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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학으로 본 서양문명(8) | 터키 파묵칼레·올림포스 등]

풍월 사선암 2015. 3. 26. 08:16

[동양학으로 본 서양문명 <8> | 터키 파묵칼레·올림포스 등]

올림포스로 병풍친 지중해자연과 시간의 합작 파묵칼레불타는 바위산 야나르타시

 

조용헌 박사와 현지답사헬레니즘 문화의 진수 그대로 남아

 

동양학이 최근 인기를 끄는 이유 중의 하나가 팩션(Faction=Factor·사실+Fictoin·허구)적 요소가 상당히 강하기 때문이다. 동양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를 눈에 보이는 것처럼 설명해 내는 강력한 논리적 흡입력을 지니고 있다.

 

사실 세상에는 과학적으로나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너무나 많다. 이에 대한 답은 없다. 그러면 이를 무엇으로,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과학자들은 끊임없이 과학적으로 검증하기 위해 연구한다. 고고학자들도 유적발굴을 통해 인과관계를 찾아 현대사회와 고대사회의 연결고리를 밝히려 부단히 노력한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는 있다. 이때 동양학이 강력한 무기가 된다.

 

동양학은 기본적으로 하늘과 땅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밝히려고 한다. 조금은 추상적인 반면 대단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경험적으로 인과관계가 있을 법한 임기응변적 인과관계를 설명한다. 인간의 삶이란 원체 얽히고설켜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의 변수가 결코 결정적이지 않다. 따라서 우리 고대문명이나 서양 고대문명을 밝히는 데 자연과 인간을 동일시하는 동양학적인 해석이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날이 곧 오지 않을까 싶다.

 

터키의 휴양도시인 안탈랴 해변에서 유럽의 많은 휴양객들이 휴가를 즐기고 있다. 뒤에 있는 올림포스산은 마치 병풍처럼 지중해를 감싸고 있다.

 

·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사회는 샤머니즘이 큰 영향을 미쳤다. 신들과 인간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한마디로 신인불이(神人不二) 사회였다. 한 사회의 샤먼은 그 조직의 우두머리였고, 그 조직을 통제하는 강력한 파워를 지니고 있었다. 그 파워는 하늘에서부터 계시를 받은 것이라고 구성원 모두가 인정했다.

 

고대 그리스와 동일 문화권을 형성한 터키에서도 강력한 샤먼이 있었고, 그 샤먼은 하늘과 통하는 주술적 기능을 발휘하면서 사회를 지배했다. 또한 고대문명을 형성하는 결정적 파워를 지닌 우두머리로 군림했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을 겸한 세계복합유산으로 등재된 터키의 히에라폴리스-파묵칼레(Hierapolis-Pamukkale)도 고대도시문명이 있는 지역이다. 정경(정치와 경제)이 분리되지 않은 전형적인 고대도시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사장이 사회의 지도자를 겸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파묵칼레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이곳은 히에라폴리스라는 고대도시다. 히에라폴리스라는 말 자체에 고대사회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히에라폴리스는 성스러운 도시(Sacred City)’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히에라라는 이름은 페르가몬의 전설적 건국자인 텔레포스(Telephos·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헤라클레스의 아들)의 아내인 히에라(Hiera)로 인해 히에라폴리스로 불리게 됐다.

 

터키의 세계복합유산인 히에라폴리스에 있는 파묵칼레. 일명 석회폭포라고도 불리며, 터키어로는 하얀목화가 쌓인 성 같다고 해서목화의 성을 뜻한다. 온천수에 있는 칼슘이 바위를 흘러내려 쌓인 소금 산이다.

 

파묵칼레는 고대 로마 황제들의 온천 휴양지

 

히에라폴리스는 페르가몬 왕조의 에르메네스 2세에 의해 BC 190년에 건립됐으며, 페르가몬3세 때 로마왕조에 편입됐다. 이후부터 로마황제들의 요양지 겸 휴양지로 줄곧 사용됐다. 이 고대도시도 인간이 살기 가장 편안한 고도에 가까운 600m에 위치해 있다.

 

평원 위로 솟은 높이 약 200m의 절벽의 샘에서 나오는 칼슘을 함유한 온천수는 자연과 시간이 어우러진 경이로운 장면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이곳을 파묵칼레(Pamukkale)라고 부른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파묵칼레는 터키어로 목화의 성(Cotton’s castle)’을 뜻한다. 단층을 뚫고 나오는 석회성분을 다량 함유한 온천수의 칼슘 퇴적물이 수 세기 동안 바위 위를 흐르면서 형성한 독특한 지형지물의 생김새가 마치 목화를 쌓아놓은 것처럼 하얗게 층을 이뤘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이를 광물의 숲, 석회폭포 등이라 부르며,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고대 로마의 왕들도 단층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따뜻한 온천에서 목욕을 했다고 전한다. 지금은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수영복을 입고 온천을 즐긴다. 우리 일행들도 신발과 양말을 재빨리 벗고 족욕 행렬에 일제히 동참했다. 비키니만 입은 여성들도 부지기수. 경이로운 경관과 더불어 눈길을 잡을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

 

이슬람 신비주의 메블라냐교의 본산지이며 이슬람의 색채가 매우 강한 콘야에 있는 메블라냐박물관.

 

온천수의 치유력은 거대한 온천수 분지와 수영장 등 다양한 온천시설로 지금 활용되고 있다. 물을 이용한 치료법은 샤머니즘과 더불어 생긴 종교적 관습이었다. 그 온천수를 아래로 내려다보면서 아폴로신전을 포함한 고대도시가 형성돼 있다. 고대의 대형 공동묘지가 그대로 남아 있어 그리스·로마시대의 장례 풍습을 엿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대성당, 세례당, 교회 등 당시에 세워진 기독교 건축물들은 초기 기독교 건물의 우수한 사례로 꼽히고 있다.

 

동양학자 조용헌 박사는 파묵칼레와 도시 주변을 이곳저곳 둘러보고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잘 보존돼 있어, 자연의 영감을 받기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히에라폴리스는 고대부터 경이로운 자연의 장관을 감상하면서 심신의 치료를 겸한 최고의 휴양지였다.

 

올림포스엔 대장장이의 신헤파이스토스가 거주한 듯

 

파묵칼레의 진한 여운을 뒤로한 채 그리스의 성스러운 산 올림포스와 같은 이름의 터키 올림포스(Olympos)산으로 향한다. 아니, 어떻게 그리스 최고의 신들의 터전인 올림포스가 터키에도 있을까? 터키의 올림포스엔 어떤 신화가 전승되고 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터키 올림포스산의 비밀은 야나르타시에 있었다. 야나르타시는 불타는 돌을 말한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바위틈에서 꺼지지 않은 불꽃이 있는 산이 올림포스다. 이 불타는 바위산에 바로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가 살았다. 그는 하늘의 주이신 제우스와 그의 아내 헤라의 아들로, 태양신 아폴론의 배다른 동생이다. 불꽃의 화신 헤파이스토스는 태어나자마자 불꽃을 휘날리고 빛을 내뿜었다. 그 불타오르는 듯한 형상에 혐오감을 느낀 어머니 헤라가 그를 그리스 올림포스에서 추방해 버렸다.

 

고대도시인 안탈랴에 있는 히타이트 왕조의 아드리안 왕이 지나갔다는 아드리안게이트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으며 지나고 있다.

 

그는 지중해 북쪽인 이곳에 내려와 자신의 불꽃을 이용해서 무기와 방어기구를 만들었다. ··갑옷·방패뿐만 아니라 아폴론이 타는 전차·황금장화까지 만들었다. 그의 아내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즉 로마 신화의 비너스다. 그는 아름다운 무기와 갑옷을 만들면서도 언제나 자기 작품이 아내의 아름다움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아름다운 아내에 대한 그의 사랑이 무기의 실용성뿐만 아니라 아름다움까지 갖추게 하는 동기가 됐던 것이다.

 

고대 국가에서는 불을 다루는 샤먼을 최고로 여겼다. 올림포스의 꺼지지 않는 불꽃이 있는 바위산 야나르타시에 헤파이스토스가 살았다는 신화는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야나르타시 입구에서부터 현장까지는 약 40분간 등산하듯 올라가야 한다. 등산로는 잘 조성돼 있다. 산 중간쯤 도착하자 불 탄 흔적들이 조금씩 보인다. 이어 바위틈에서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다. 비가 내려도 꺼지지 않는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불꽃이 아닐까 싶다. 수천 년 동안 꺼지지 않은 불꽃이 이곳 말고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정말 신기하다. 우리 일행은 오징어를 꺼내 굽기 시작했다. 천연가스 불에 굽는 오징어맛도 별미다.

 

불타는 바위 주변에 신전의 흔적들이 흩어져 있다. 대장장이 신들이 제사를 지내던 제단도 보인다. 저 아래로는 지중해 바다가 있다. 조용헌 박사는 고대 샤먼 왕국에서는 두 가지 중요한 신이 있었다. 하나는 신을 향해서 날아오르는 페가수스이고, 다른 하나는 불을 지르고 운용하는 대장장이였다. 이곳에서는 그 둘을 모두 아우르는 듯 보인다. 정말로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곳이다고 감동했다. 그러면서 대장장이 신의 원조를 본 듯하다. 고대에서는 무기를 만드는 자, 즉 야금술(冶金術)을 지닌 자가 사회를 지배할 수 있었다. 야금술을 획득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단전호흡을 통해 내면의 불을 질러 최고의 경지에 도달하는 우화등선(羽化登仙)이다. 다른 하나는 자연을 통해 불을 얻어 가지는 자였다. 자연에서 불을 얻는 방법이 키메라였다. 키메라는 사자의 얼굴에 염소의 몸통, 뱀의 꼬리를 지닌 신화 속의 영특한 동물이다. 그러면서 불을 내뿜는다. 사자의 얼굴은 용맹스러움, 염소는 우유, 뱀의 꼬리는 지혜를 상징한다. 따라서 키메라를 억누를 그 어떤 동물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조 박사는 올림포스의 야나르타시는 완벽한 신화세트장이라고 감탄해 마지않았다.

 

고대 로마의 유적이 원형대로 가장 보존이 잘된 고대 도시 페르게에 있는 신전과 수로와 폴리스.

 

이어 지중해 휴양도시인 안탈랴(Antalya)로 이동한다. 항구도시 안탈랴도 페르가몬 왕 2세인 아타로스(Attalos)에 의해 BC 159~138년 사이 건설됐다. 도시 이름도 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지금은 산과 바다를 두루 갖춘 터키 최고의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다. 유럽 각국에서 온 휴양객들로 안탈랴의 지중해 해변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시원하면서 아름다운 휴양도시다.

 

고대 유적이 가장 잘 보존된 페르게

 

안탈랴에서 동쪽으로 20km가량 떨어진 곳, 고대 팜필리아 도시 중의 하나인 페르게(Perge)로 간다. 페르게는 터키의 고대 도시 중 보존이 가장 잘된 도시다. 특히 다른 어느 도시보다 페르게는 헬레니즘(그리스 문명)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 BC 334년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원정부터 예수 탄생 직전 로마의 이집트 병합까지 그리스 문명과 오리엔트 문명이 혼재된 소아시아의 대표적 도시다.

 

페르게의 성벽은 반쯤 남아 수천 년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성벽을 복원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헬레니즘 문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아크로폴리스도 있고, 공동목욕탕과 그곳에 물과 난방을 공급하는 시설은 그대로 남아 있다. 도시 중앙에 집으로 물을 끌어들이는 수로를 건축한 흔적도 잘 보존돼 있다. 수천 년 전에 이런 시설을 한 문명이 부러울 뿐이다. 일부 고고학자들은 수로의 납파이프로 인한 중금속 오염 때문에 페르게 시민들의 수명이 단축됐다는 주장도 한다. 수로에 물을 공급하는 대양의 신오케아누스는 신전 바로 앞에 누워 있다. 형상화된 신들도 각각의 역할과 기능이 따로 따로 주어져 있다. 그리고 건축물 하나하나에 고대 그리스 로마인들의 숨결이 느껴진다. 그 영화를 조금이나마 상상 속에서 그려본다.

 

페르게에서 동쪽으로 20km 남짓 가면 아스펜도스(Aspendos)란 고대도시가 있다. 아스펜도스에 있는 원형극장은 세계의 원형극장 중에 가장 보존이 잘된 것이다. BC 6세기 무렵 도시가 형성됐고, BC 5세기 무렵에는 자신의 도시의 이름으로 은화를 주조할 수 있는 유일한 도시였다. 그 뒤 BC 2세기 말에 로마제국에 합병됐다. 당시 건설된 로마의 거대한 원형극장은 객석 형태가 반원꼴이며, 1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극장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시대에 지어진 원형극장은 이 지역 출신의 건축가인 제논(Xenon)에 의해 설계됐다.

 

아스펜도스의 원형극장이 유명한 이유는 원형이 잘 보존된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이 극장의 완벽한 음향효과에 대한 비밀이 아직 밝혀지지 않을 정도로 음향효과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현재도 오페라와 발레를 이곳에서 개최하고 있다. 카르멘과 라트라비아타,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을 한다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공연은 보지 못했지만 상상만 해도 당시의 뛰어난 건축술에 경탄을 금치 못할 정도다.

 

원형보존이 잘된 고대 도시 페르게의 공동목욕탕에 난방을 공급하는 시설을 외국 방문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고대도시의 유적지를 따라 가다 이제 이슬람 신비주의 메블라냐교의 본산지이며 이슬람의 색채가 매우 강한 콘야(Konya)로 간다. 콘야는 우상의 도시(City of Icons)’를 의미한다. BC 2000년 즈음부터 이 도시에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콘야는 사도 바울의 제1회 전도지이다. 하지만 현재 기독교의 잔재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이슬람 색채가 가장 짙은 곳이다. 이슬람 교리에 따라 밤에는 아예 술을 팔지 않는다. 12~13세기에는 셀주크 투르크의 수도로서 번성했으며, 이와 관련된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이슬람 색채 강한 콘야는 해발 1,000m 넘는 평원지대

 

해발고도가 무려 1,040m나 되는 고원평원지대다. 해질 무렵만 되면 여름에도 매우 쌀쌀하다. 낮과 밤의 일교차는 매우 심하다.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낮에는 무척 덥지만 해가 없는 저녁부터는 기온이 뚝 떨어진다. 따라서 과일은 당도가 높아 매우 맛있다.

 

더 넓은 평원엔 옛날부터 캐러밴(Caravan·대상)들이 오고갔다. 그들에게 쉼터가 필요했다. 평원 중앙에 이슬람사원 외에 우뚝 솟은 건물은 캐러반사라이 술탄한(Sultanhan Kervansaray)’이다. 낙타에 짐을 싣고 나르던 대상들의 숙소다. ‘술탄은 통치자, ‘은 숙소를 말한다고 한다. 높은 장벽으로 둘러싸여 도둑과 추위를 막아 주고, 각종 편의시설이 모두 갖춰진 호텔 같은 곳이다. 숙소는 물론 목욕탕, 가게, 약국, 도서관, 식당 등이 있고, 낙타를 위한 쉼터도 있다.

 

캐러반사라이 술탄한 주변은 광활한 평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이른바 말로만 듣던 지평선을 여기서 볼 수 있다. 수평선은 숱하게 봤지만 지평선을 본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그 광활한 지평선 사이로 터키 여행의 하이라이트 카파도키아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는 실크로드를 따라 가고 있다. 가끔 보이는 양떼들은 전형적인 유목지역이라는 사실을 전해 주고 있다. 양들이 주는 고기와 우유, 극심한 일교차로 인한 맛있는 포도와 과일, 고지대에서 생산하는 밀은 이들에게 식량걱정을 할 필요가 없게 했다.

 

(위부터)고대 로마시절부터 휴양지로 이용된 파묵칼레의 온천에서 많은 방문객들이 온천을 즐기고 있다. 바로 옆에서 고대유적들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 동양학자 조용헌 박사가 올림포스산에 있는 야나르타시 옆에서 동양학적인 해설을 위해 지중해를 바라보며 방향을 잡고 있다. / 한 일행이 신기한 듯 올림포스산 야나르타시의 모습을 찍고 있다.

 

터키가 왜 매력적인 여행지인가?

 

·서양, 기독교·이슬람, 문명·자연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 만들어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흔히 터키는 마지막 여행지로 택하라고 말한다. 터키를 먼저 가고 다른 나라에 가면 시시해서 못 본다는 의미라고 한다. 터키가 정말 매력적인 여행지인가? 어떤 매력을 지니고 있을까?

 

터키는 알려진 대로 동서양 문명의 교차점이다. 다르게 표현해서 실크로드의 시작점이자 종점이었다. 중국과 인도, 즉 동방에서 생산한 실크를 포함한 각종 생산품들을 낙타에 싣고 마지막 종착지인 이스탄불에 도착한다. 그러면 기다리던 있던 서양 상인들에 의해 유럽 각국으로 팔려나갔다.

 

두 번째로, 기독교 문화와 이슬람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다. 이슬람은 7세기 초 아라비아의 예언자 무하마드가 완성시킨 종교다. 이슬람이 탄생되기 전에 기독교가 번성했다.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출발해서 제1의 전도지로 도착한 곳이 터키의 콘야였다. 특히 고대문명 발상지인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 주변은 성서에 나오는 지역이기도 하다. 따라서 터키에 이슬람 문화가 형성되기 전에 이미 기독교 문화가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 흔적은 터키 곳곳의 유적지에 그대로 나타난다. 두 종교의 공존으로 인한 문화도 독특하게 형성되고, 터키 국민의 정신세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세 번째로, 고대문명과 기독교·이슬람문명이 뛰어난 자연과 어울린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다. 암벽을 뚫고 집을 짓는다든지, 지하세계에 대형 주거단지를 조성한다든지 등의 자연환경을 적절하게 살린 터키만의 문화는 다른 어느 나라에서 볼 수 없는 모습들이다.

 

네 번째로, 터키 민족은 터키인, 쿠르드인, 아랍인, 아르메니아인, 기타 그리스인, 유태인 등으로 구성돼 있다. 크게 보면 이렇게 나누지만 통계에 잡히지 않은 소수민족까지 포함하면 70여 민족이 산다고 한다. 터키 민족 중에 터키인은 한민족과 조상이 동일한 돌궐족의 후예인 흉노족, 즉 훈족에서 갈라져 나와 중앙아시아 동남부에서 서서히 서쪽으로 이동해서 10세기 전후 아나톨리아 반도에 정착한 민족이다. 그래서 터키는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부른다.

 

터키인들에게서 우리와 같은 한민족이라는 민족 정체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복잡한 민족 구성원은 복잡한 문화를 낳았고, 또한 다양한 문화를 만들었다. 이들이 만든 문화는 복잡하면서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터키는 유럽의 멋과 아시아의 정이 어울린, 전통과 현대가 혼재된 죽기 전에 한 번쯤 가볼 만한충분히 버킷리스트에 오를 만한 그런 여행지임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