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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렬]의 촌철살인 “프로와 아마추어 식별법 10개항”

풍월 사선암 2016. 6. 25. 00:42

[이홍렬]의 촌철살인 “프로와 아마추어 식별법 10개항”

 

프로와 아마추어 바둑인을 가려내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폼으로만 봐선 잘 식별이 안 된다. 웬만한 프로보다 더 멋진 손동작을 구사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프로를 아마추어로 대한다면 엄청난 실례이고, 아마추어를 프로로 오인하면 바보가 돼 버린다.

 

프론지 아만지도 구별 못하면서 묘수 책만 달달 외운다고 바둑의 심오한 세계를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럼 뭘로 식별하느냐. 요령은 수 백 가지가 있지만 제한된 공간에 몽땅 다 언급할 순 없어 다음 10가지로 압축했다. 이 비결은 고수(高手)와 하수(下手)의 감별법으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1)프로는 두기 전에 생각하고, 아마는 둔 다음에 생각한다

가장 고전적이면서도 기초적인 구별 방법이다. 수읽기의 깊이, 시야(視野)의 차이가 두 부류를 이렇게 갈라놓았다. 숱한 아마추어들이 돌을 갖다놓기 무섭게 비명을 내지르는 것은 한 수 앞도 못 내다보기 때문이다.

 

프로들이야 어디 그런가? 지세(地勢)와 병력(兵力)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사()거리를 정밀계측, 정 조준 후 발사한다. 그 빈틈없는 정교함과 억척스러움이란 병아리 채가는 솔개가 무색하다. 아마추어? 돌팔매 헛손질로 제 팔만 아플 뿐이다.

 

2)프로의 장고는 생각하는 시간, 아마의 장고는 쉬는 시간

시간은 바둑 승부의 중요한 변수. 하지만 프로와 아마가 맞대결하는 경우 시간이란 전혀 의미가 없어진다. 수읽기의 폭에 격차가 있으면 백날을 생각해본들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에 불과하다.

 

아마가 장고할 때만큼 프로들에게 무료한 시간은 없다. 스르르 잠이 올 정도다. 그렇다고 설마 잠이야 자겠는가. 오늘 저녁엔 누구하고 한 잔 할까를 구상하기 딱 좋은 시간이다.

 

3)프로는 머리로, 아마는 입으로 둔다

아마추어끼리 판을 벌일 때 입은 필수 불가결한 군사 장비다. 포문(砲門)이 열렸다하면 상대방에 대한 비하, 경멸, 위협, 기만, 읍소, 엄살 등 온갖 첨단 포탄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온다. 그 형태도 비명, 속삭임, 비웃음, 탄식을 거쳐 노래 가락에 이르기까지 다양함의 극치를 이룬다. 대국 중 가장 원활하게 풀가동되는 신체 기관은 머리도 손도 아닌 입이다.

 

프로의 대국은 거의 참선에 가깝다. 기껏해야 웅얼웅얼 외계어(?)로 푸념하거나 쩝쩝입맛만 다시는 정도다. 가끔 바보야!”하고 자책하는 파계승(?)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상대방보고 하는 소리로 오인할까봐 그 것도 입 속으로 삼켜버린다. 참 인간적으로 연민의 정을 느끼게 만드는 직업이다.

 

4)아마는 멋, 프로는 맛

프로들은 바둑 판 앞에 앉으면 무슨 밥상이라도 받은 기분인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웬 놈의 맛을 그렇게 찾는가. ‘맛이 나쁘다’, ‘맛좋은 끝내기’, ‘맛을 남겼다’, ‘이런 맛’, ‘저런 맛. 대국장에 메뉴판이 돌아다니지 않는 것은 불가사의에 가깝다. 미식가 프로 기사들이 우승하면 상금대신 조미료 세트가 전달될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아마추어들이 추구하는 것은 맛보다는 멋이다. 착점 동작부터 프로 뺨친다. 체조나 피겨처럼 예술점수를 매기지 않는 게 아쉬울 뿐이다. 어디 동작뿐인가. 고압적 모자 씌우기, 과감한 손빼기에다 다케미야가 무색할 5연성, 6연성도 속출한다. 죽을 때도 최후의 단수로 몰릴 때까지 버티다가 장렬하게 전사한다. 일찍 포기(?)하는 프로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시종일관 폼에 살고 폼에 죽는 아마 기객들의 풍류야말로 오청원 선생도 부러워할 멋이자 특권이다.

 

5)프로는 먹기 위해 바둑 두고, 아마는 바둑 두려고 먹는다

이건 두 집단의 본질과 관련된 식별법이다. 프로인지 아마인지 헷갈리는 인물이 있다면 밥 먹겠소, 바둑 두겠소? 하고 물어보라. 바둑을 택하는 쪽이 밥보다 바둑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봐야하는데 십중팔구는 아마추어다. 적어도 밥상 앞에선 아마가 프로보다 윗길인 셈이다.

 

하지만 점심 저녁 건너뛰면서 방내기로 푼돈 긁어모으고 있는 당신은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오늘부로 아마추어 세계에서 축출이다.

 

6)프로는 돈과 명예, 아마는 돈보다 명예

기전이 크고 상금이 많을수록 프로들은 힘을 낸다. 아마추어도 똑같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대다수 아마들에게 돈보다 훨씬 더 소중한 것이 명예다. 6점으로 이겨 몇 푼 챙기느니 3점으로 패해 장렬히 산화하는 쪽을 택한다.

 

이라고 비웃지 말라. 부귀영화를 초개처럼 여기고 명예롭게 한 평생 살다 간 선열(先烈), 지사(志士)의 기개와 맞닿아 있다. 명예 추락을 돈으로 막는이런 이상주의자들 덕택에 오늘도 기원 도처에서 활기찬 장()이 선다. 아마가 지면 지갑이 비지만, 프로가 지면 가슴이 베인다.

 

7)프로는 진 판을 못 잊고, 아마는 진 판이 기억에 없다

이긴 기쁨은 짧고 패한 아픔은 오래간다고 한다. 하지만 이건 프로들에 국한된 얘기다. 아마추어들의 사전엔 패한 바둑은 한 판도 없다. 진 판은 자동으로 기억 회로에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한국기원도 아마추어 전적 따위는 기록으로 안 남긴다. 입만 벌리면 누구누구를 혼내 줬다는 무용담뿐이다. 무지 편리한 시스템이다.

 

프로의 세계에서 승자는 돈과 명예와 자존심 등 모든 것을 가져간다. 패배는 곧 끝장을 의미하므로 진 판이 훨씬 오래 기억된다. ‘The winner takes it all.’ 스웨덴 혼성 그룹 아바의 노래 제목이 프로들의 애환을 함축하고 있다. 그들 멤버 4명은 바둑도 모두 프로급 고수들이었음에 틀림없으렷다.

 

8)프로는 강할수록, 아마는 약할수록 인기가 높다

프로기전 예선은 여간해선 TV나 인터넷으로 중계되지 않는다. 바둑이건 격투기건 최정상급 프로들의 일전을 보고 싶은 것이 구경꾼들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이세돌 최철한 박영훈 등은 폭주하는 대국 스케줄 때문에 밥 먹고 이빨 쑤실 시간도 부족한 눈치다. 이창호가 중국에 가면 바둑 판 앞에 앉아있는 시간보다 쭈그리고 앉아 사인해 주는 시간이 더 많다. 그러니 언제 장가를 들겠는가.

 

아마추어는 다르다. 물론 프로 아마 구별 말고 둘만 골라 작살내자는 악덕 아마들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대체로 바둑이 강하면 찾는 사람이 없고, 약할수록 대국 희망자들이 줄을 서기 마련이다. ‘돈으로 명예 추락을 막는손님만큼 좋은 내기 상대가 어디 또 있겠는가. 프로 고수들은 손님을 골라 받는 약한 아마추어들이 세상에서 가장 부럽다. 조물주는 참 공평하기 그지없는 분이다.

 

9)프로의 목표는 반 집, 아마의 목표는 만방

프로와 아마추어로 갈렸어도 대국 규칙은 똑같다고? 그거 잘못 알고 있는 거다. 아마추어 쪽엔 방내기란 이름의 마그나 카르타가 있는데 그게 프로 세계에선 전혀 통용되지 않는다. 막강한 완력을 지닌 프로들은 이 점이 또 못내 슬프다. 많이 이긴다고 상금 더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땅의 뜻있는 스폰서들은 앞으로 방내기 국수전’, ‘방내기 명인전을 반드시 창설해야 한다. 그리하여 이창호, 168집 반 이겨 세계 신기록 갱신하는 식의 얘기꺼리를 만들어내야 한다. 날고 기는 천재 프로들이 쩨쩨하게 맨날 반집이 무언가, 반집이.

 

룰을 꼭 통일하고 싶다면 아마추어들의 방내기를 금지시키는 것도 이론적으론 가능하다. 방내기 1회는 훈방, 2회는 구류, 3회 이상은 구속 수사? 흐흐. 한 번 실시해 보시라. 그거 말짱 헛일일 공산이 크다. 방내기의 시대적 소명을 위해 이 땅에 태어난 우리 아마추어들은 굳건히 충절을 지킬 것이기 때문이다. 교도소 안에서 방내기가 성행해도 책임 못 진다.

 

10)프로는 졌을 때, 아마는 이겼을 때 술집을 찾는다

시합에 이긴 프로는 대부분 집으로 향한다. 다른 직업인들이 하루 일과를 마치면 귀가해 가족들과 어울리거나 쉬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아까운 개인 시간을 헛되게 보낼 이유가 없다. 하지만 바둑에 지고도 술 한 잔 없이 그 아픔을 다스릴 수 있는 기사는 조훈현 외엔 없다고 보면 된다.

 

아마추어? 바둑에 진 죄과로 지갑에 먼지 풀풀 나는데 술까지 진탕 마실 만큼 배짱 좋은 서민은 드물다. 하지만 만원을 땄으면 5만원 술값을 아깝지 않게 푸는 것이 또한 아마추어들의 도량이다. 그냥 귀가해버리면 그 신나는 무용담을 들어줄 사람이 없지 않은가. () 과에 속할수록 그 스케일은 기하급수로 커진다.

 

가난뱅이를 선망하는 부자


이상 식별법 강좌 끝. 그런데 희한한 게 한 가지 있다. 프로와 아마는 서로 상대의 처지를 부러워한다는 것이다. 아마추어들이 몸살 나도록 프로들을 동경하는 것은 당연한데, 하늘같은 프로들이 아마추어들은 참 좋겠다고 진지하게 말할 때면 진땀이 다 난다. 이런 송구할 데가. 우등생이 열등생을, 부자가 가난뱅이를, 미스터코리아가 배나온 사람을, 에이스 투수가 볼 보이를 부러워하는 격 아닌가.

 

그러나 어렴풋이 이해할 것도 같다. 사실 자신보다 하수의 자유분방한 행마, 부담 없는 운석(運石)을 부러워한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다. 우등생이나 부자, 미스터코리아나 에이스 투수에게도 그들 나름의 말 못할 어려움은 따라다닐 것이다.

 

프로가 아마보다 반드시 더 행복하지 않다면, 때로 아마가 더 즐거울 수도 있다면 굳이 아마 프로를 구별할 이유도 없다. 프로건 아마건 그냥 생긴 대로 살면서 바둑을 두면 되니까. 하지만 그래도 뭔가는 미진하다. 나는여전히 프로가 부러운데 어떡하면 좋지?

 

# 바둑에서 만방은 몇점인가요?


본래 만방이란 말은 내기 바둑에서 나온 말입니다. 흔히 ‘방내기’라고 하는 바둑인데요.
기본적으로 10집 단위로 한방씩 계산을 합니다. 즉 1~10집은 1방, 11집~20집은 2방 등등 이런식으로요.
만방이라고 하는 것은 10방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91집이상의 집차이가 났을 때를 만방이라고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