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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국제통역사, 정상회담 12차례 통역… 최정화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 원장

풍월 사선암 2015. 2. 5. 23:34

한국 최초 국제통역사, 정상회담 12차례 통역최정화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 원장

 

"매력 넘치던 미테랑 대통령시끄러운 헬기 속 20분 동안 낡은 가죽 가방에서 책 꺼내 독서 삼매경 빠진 모습에 감동"

"논리 없이 말의 단계 뛰어넘던 YS 통역이 가장 힘들어사투리로 생선 이름 말할 땐 그냥 '일종의 물고기'라고 통역"

 

최정화(60)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 원장이 '내 삶을 디자인하는 습관 10C'를 출간했다. 교과서 같은 말씀을 늘어놓는 자기 계발서류에는 관심 없지만, 그녀는 예외다.

 

'한국 최초 국제통역사(1981), 한국 여성 최초 프랑스 최고 훈장 '레지옹 도뇌르' 수상, 국제 회의 1900여 회 통역, 정상회담 12차례 통역.'

 

1986'-불 수교 100주년'에 열린 정상회담에서 첫 통역을 맡았을 때 겨우 서른한 살이었다.

 

"파리3대학 통번역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엘리제궁에서 미테랑 대통령의 통역을 의뢰해왔다. 공항에 출영 나가 전두환 대통령 일행을 맞았다. 대통령의 말을 전한다는 게 상상이나 됐겠나. 근접 경호하는 경호원들이 서른한 살짜리 풋내기가 누군지 몰라 대통령 곁에 다가서는 걸 막기도 했다. 정말 떨렸다. 입은 벌어지는데 처음에는 소리가 안 나왔다." 

 

최정화 원장은정상회담 다음 날 전두환 대통령이당신이 북한 여자인 줄 알았다고 말할 정도로 그때 내 신상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테랑 대통령의 통역이면 전 대통령과는 직접 관계가 없지 않은가?

 

"전 대통령은 미테랑의 메시지를 내 입으로 들으니 나를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외교부에서는 내 신상 정보가 전혀 없었던 것 같다. 회담 다음 날 전 대통령이 나를 따로 불러 '(You)가 북한 여자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내게 청와대 비서관으로 오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 시절 대통령의 제의를 면전에서 거절했으니 발칙했을 것이다. 그 인연으로 10년 전까지만 해도 연희동 사저로 식사 초대를 받았다."

 

전두환 대통령의 회담 실력은 어떠했나?

 

"복잡한 서술을 안 하고 단문으로 핵심을 말하는 스타일이었다. 카리스마도 있어 상대 정상과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았다."

 

통역을 하려면 언어를 아는 것 못지않게 내용을 이해해야 하지 않나?

 

"대통령에게 무슨 얘기를 나눌 것인지 사전에 물어볼 수 없다. 정상회담 통역을 하려면 정치·경제·군사·과학·기술 등 양국의 현안에 대해 사전 연구를 충분히 다 해야 한다."

 

서른한 살에는 그런 다방면의 지식이 없었을 텐데?

 

"통번역대학원을 다니는 동안 심지어 꽃 이름, 향수(香水) 제조 공정, 핵융합 기술 등에 관해서도 공부했다. 당시 우리와 동떨어진 이슈인 유대인 문제도 다뤘다."

 

정확한 뜻을 몰라 대충 넘어가거나 빼먹는 경우는 없었나?

 

"물론 한두 단어를 모를 때가 있다. 하지만 배경 지식이 있으면 문맥으로 전체 메시지를 유추할 수 있다. 일상 대화에서 술어(述語) 없이 한두 단어로도 알아듣는 것과 같다. 섬광(閃光) 같은 속도로 그걸 잡아서 통역해줘야 한다."

 

전두환 대통령을 계승한 노태우 대통령의 회담은 어떠했나?

 

"왜 그런지 모르겠으나 특별한 기억이 없다. 다만 이분이 파비우스 프랑스 하원의장을 만났을 때 '정말 미남이다'라고 인사했다. 순간 파비우스 의장이 매우 당황했다. 남자가 남자에게 '잘생겼다'고 대놓고 말하면 '호모'로 오인될 수 있다. 기분 좋게 해줘서 대화를 잘 풀어나가려고 한 말인데. 말은 문화(文化). 한번은 친한 외국인 CEO'비서가 내 넥타이 색깔이 정말 좋다고 하더라. 그녀가 나를 사랑하는 것 같다'고 했다.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기에, '넥타이가 마음에 안 들어도 그렇게 말한다'고 내가 말해줬다."

 

통역하기 가장 힘든 대상은?

 

"횡설수설하거나 스스로도 무얼 말하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통역해야 한다'고 우리끼리 농담하지만, 난감한 경우가 없지 않다."

   

김영삼 대통령과 미테랑 대통령(중간에 최정화씨).

 

역대 대통령 중 통역하기가 가장 어려웠던 분은?

 

"김영삼 대통령은 논리가 없고 말의 단계를 뛰어버린다. 통역으로서는 까무러친다. 또 거제도 출신이라 그쪽 사투리로 생선 이름을 즐겨 말하는데 알아들을 수 없었다. 생선 이름이 나올 때마다 '일종의 물고기'로 통역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어땠나?

 

"워낙 논리적이고 기승전결이 완벽했다. 대신 파워나 감동은 덜했다. 이분은 취임 두 달 만에 런던 아셈 정상회의(1998)에 왔다. 다자국(多者國) 회담에서는 비영어권 정상은 자국어를 쓰고 영어로 통역한다. 부스(booth) 속 각국 통역들이 동시에 그 나라 언어로 전한다. 그런데 김 대통령은 직접 영어로 말했다."

 

DJ는 영어를 꽤 하는 걸로 아는데.

 

"쉬는 시간에 통역들끼리 '못 알아듣겠다'고 난리였다. 내가 정부 측 인사를 수소문해 '우리말로 해달라고 대통령께 전해달라'고 하니 '나는 못 한다'고들 했다. 그러다가 박지원 공보수석에게 '우리 대통령이 영어도 할 줄 안다는 것을 알리는 게 중요한가, 아니면 대통령의 해박한 지식과 심오한 뜻을 알리는 게 중요한가?' 하고 말했다. 그는 '무슨 뜻인지 알겠다'고 했다. 쉬는 시간이 끝난 뒤 김 대통령이 우리말로 하고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방문국에 맞춰 영어·프랑스어·중국어로 직접 연설하곤 했다.

 

"박 대통령의 프랑스어 발음은 훌륭했다. 지금도 프랑스 친구들은 프랑스어로 행한 연설에 대해 얘기한다. 대중 앞에서 하는 연설은 준비한 원고를 읽는 '공연'이다. 그때는 상대 마음을 얻는 게 더 중요하다. 그 나라 말을 써주면 더 호소력이 있다. 하지만 국익이 걸린 회담에서는 다르다. 아무리 외국어를 잘해도 모국어만큼 할 수가 없다. 외국어로는 자기 생각을 충분히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

 

역대 대통령 중 누가 회담에서 가장 탁월했나?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에 통역을 했다. 이분은 친화력이 좋고 상대방을 자기 페이스로 잘 끌어왔다. 자신 있게 영어도 툭툭 잘 뱉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말에 힘이 있고 논리의 귀재다. 통역하기도 쉬웠다. 알제리 부테플리카 대통령 앞에서 '새마을 노래'를 부르는 장면(2003129)은 내 통역 인생에서 정말 잊을 수 없다."

 

이 내용은 '새마을 노래를 불렀던 노무현'이라는 필자의 칼럼(2009630)에서 소개된 바 있다. 당시 익명의 취재원이 통역이었던 그였다.

 

정상회담이 끝난 뒤 다음 일정인 만찬장으로 옮겨갈 때였다. 그런데 만찬장이 완전히 정돈되지 않았다. 양국 대통령은 대기실에서 15분쯤 기다려야 했다. 그 자리에는 노 대통령, 알제리 대통령, 통역 3명이 있었다. 알제리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친분 있는 김일성 부자에 대해 칭찬을 한참 이어나갔다. 이를 듣던 노 대통령의 표정이 굳어졌다.

 

"우리 남쪽에는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그분이 새마을 운동이라는 걸 했습니다. 우리가 북한보다 잘살게 된 것이 바로 박 대통령 때부터입니다. 그분이 지은 '새마을 노래'를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그러면서 노 대통령은 힘차게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우리 모두 일어나" 노래를 불렀다. 꽉 쥔 주먹을 흔들며 박자를 맞췄다.

 

통역을 하면 극비의 정상 회담 내용까지 알게 되는데.

 

"비밀을 지키는 게 직업윤리다. 회담 내용이 사회적 이슈가 돼도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다. 회담의 메시지와 무관한 것도 말해서는 안 된다. 과거에 프랑스의 한 통역이 '정상회담 중간의 오찬으로 고기를 먹었다'고 말해 시끄러웠다. 그 정상이 전날 어민들을 만나 '어업 활성화를 위해 요즘 생선을 먹고 있다'고 말한 걸 몰랐다."

 

앞서 노무현 대통령의 에피소드를 털어놓은 것은?

 

"그 자리는 정상회담이 끝난 뒤였고, 노 대통령이 '새마을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너무 충격적이었기에 말이 나왔던 것 같다. 엄밀하게는 말해선 안 되는 것이었다."

 

지금껏 만나본 명사 중에서 누가 가장 매력적이었나?

 

"역시 미테랑 대통령이다. 1993'-불 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했을 때 헬기로 서울에서 대전 엑스포 장소로 내려간 적 있었다. 헬기 소리가 얼마나 시끄러운가. 고작 20분쯤 타는데, 낡은 가죽 가방에서 책을 꺼내 독서 삼매경에 빠지더라. 헬기에 탄 여섯 명에게 보여주려고 고령의 아저씨가 그랬겠나. 그때 헬기에서 내리니 인파가 몰려왔다. 미테랑 대통령이 '마드무아젤, 내가 한국서 이렇게 인기가 높은 줄 몰랐다'고 흐뭇해했다. 사실은 다른 헬기에서 먼저 내린 배우 소피 마르소가 서 있었던 것이다."

 

그 뒤 엘리제궁에서 미테랑 대통령과 독대한 적이 있었다고?

 

"미테랑 대통령은 떠나면서 '프랑스에 오면 꼭 연락하라"고 했다. 이듬해 파리에 들러 프랑스 외무부의 친구에게 얘기를 했더니, 정말 며칠 뒤 약속이 잡혔다. 엘리제궁에서 미테랑 대통령과 한 시간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런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의 품격을 우리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은가."

 

우리의 품격은 왜 따라갈 수 없다 보나?

 

"우리는 정답 위주, 주입식 교육, 내가 웃기 위해 남을 밟고 일어서야 하는 출세 지향으로만 살아왔기 때문이다. 물질적인 성과가 모든 가치의 기준이다. 프랑스에서는 중산층 기준을 자기가 좋아하는 여행 등 취미 활동을 충분히 할 수 있느냐로 정의한다. 한국에서는 얼마 이상의 아파트와 중형급 이상의 자동차를 소유했느냐로 나눈다. 우리는 친구 집을 방문해서 '너희 집 몇 평이냐?'가 첫 질문 아닌가."

 

외국어를 잘하는 비결은 뭔가?

 

"외국어는 많이 듣고 많이 말해야 한다. 두뇌로 하는 게 아니다. 몸에 익혀져야 발화(發話)가 된다. 큰 소리로 발음해라. 국제통역사인 내게도 발음이 좋지 않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었다. 얼굴이 두꺼워야 한다. 한국 사람은 '발음이 이상하다'는 소리를 들으면 입을 닫는다. 언어 소통 능력을 발음이 유창하고 문법적으로 완벽한 걸로 잘못 생각한다. 확실한 단어 몇 개만 전달해도 소통이 된다."

 

그녀는 2003년 한국의 이미지를 세계에 알리겠다는 취지로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CICI)'을 설립했다. 재원도 조직도 인력도 없이 그녀 혼자서 시작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단체가 매년 시상하는 '한국이미지 디딤돌상' '징검다리상' '새싹상'이 매스컴의 화제가 되는 것이다. 올 초에는 여배우 탕웨이가 '징검다리상'을 받기 위해 중국에서 왔다.

 

"상금은 1원도 없다. 그런데도 탕웨이, 싸이, 반기문 사무총장, 이명박 서울시장도 직접 와서 상을 받았다. 내가 인복(人福)이 많다."

 

조선일보 입력 : 2015.02.02 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