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애송시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 - 이해인

풍월 사선암 2015. 3. 13. 14:03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 - 이해인

 

냉이꽃, 제비꽃, 민들레꽃,

봄까치꽃, 미나리아재비꽃.

얼굴이 작은 꽃들일수록

눈을 크게 뜨고 보아야 합니다.

 

어쩌면 작으니까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는지도 모르지요.

보일락 말락 한 가장 작은

꽃 한송이도 꽃술, 꽃잎, 잎사귀 등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못해 신비롭습니다.

 

꽃이 많은 집에서 꽃을 볼 수 있는 밝은 눈,

밝은 마음을 지닌 것에

새롭게 감사하는 나의 봄이여.

 

오늘은 유리창을 딱고, 연노란색 커튼을 새로 달고,

새소리에 맞추어 시를 읽으며 봄맞이를 했습니다.

 

어느 땐 바로 가까이 피어 있는 꽃들도

그냥 지나칠 때가 많은데,

이쪽에서 먼저 눈길을 주지 않으면

꽃들은 자주 향기로 먼저 말을 건네오곤 합니다.

 

내가 자주 오르내리는

우리 수녀원 언덕길의 천리향이

짙은 향기로 먼저 말을 건네오기에

깜짝 놀라 달려가서 아는 체했습니다.

 

“응 그래 알았어. 미처 못 봐서 미안해.

 올해도 같은 자리에 곱게 피어주니 반갑고 고마워.”라고.

 

좋은 냄새든, 역겨운 냄새든 사람들도

그 인품만큼의 향기를 풍깁니다.

 

많은 말이나 요란한 소리 없이

고요한 향기로 먼저 건네오는 꽃처럼 살 수 있다면,

이웃에게도 무거운 짐이 아닌 가벼운 향기를 전하며

한 세상을 마무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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