이 5-0 승리를 자신한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이세돌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 대부분이 이세돌의 압승을 예상했다.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딥러닝 기술을 활용한 구글의 인공지능은 차원이 달랐다. 예상을 깨고 이세돌에게 완승했다. 이세돌은 끌려다니다 졌다. 예상 밖의 결과에 놀란 프로기사들은 그저 이세돌 9단의 컨디션이 별로였겠거니 했지만 기보를 분석해 나가면서 놀라기 시작했다. 정말 완벽했던 것이다. 실수라고 생각했던 인공지능 알파고의 수들은 일리가 있는 수였으며 심지어는 인간 사고를 확장할 만큼 신선한 것도 있었다.

 

201639, 10, 12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이세돌 VS 알파고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1, 2, 3국에서 이세돌은 세 번 모두 불계패했다. 이세돌의 장기인 전투력은 물론 그 어떤 작전도 통하지 않았다. 이세돌은 몹시 무기력해 보였고 알파고는 무결점의 괴물 같았다.

 

1국 때 중국에서 해설을 하며 이세돌다운 모습을 보여달라던 중국 최강의 프로기사 커제 9단은 자신 역시 알파고에게 이길 자신이 없다며 자세를 낮췄다. 세계대회인 몽백합배 통합예선 때문에 대거 중국에 간 한국 프로기사들은 침통했다.

 

한없이 어렵기에, 인간이 아니고서는 해낼 수 없는 지적 영역야말로 바둑이라고 생각했기에 평생 바둑을 했다. 그리고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데 겨우 학습기간 6개월 만에 세계 최강의 실력을 갖춘 인공지능 앞에서 인간의 지혜란 걸 뭘까 허탈해했다.

 

이세돌이 3연패하던 날 12, 중국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던 한국기사들은 알파고에겐 약점이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공격, 수비, 전투력, 초반, 중반, 종반, 전략적 플레이, 형세판단 등 바둑의 각종 요소에서 알파고는 도무지 못하는 게 없어 보였다. 한국 정상급 프로기사 중 한 명은 정선으로 도전해도 자신 없다. 사람이 2점 아래 치수인 것 아닐까.”라고 했다. 모두의 얼굴은 더 어두워졌다. 

 

이세돌 vs 알파고 대국이 치러지는 동안 알파고 팀 일부는 이곳 기술실에서 시각화된 알파고의 상태를 지켜본다. 알파고가 자신이 얼마나 유리하다고 판단하는지도 이곳에서 파악할 수 있다.

 

남은 4, 5국도 전망은 어두웠다. 다섯번의 대국 안에 상대의 약점을 찾는 건 너무 적은 횟수일 수 있었다.

 

이세돌은 숙소에 선·후배 동료기사들이 찾아오면 시종 웃는 얼굴을 해서 찾아온 이가 무엇을 어떻게 말해주고 힘을 실어 줘야 할지 모르게 만들었다. 그러나 어느새 핼쓱해진 이세돌의 얼굴을 보면 얼마나 큰 압박감을 받고 있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세돌은 프로가 되고 나서 힘 한 번 못쓰고 한 상대에게 3번 연속 진 일이 없었다. 그런데 그걸 겪고 있었다. 벽을 마주한 듯 느껴지는 엄청난 힘을 가진 상대 고수는 사람이 아니어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이세돌은 바둑을 두다 말고 고개를 들어 본능적으로 나오는 승부사 특유의 눈빛을 반짝였지만 거기에 알파고는 없고 아자 황이라고 하는 구글 딥마인드의 대만계 과학자가 무표정으로 알파고의 수를 그대로 바둑판에 옮기고만 있었다.

 

이세돌은 144국을 맞이했다. 이세돌 vs 알파고 매치를 기회로, 캐나다에서 유학하던 11살 딸혜림이와 부인 김현진 씨도 한국에 와 있었다. 혜림이는 평소 바둑을 아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아빠가 기뻐하고 힘들어하는 게 바둑 때문이라는 걸 안다. 혜림이는 아빠가 기계와 대국하는 포시즌스 호텔 6층 외신기자 프레스룸에 잠깐 들어와 대형 스크린에 비치는 아빠의 유투브 영상을 바라봤다 

 

'아빠, 힘내세요' 이세돌 9단의 딸 혜림 양이 외신기자 프레스룸에 들어와 영상 속 아빠의 대국을 지켜봤다.

 

이세돌은 2국 때 썼던 포진에서 방식을 조금 바꿔 응전했다. 초중반 이세돌은 포인트를 잃지 않았다. 실리를 착실히 차지해 놓고 알파고가 도발해 오길 바랐다. 그러나 알파고는 자기가 유리한 방식으로 이끌려고 했다. 바꿔치기였다. 바꿔치기엔 정확한 계산, 즉 형세판단이 필요하다. 알파고가 좋아할 만한 것이었다. 중국국가대표팀 수십명이 중국에서 이 바둑을 검토했다. 바꿔치기를 한 시점에서 이세돌은 나쁜 국면은 아니라고 그들은 진단했다.

 

그러나 직후 이세돌이 다소 무리해 보이는 중앙전을 벌였다. 상변과 중앙은 알파고가 점령한 지역이었다. 그곳이 확실한 알파고의 집으로 굳어진다면 이세돌의 패배로 직결되는 것이었다. 이세돌은 알파고의 진영 깊숙이서 싸우자고 했다. 해설자들의 근심도 깊어갔다. 이세돌이 잘 안되는 싸움 같아 보였다.

 

이세돌은 현란하게 싸웠고 마침내 끼우기 묘수를 터뜨렸다. 알파고는 이 때부터 당황한 듯이 어쩔 줄 몰라하는 행마를 연발했다. 한수 한수가 무리였고 악수였다. 지금까지 악수라 판단되는 수를 보아도 알파고의 깊은 뜻이 있겠지 하던 프로기사들은 태도를 바꿨다.

 

아무리 알파고가 뒀다고 해도 악수는 악수다.”

 

조금 더 지나고 나니 알파고의 악수가 맞다는 게 드러났다. 이세돌이 집으로 월등히 앞서기 시작했고 알파고가 수세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몬테카를로 트리탐색을 주력으로 하는, 알파고 이전 세대의 바둑 인공지능들은 알파고의 승리 확률이 감소하고 있다고 수치로 나타냈다.

 

절대 알 수 없을 것 같던 알파고의 약점을 찾아내기 시작한 이세돌.

 

이세돌은 초읽기에 들어가 있었지만 실수하지 않았다. 실수할 만큼 어려운 부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윽고, 알파고가 항복 의사를 나타내는 미니 표시창이 아자황이 보던 모니터에 떴다. 아자황은 알파고의 흑돌 두 개를 바둑판 위에 올려놓았다. 알파고의 불계패. 이세돌이 감격의 첫승을 거두는 순간이었다. 노트북으로 열심히 중계 기사를 쓰고 있던 기자들은 환호하며 손뼉 쳤다.

 

대국을 끝마친 이세돌이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오자 이세돌!’을 연호했다. 이세돌은 부담을 다 떨쳐낸 밝은 표정으로 한 번 이겼을 뿐인데 이렇게 축하받는 건 처음이다.”라고 한 뒤 훗날에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승리라고 했다.

 

중국에서 몽백합배 대국으로 정신 없던 한국 기사들도 갖은 수단을 동원해 이세돌의 대국 소식을 접하고 있었다. 조한승 9단은 주위 기사들에게 이세돌이 이긴 거 알고 있어?”라고 했다.

 

기자가 박영훈 9단에게 카톡 메시지를 보내 이세돌 9단이 알파고의 약점을 찾아낸 모양입니다.”라고 하자 ~ 라는 답이 돌아왔다.

 

기자는 기사를 작성하고 있는 동안에도 바둑을 잘 모르는 어머니와 여동생에게서 이세돌의 승리를 축하하며 기뻐하는 카톡 메시지를 받았다.

 

인공지능이 호선 바둑으로 세계 최강의 프로기사를 이긴 9일과 세계 최강의 프로기사가 약점이 전혀 없어 보이던 인공지능의 허점을 파고들어 승리를 해낸 13, 세계의 역사는 크게 요동쳤다.

 

알파고를 제작한 구글 딥마인드의 CEO 데미스 하사비스 박사와 데이비스 실버 리서치 사이언티스트도 기뻐했다.

 

우리도 기쁘다. 이 같은 알파고의 약점을 파악하기 위해 이세돌 9단 같은 천재 프로기사에게 도전한 것이다.”라고 했다.

 

이세돌 9단이 1승도 못 거둔다면 구글 알파고 팀은 실망했을 것이다. 저들의 애초 목적이 세계 최강의 바둑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개선할 약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저들은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사용하여 궁극적으로는 난치병 분석이나 기후 모델링 같은 난제를 극복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구글 딥마인드 데이비드 실버. 리서치 사이언티스트로서 정책망 내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을 총괄하고 있다. 최근엔 원시 픽셀 입력으로 아타리(Atari) 사의 게임 플레이 방법 학습 프로그램과 같은 강화학습과 딥러닝의 결합에 대한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4국이 열리기 전 데이비드 실버 박사와 잠깐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공식 인터뷰 외에 기자가 알파고 팀과 다른 형식의 인터뷰를 하는 것은 잘 허용되지 않고 있었기에 그저 가볍게 말을 걸어 보았다. 데미스 박사가 학창시절에 바둑을 데이비스 박사에게 가르쳐 주었느냐고 물었더니 데미스 박사가 당시 바둑에 대한 동기 부여를 해준 것은 맞지만 바둑을 배운 것은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서였다.”고 했다. 구글 알파고팀은 전원 바둑을 둘 줄 안다. 아자황 박사가 아마추어 6단으로 최고수이며 나와 데미스 박사는 1급 정도이고 대부분은 초급 실력이다.” 라고 했다.

 

사실 예전부터 구글 임직원 중엔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사내 바둑 클럽도 조직돼있다. 12일 구글 공동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도 바둑에 심취해 창업에 소홀히 했던 자신의 과거 얘기를 꺼냈다.

 

데이비스 박사는 체스를 먼저 알았는데, 체스가 권투로 펀치를 주고 받는 느낌이라면 바둑은 보다 글로벌하고 전략적이며 아름답다고 느껴 바둑을 좋아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 이들이 따지고 보면 바둑인이다. 구글이 이세돌 9단의 승리를 어떻게 생각할지 알 것 같다.

 

 

▲ (좌)세르게이 브린 구글 공동 창업자(오른쪽)4국에서 승리를 거둔 이세돌의 손을 자신의 두손으로 꼭잡으며 축하의 말을 건네고 있다. ▲ (우)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이 치러지고 있는 동안 광화문 거리에는 바둑이 중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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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광 2016-03-14 오전 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