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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정복’ 꿈꾸는 홍콩 갑부 리카싱

풍월 사선암 2015. 2. 5. 00:08

 

영국 정복꿈꾸는 홍콩 갑부 리카싱

 

중국을 팔고 유럽에 베팅한다

 

연초부터 전해진 뉴스에 영국 전역이 깜짝 놀랐다. 영국 2위 통신사 ‘O2’가 영국인 대다수가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는 중국 갑부에게 팔린다는 소식 때문이다.

 

리카싱의 허치슨 왐포아가 영국 최대 모바일 그룹을 인수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보도에 영국의 더타임스는 그는 과연 새인가 비행기인가라는 제목의 논평으로 경계심을 표했고, 유력일간지 데일리메일은 이 아시아 최대갑부는 곧 대영제국 전체를 사들일 것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실제로 영국 4대 이동통신 업체 중 하나인 스리(Three)를 이미 보유한 허치슨 왐포아가 O2를 인수하면 홍콩 출신 리카싱은 영국 내 3100만명의 가입자를 지닌 최대 이동통신 사업자로 부상하게 된다.

 

검은 뿔테 안경에 값싼 시계를 차고 낡은 옷차림으로 직접 차를 운전해 유럽의 호텔을 빠져나온다면 누구도 쉽게 알아보지 못할 이 검소한 노신사가 바로 개인자산 36조원을 가진 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사나이, 청콩그룹 회장 리카싱(李嘉誠)’이다.

 

홍콩의 아파트 명당을 귀신같이 찾아내고 절묘한 시기에 인수합병과 자산매입을 성공시키며 중화권에서 억세게 운 좋은 사나이로 알려진 리카싱은 사실 누구보다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리카싱 회장은 1928년 광둥에서 교사인 아버지의 31녀 중 장남으로 출생했다. 1940년에 일제침략을 피해 부모와 함께 홍콩으로 이주했지만 곧 아버지가 사망한다. 그는 가족부양을 위해 학교를 중퇴하고 사회에 뛰어들어야 했다. 장남인 리카싱은 결핵에 걸린 아버지가 죽기 직전에 가족들은 책임지고 잘 살게 해주겠다고 했던 약속을 잊지 않았다.

 

15세에 어린 가장이 된 그는 다방 점원, 철물점 외판원, 금은방 판매원 등을 전전하다 화학제품 공장에 취직했고 근면함을 인정받아 곧 매니저로 승진한다. 얼마 뒤인 22살에 그는 빌린 돈 600만원을 가지고 오늘날의 청콩실업의 모태가 된 청콩 플라스틱공장을 설립했다.

 

유학자 집안 출신인 리카싱은 어려운 집안 형편에 학업은 중단했지만 소문난 독서광으로 뉴스와 상식에 해박했다. 그가 설립한 청콩실업은 우연히 조화(造花)를 만들게 되면서 세계 최대 규모의 단일 조화 제조업장으로 큰 성공을 거머쥐게 됐는데, 그가 조화사업을 벌인 계기는 영문 잡지에 나온 이탈리아의 한 화학회사가 플라스틱 조화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기사 한 줄 때문이었다고 한다.

 

제조업으로 제법 큰 돈을 벌게 된 그는 부동산 투자 및 개발 사업에 뛰어든다. 당시는 문화대혁명의 여파로 홍콩의 부동산이 급락하던 때였다. 저가로 시장에 나온 홍콩 부동산을 대량 매입하고 차액으로 수익을 올리며 부동산 개발 회사로 탈바꿈한 청콩실업은 1972년 홍콩 증시에 ‘1번 기업으로 상장한다.

 

1979년 그는 영국계 항만물류 기업인 허치슨 왐포아를 인수한다. 중국계가 영국 대기업을 인수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리카싱은 이후 홍콩전력(Hong Kong Electric), 허치슨 왐포아가 최대 주주인 캐나다 허스키 에너지와 영국 이동통신회사 스리 등 비부동산 업종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했다.

 

이미 영국에 철도, 천연가스 회사 등을 보유한 리카싱은 O2그룹 인수 전에도 잉글랜드지역 주요 상하수도처리기업인 노섬브리안 상하수도처리회사, 맨체스터 공항공사, 펠릭스토우 항구, 북방천연가스회사, 왓슨스의 모기업인 슈퍼드럭 등을 인수했다. 또 영국의 철도관련 기업인 에버숄트 레일그룹을 12억파운드(2조원)에 인수하기로 하는 등 조용하면서도 무서운 속도로 영국의 거대 자산, 특히 사회간접자본(SOC)을 매입해 왔다.

 

데이터 분석기관인 딜로직(Dealogic)에 따르면 리카싱의 O2그룹 인수는 2012년 소프트뱅크가 216억달러에 스프린트 넥스텔을 인수한 이래 아시아 기업이 해외시장에서 하는 거래로서는 사상 최대가 될 예정이다.

 

12세에 영국 식민지인 홍콩으로 이주해 비참한 초년기를 보낸 그는 오랜 원한을 풀 듯 정말로 영국 정복에 나선 것일까. “홍콩 사람이 1달러를 쓰면 그중 5센트는 리카싱의 주머니로 들어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홍콩을 리카싱 제국으로 만들었던 그가 이제는 영국을 집어삼키고 싶어진 걸까.

 

그는 다만 가장 어둡고 가라앉은 시장에서 가능성을 찾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올해는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가 본격화할 것으로 기대되는 해이다. 이에 아시아 부동산 시장과 자산시장의 작지 않은 충격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인생에는 본래 부침이 있는 법이라고 말하는 리카싱은 유럽에서의 SOC사업을 안정된 수익을 내는 투자 대상으로 보고 베팅했다. 그러는 사이 그는 영국 내 가장 큰 투자자가 됐고, “영국인의 30%가 그가 제공해주는 전기를 쓴다는 말도 사실로 드러났다.

 

어쩌면 일각의 우려처럼 리 회장이 중국을 등지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연초 청콩그룹은 사업구조를 개편해 그룹 산하의 부동산 투자회사 청콩실업과 부동산비부동산사업으로 나눠 2개 지주 회사인 CK부동산과 CKH홀딩스로 재편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비부동산계 신규 지주법인을 영국령 케이맨제도에 등록해 조세회피 의혹을 샀고, 2년 사이 수퍼마켓 체인인 바이자(百佳)를 매각했으며 상하이 루자쭈이 오리엔탈파이낸셜센터(OFC)와 베이징의 잉커센터 등 중국의 자산과 부동산을 팔아 버렸다.

 

리카싱과 베이징 사이에는 이미 수많은 균열이 있었던 상태다. 시진핑의 반부패 드라이브가 리카싱의 경영활동에도 제동을 걸면서 관계가 틀어졌고, 지난해 홍콩의 민주화 요구 시위에 대해 리카싱이 동조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며 불화가 더욱 커졌다는 소문이 돌았다.

 

아시아 갑부 중 드물게 검소하고 자선사업에 열성이라 홍콩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그가 홍콩 탈출영국 정복을 감행한다니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수 밖에 없다. 이 것이 단순히 정부의 부패 사정조사의 칼날과 막대한 세금을 피하기 위한 도피인지, 침체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유럽을 중국과 홍콩을 대신할 새로운 가능성의 시장으로 보는 혜안인지 아직 확실치는 않다.

 

청콩은 장강(長江)을 말한다. 바로 우리도 잘 아는 양자강이다. 유학에 조예가 깊은 리카싱은 사명을 중국의 고전 묵자에서 따왔다. 長江不擇細流(장강불택세류) 故能浩蕩萬里(고능호탕만리) ‘장강은 작은 시냇물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만 리까지 도도히 흐를 수 있다는 뜻의 한시에서 유래한 것이다. 장강은 총 길이가 5800km나 되는 거대한 하천으로 상해 시역에서 바다로 흘러든다.

 

최근 그의 사업확장 행보를 보면 리카싱이 회사 이름을 청콩이라고 쓴 이유를 헤아려 볼 수 있을까. 작은 시냇물을 가리지 않고 바다로 가려는 것이겠지.

 

<이코노믹리뷰 2015.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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