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 교실/스마트폰

SNS 감옥에 갇힌 대한민국 직장인

풍월 사선암 2015. 2. 3. 23:36

'까똑' 소리에 오늘도 잠 못 이루니'퇴근=로그아웃' 없는 삶

 

SNS 감옥에 갇힌 대한민국 직장인

 

# ‘까똑!’ 소리에 파블로프의 개처럼 스마트폰을 확인하는 모습에 여자 친구가 짜증을 냈다. “회사야, 나야?” 3년차 직장인 이모(27)씨는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회사 단체 카카오톡 때문에 애인과 종종 다툰다. 12명이 속한 대화방에서 업무를 지시하고 확인하는 메시지가 주말에도, 퇴근 후에도 날아온다. 내 분야 질문일 수 있어 무시할 수도 없다. 이씨는 회사 카톡방 때문에 내 인간관계가 망가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 광고회사 인턴 전모(24·)씨는 회사 단체 카톡방만 3개다. 부서원 회의방, 팀장 공동지시방에 점심 장소를 고르기 위해 만들어진 방도 있다. 한데 용건이 끝난 방에서조차 한 달 이상 못 나오고 있다. “인턴인데 먼저 나가기 부담스럽다는 게 이유다. 전씨는 프로필 사진이나 인사말을 바꾸고 싶어도 참는다. “좋은 데 갔다 왔네~” “옆의 남자가 바뀌었네?”라고 상사들이 한마디씩 참견해 오기 때문이다. 전씨는 갇혀 있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만나야 할 사람은 언젠가 꼭 만나게 된다고 들었어요”(영화 접속). 전도연이 조곤조곤 이 대사를 하던 1997년에는 접속이라는 말에 설렜다. 하지만 18년이 지난 지금, 모바일 기기로 언제 어디서나 업무 지시가 날아오는 대한민국 직장인에게 접속은 속박의 다른 이름이 됐다. 수족처럼 지니고 다니는 스마트폰 때문에 퇴근 후에도 로그아웃할 수 없는 카톡 무기수’ ‘밴드 무기수의 삶을 살고 있다.

 

 실시간으로 대화하고 파일을 주고받는 메신저의 원조는 1996년 이스라엘 업체가 개발한 ICQ. 뒤이어 99년 등장한 마이크로소프트의 MSN메신저(2013년 서비스 종료)는 업무용 메신저 시대를 열었다. 2002년 출시된 국산 메신저 네이트온은 싸이월드 연동 효과로 국내 PC 메신저 시장을 장악했다.

 

20137월 카카오톡 PC 버전의 출시는 시장 판도를 뒤집었다. 그전까지 모바일 메신저는 사적으로, PC 메신저는 업무용으로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PC와 모바일 모두에서 쓸 수 있는 카카오톡을 업무용으로 택한 일터가 많아지면서 이 공식이 깨졌다. 일과 삶의 경계도 흐릿해졌다. 친구·지인과 소통하던 SNS 계정이 업무에 투입된 것이다.

 

SNS 피로가 누적되자 밴드 같은 비공개형도 등장했지만 안전지대는 아니다. 밴드 역시 상사가 여기서 의논하자며 초대 메시지를 보내면 꼼짝없이 대화방에 가입해야 하고 수시로 메시지가 날아드는 건 마찬가지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정보통신기기에 의한 노동 인권 침해 실태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63%SNS를 통해 업무 지시를 받은 경험이 있고, 스마트폰과 회사 e메일을 연동해 사용하는 이도 36%였다. 응답자들은 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유로 사생활 침해’(36.3%), ‘업무 시간 증가’(22.5%), ‘피로 증가’(22.5%)를 꼽았다.

 

휴가인 듯 업무인 듯 출근 같은 너

 

스마트폰을 휴대한 이상 업무 지시에 대해 항시 대기상태가 된다. 컨설팅회사에 다니는 정모(27)씨는 퇴근 후에도 휴대전화을 놓지 못한다. 회사 e메일 수신 알람 때문이다. 정씨는 팀 전체에 대한 단체 메일이 많지만 신경쓰인다수신 확인이 되는 데다 다음 날 내용을 모르면 눈치가 보여 자세히 읽어봐야 한다고 했다.

 

영국의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루이스 박사가 지난해 영국 직장인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68%쉬는 날 상사의 메시지나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루이스 박사는 이럴 경우 직장인은 번지점프를 할 때나 배우자와 다퉜을 때보다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취업포털 사람인이 국내 직장인 2057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에서도 휴가 중 회사의 연락을 받은 경험이 있는 이는 67.2%나 됐다. 연락한 이는 주로 직장 상사(72.7%)였다.

 

유럽은 퇴근=로그아웃을 제도화하는 단계로 들어섰다. 지난해 4월 프랑스 경영자총연합회와 노동조합은 엔지니어·컨설팅 등 일부 직군에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회사 e메일 발송을 금지하는 협약을 맺었다.

 

독일도 업무시간 외 e메일 전송을 막는 안티 스트레스법을 추진하고 있다. BMW와 폴크스바겐은 긴급상황 외에는 업무시간 이후에 직원에게 연락하지 않는 내규를 두고 있다. 벤츠의 모회사 다임러는 지난해 여름부터 휴가 중인 직원의 회사 계정으로 e메일이 들어오면 자동으로 삭제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휴가나 휴일에 직원에게 업무연락을 하는 것은 독일에서 이미 법으로 금지된 일이다.

 

국내에서도 외국계 회사들의 상황은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다. 미국계 화학회사에서 일하는 구모(27)씨는 단체 카톡방에 사장과 함께 속해 있지만 주말에 메시지 알람이 울리는 일은 없다. 구씨는 근무시간 외에는 연락이 와도 직원들이 답하지 않는다이에 따른 불이익은 없다고 말했다. 결국 문제는 도구가 아니라 쓰는 사람인 셈이다.

 

스마트 비효율논란도

 

2012년 레슬리 펄로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보스턴컨설팅그룹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주에 하루는 저녁 6시 이후 스마트폰 사용을 끊는 실험을 했다. 실험 참가자의 업무의욕도는 비참가자의 2배로 나타났다. 펄로 교수는 저서 스마트폰과 함께 잠들다에서 디지털기기와 단절될수록 직원들의 생산성이 올라간다고 주장했다. ‘안티 스트레스정책을 추진하는 안드레아 날레스 독일 노동부 장관도 지난해 12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쉴 때 쉬는 노동자들의 업무효율이 더 높다고 말했다.

 

그래도 하고 싶다

 

피로에 스트레스를 호소해도 메신저는 이미 직장인 생활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일부가 됐다. 대기업 과장 황모(36)씨는 메시지가 자주 와 귀찮기는 해도 동시에 여러 사람 의견을 듣고, 오고 간 내용도 확실히 남아 전화나 e메일보다 훨씬 편하다고 말했다.

 

업무 시간 중 사적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도 틈새의 즐거움으로 꼽힌다. 사무실에서 개인 채팅을 하는 꼼수형기술도 생겨났다. 지난해 카카오가 내놓은 엑셀 스타일대화방 화면을 채택하면 채팅을 하면서도 마치 엑셀 문서 작업을 하는 것처럼 눈속임을 할 수 있다.

 

심서현·김보영 기자, 김현유·조은비 인턴기자 shshim@joongang.co.kr

 

[S BOX] 대학생도 대화방 옥살이 군기 잡는 선배 싫어도 탈출 못해

 

조별 과제방, 과방, 동기방. 대학생도 스마트폰 대화방 감옥에서 자유롭지 않다. 프로젝트·대외활동·인턴 등 성적과 스펙을 위한 활동이 많아 크고 작은 업무상 만남이 잦기 때문이다. 학과나 수업 전체 방의 경우에는 참여자만 몇십 명이 다.

 

단체 대화방에서 선배들이 군기를 잡는 일도 있다. 선배가 단체 카톡방에서 후배들에게 인사 안 한다” “똑바로 하라며 야단치는 글이 캡처 된 화면을 인터넷 게시판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런 대화방은 듣기 싫어도 마음대로 나갈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지옥으로 불리기도 한다.

 

미팅 전 단체 대화방을 만드는 것은 대학생들의 신종 풍속도다. 프로필 사진을 보고 미리 마음에 드는 상대를 점찍는다. 부작용도 있다. 여대생 김모(23)씨는 지난해 타 대학 동아리와 연합 소풍을 가면서 자연히 단체 대화방에 끼게 됐다. 하지만 행사 이후 사이가 소원해졌고 슬쩍 방을 나갔다. 그런데 주선자가 이렇게 나가 버리면 남은 사람들끼리 어떡하냐며 다시 초대했다. 김씨는 결국 휴대전화를 바꿀 때까지 그 방에서 나가지 못했다. 그는 어색한 사이끼리 대화방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 싫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카톡을 떠나는 이는 드물다. 대학생 김두현(24)씨는 수강하는 강의마다 단체 카톡방을 만든다. “자료 공유가 쉽고 그때그때 생각나는 아이디어를 말하며 브레인스토밍 하기엔 카톡만 한 게 없다는 이유에서다.

 

[중앙일보] 입력 2015.01.24 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