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애송시

고은 시인 '그 꽃'

풍월 사선암 2015. 2. 16. 17:24

 

고은 시인 '그 꽃'

 

올라갈 때는 꽃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오로지 정상에 오르겠다는 생각에 미처 볼 겨를도 없었고,

숨이 차고 힘들어 볼 여유도 없었습니다.

참 아쉽습니다.

올라갈 때 보였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보기도 하고,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어떤 모양인지, 무슨 색깔인지 자세히 보면서

그 꽃들과 대화도 나누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내려올 때에야 보였습니다.

목표를 다 이루고 난 후, 천천히 내려오니 그 때서야 보였습니다.

내려올 땐 그나마 볼 수 있어 다행인데,

그래도 여전히 꽃들과의 대화는 어려운 일이 됩니다.

안타깝게도 그냥 스쳐 지나가고야 마는 순간입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성취만을 위해서, 일만 바라보고 부지런히 올라갈 때에는

주위에 수없이 많은 꽃 같은 사람들이 보이질 않습니다.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고 난 이후에 내려갈 때에야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꽃은 그대로일지 모르나,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다 멀어지고, 떠나고 없습니다.

사람은 올라갈 때 보지 못하면, 그렇게 사라지는 겁니다.

다시 만날 수 없습니다.

다시 주어지지 않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그 소중한 사람들은 다시 볼 수 없습니다.

 

올라갈 때 보십시오.

올라갈 때 만나십시오.

올라갈 때 챙기십시오.

올라갈 때 보살피고, 쓰다듬어 주십시오.

주위의 그 소중한 사람은 내려갈 때는 없습니다.

 

올라가는 길이 다소 늦어지더라도,

때론 다른 사람들 에게 뒤처지더라도,

행여나 끝까지 못 올라갈지라도

꽃보다 아름다운 주위의 사람들만은,

당신이 보고, 만나고, 대화하고, 살피고, 챙기십시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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