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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이인호 '삶과 역사관'

풍월 사선암 2015. 1. 6. 08:52

Why [강인선 LIVE] "따뜻한 눈으로 우리 현대바라보세요"

  

교수·大使 지내고 KBS 이사장으로역사학자 이인호 '삶과 역사관' 

 

역사를 따뜻한 눈으로 좋은 점은 평가하고 잘못한 것은 지적하되

어떤 시대, 어떤 사람을 악마화하지는 말아야

 

영화 '국제시장' 반갑더라

우파도 좌파도 아닌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사람답게 사는 세상 위해 고달팠던 분들 삶 보여줘

 

"역사에 대한 악마적 편집, 이젠 그만 하자"

 

이승만의 功過 : 민주주의 파괴자?

발췌개헌·사사오입개헌 등 국민들 빈축 산 것 있지만

'건국 공로자' 평가도 해야

 

국감 때 왜 공격받았냐고?

'백년전쟁교과서 등 역사 왜곡하려는 이들에

맞서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 학자 양심상 묵과 못해

 

새해, 젊은 세대에게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

대부분 인품도 훌륭하더라

어린 시절의 고생은 큰 인물 되는데 큰 몫

   

역사학자이자 러시아 대사를 지낸 이인호(79)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난 9KBS 이사장에 취임했다. 인터뷰 요청을 한 건 지난 10. 당시 KBS 국정감사에서 그의 역사관을 둘러싼 야당의 공세에 이 이사장이 시종 당당하게 대응하면서 화제가 됐을 때였다. 하지만 이 이사장은 그가 KBS 이사장이 된 것과 관련, 일부 야당 의원과 언론의 공격이 계속돼 업무 수행에 지장을 받을 정도로 주변이 시끄러운데 여기 가세하고 싶지 않다며 거절했다.

 

여러 차례 설득 끝에 이 이사장은 어렵게 인터뷰에 응하기로 했다. "새해가 다가오니 나이 먹은 사람으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그는 KBS 이사장을 맡기 전에도 사회문제 전반에 대해 소신 있는 발언을 해온 역사학자이자 지성계, 여성계의 원로이기도 하다.

 

지난 1223KBS 이사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이인호 KBS 이사장이 지난 1223일 서울 여의도에 있는 KBS 이사장실에서 한국 현대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이사장은 요즘 우리나라 정치를 보면 서로 포용하기보다는 싸울 필요가 없는 일에서까지 싸움을 벌이고 있다면서, “사실을 사실대로 인정하지 않고 싸움만 붙이는 역사 논쟁이 그 예라고 했다. / 이태경 기자

 

역사학자이면서 대사를 비롯한 다양한 공직을 거쳤다. 하지만 KBS 이사장 취임 때는 '편협한 역사관'의 소유자로 거친 공격을 받았다.

 

"좁은 의미의 정치에는 항상 거리를 두고 사는 역사학자이자 사회활동을 하는 여성계 사람으로서 언론의 호의적 조명을 받았다. 그런 평가에 늘 감사하게 생각해왔다. 김영삼·김대중 정부에서 대사와 국제교류재단 이사장을 지냈고, 정계 진출 권유를 여야 양쪽에서 다 받은 일도 있다. 그런데 갑자기 내 역사관과 가치관이 잘못됐다는 질타가 나오니 처음에는 기가 막혔다. 나의 80년 인생 전부가 잘못됐거나, 아니면 대한민국이 이상해졌다는 징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처음부터 나에 대한 공격이 특수한 정치적 의도를 품은 어떤 세력이 한 일이지, 국민 또는 KBS 구성원 전반의 반대는 아니라고 믿었다."

 

왜 그렇게 거친 공격의 대상이 됐다고 생각하나.

 

"우리 역사를 왜곡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들과 맞서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에 관한 사실을 왜곡해서 다룬) '백년전쟁'이라는 이른바 '다큐멘터리'에 대한 비판, 그리고 고등학교 교과서 선정 관련 싸움이 대표적 사례였다. 나는 우리 가족이 북한이 아니라 남한에 살게 된 걸 감사하게 생각한다. 1945년 해방 이후, 특히 1948년 대한민국 탄생 이후의 역사는 아픔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그걸 자랑스러운 기록으로 받아들인다. 그 점에서 나의 역사의식은 국민 전반의 역사 인식과 다를 것이 없다. 다만 역사학을 공부한 것, 그것도 역사적으로 파산선고를 받은 세계 공산주의 체제의 본산이던 러시아 역사를 전공했다는 점, 그리고 일제시대부터 지금까지 우리 현대사를 직접 살아온 사람으로서 세부적 사실에 관한 지식이 그 이후 태어난 세대에 비해 좀 더 풍부하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역사학자의 길에 들어서게 된 계기가 있었나.

 

"울분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해방이 됐는데 어린 시절 '약소민족의 설움'이란 얘기를 지겹게 듣고 자랐다. 그래서 우리는 왜 약소민족으로 이렇게 서럽고 구차스럽게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면서 나중에 선진국에 가서 공부해 우리 역사를 바로 이해하고 이끌어가는 데 도움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역사학자의 양심으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역사 인식이란 세대마다 다를 수 있는 것 아닌가.

 

"역사에 대한 관심의 초점은 세대마다 다를 수 있고 해석상의 차이도 있을 수 있다. 내가 지적하고 배격하는 것은 그런 해석상의 차이가 아니다. 사진자료까지 조작하고 거짓을 사실처럼 꾸며 대한민국의 역사, 특히 이 나라 지도층에 대한 인식을 부정적으로 유도하고 여론을 분열시키려는 역사 왜곡과 날조를 말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례를 말하나.

 

"이승만 대통령과 김구 선생이 100년 전부터 반민족과 민족, 두 진영으로 갈라져서 전쟁을 해왔다는 식의 주장이 있다. 이승만 대통령을 애국심이나 도덕이 결여된 하와이 깡패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박정희 대통령 때 본격화된 경제발전도 미국인들이 시켜서 한 것임을 증명하는 '사료'가 있다는 식의 왜곡도 한다. 그건 역사 해석의 차이가 아니다. 1948년 출범한 대한민국 체제에 대한 의도적 폄훼와 부정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역사학자의 양심을 갖고는 그대로 지나칠 수 없는 일을 지적한 것뿐이다."

 

2013년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원로급 인사들이 오찬을 하는 자리에서 이 이사장이 '백년전쟁' 동영상 문제를 제기했다. 어떤 반응이 나올 것이라고 봤나.

 

"여야 할 것 없이 나라를 사랑하는 모든 국민이 분개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백년전쟁' 동영상의 폐해를 박근혜 대통령 앞에서 지적했다는 보도가 나가면서, 마치 친여(親與)적 정치 행위를 했다는 식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후 나에 대한 역사 왜곡 세력의 공격에 일부 야당 의원들까지 가세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지난 10,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KBS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이인호 KBS 이사장. / 뉴시스

 

평생 역사를 공부한 역사학자였다. 역사관이 이전과 달라진 부분이 있나.

 

"가치관이나 역사의식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런데도 내가 '변절'을 시도했다는 이상한 표현까지 야권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소모적인 역사 투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역사적 사실을 그 시대에 살던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보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 점에서는 역사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한 우리 세대, 특히 나처럼 역사교육에 종사했던 지식인들의 책임이 크다. 지도자든 일반 서민이든 사람은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산다. 태생적으로 악인이나 의인은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지혜와 관용이 필요한 시대

 

한국 현대사를 어떻게 봐야 하나.

 

"역사를 볼 때 따뜻한 눈으로 봐야 한다. 좋은 점은 평가하고, 잘못한 건 지적해야 한다. 어떤 시대, 어떤 사람을 악마화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화제인 영화 '국제시장'의 성공이 참 반갑다. 그건 우파도 좌파도 아닌,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약간의 유머를 섞어 표현한 고증이 잘된 훌륭한 역사물이다. 세대 간 정서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도 잘 묘사돼 있고, 6·25 이전에 태어난 세대의 삶이 얼마나 고달팠는지도 잘 보여준다. 또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뼈아픈 노력을 해야 했던가를 잘 보여준다. 민주주의라는 것도 결국은 사람이 사람답게 기를 펴고 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우리가 경험해온 역사의 질곡이 최근까지도 심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럴수록 이성적으로 역사를 바라봐야 하는데 지금 우리 사회에는 그것을 방해하는 요인들, 불신과 편견, 오만과 독선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명백한 사실로 인정해야 하는 부분은 무엇이라고 보나.

 

"1948년 대한민국이 독립국으로 다시 서기까지 3·1운동과 상해 임시정부로 상징되는 우리 민족의 끈질긴 독립정신과 투쟁, 일본 식민 통치의 굴욕을 겪으면서도 어떻게든 살아남아 속으로 힘을 키운 2000만 겨레의 인내와 노력, 일본에 대한 연합군의 승리, 스탈린의 세계 공산주의·전체주의 체제 속으로 흡수당하지 않고 세계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도움을 받아 자주와 독립을 성취하고자 했던 우익 독립운동 세력의 치열한 반공 투쟁이 있었다. 어느 한 가지가 빠져도 독립은 성취될 수 없었다."

 

이 역사적 사실에 대한 심각한 오해가 있다면 무엇인가.

 

"분단이 마치 이승만의 개인적 야욕 때문에 빚어진 일이고 반공이 잘못된 선택이었던 것처럼 호도하는 것이다. 이것은 남남 갈등을 부추기는 일일 뿐 통일에도 결코 도움이 안 된다. 지금 절실히 필요한 것은 과거의 사실은 사실로 인정하되 역사적 역할에 대한 평가와 개인의 인간적 면모에 대한 평가를 구분할 줄 아는 지혜와 관용이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역사 논쟁의 핵심에 있지 않나.

 

"그렇다. 언제부터인가 이승만 대통령을 독재자라 부르고 친일파로까지 규정해, 이승만을 건국 공로자로 높이 평가하는 것은 '독재 미화'이자 '친일 미화'라는 궤변이 나오고 있다. 역사학자라는 사람들의 글에서까지 이런 주장이 나오는 상황이다. 이승만에 대한 '악마화'가 민주주의에 대한 찬미인 듯 착각하는 풍토가 해방 70년을 맞는 오늘날 대한민국 학계 일익까지 오염시키고 있다. 부끄럽고 죄스러운 일이다.

 

이승만은 부정선거와 부정부패에 대한 거센 항의에 밀려 불명예스럽게 대통령직에서 사퇴했고 정치적 술수가 심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승만은 오랜 독립운동과 스탈린과의 정치적 결투를 통해 한반도의 남쪽만이라도 독립국가로 다시 세우고 민주주의의 법적 토대를 마련한 인물이다. 결코 민주주의의 파괴자가 아니다. 이승만은 정파정치에서 발췌개헌이니 사사오입 개헌 등의 무리수를 두어 정적들의 원한과 국민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그는 그러나 정권의 잘못에 항거하는 학생들의 기백을 칭찬하면서 민주주의 의식이 뿌리가 내리고 있음을 기뻐할 줄도 아는 인물이었다."

 

20139월 한국사 교과서 논란과 관련해 역사교육을 걱정하는 사람들모임이 연 기자회견에서 이인호(오른쪽) 서울대 명예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 이진한 기자

 

이승만의 통찰력

 

이승만 대통령이 당시 시대상황을 꿰뚫는 남다른 통찰력이 있다고 했는데.

 

"공산주의 결함에 대한 통찰력이 특출했다. 러시아 혁명 후 지식인들 다수가 새로 탄생한 공산주의 체제에 대해 큰 기대를 걸고 있던 시기인 1923, 이승만은 '공산당의 당(), 부당(不當)'이라는 글을 썼다. 그는 '공산당의 강점은 그 이상(理想)이다. 노동자와 농민이 고르게 잘사는 세상을 만든다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내 이상이다. 그런데 그들이 제시하는 방법은 틀렸다. 모두에게 가진 걸 똑같이 나누어주고 기업인들을 적대시하고 지식인들을 홀대하며 종교를 박해하면 그런 사회는 창의력을 발동할 수 없어 발전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 이상은 절대 성취 못한다'고 했다. 이승만은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기 전에 과거 시험을 준비하면서 동양의 철학과 세계관을 체득했기 때문에 인간의 속성이나 정치제도를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승만 이후 다른 대통령들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박정희 대통령은 민주적 절차를 무시했지만 안보와 민생문제를 해결했고,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은 각각 민주화를 실현하고 남북대화의 물꼬를 틈으로써 시대적 사명을 다했다. 어느 정부나 업적과 그에 따른 그늘이 있게 마련이다. 지도자들은 다 개인적인 장단점을 갖고 있었지만 모두 비범한 노력가였다. 대한민국은 국민 모두가 똑같이 잘살 수 있도록 해주지는 못했지만 각자 능력껏 뛸 수 있는 자유는 보장해줬다. 각 세대는 지도자와 국민들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공산주의의 이름으로 자유를 억압했던 북한과는 달리 국민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나라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걸 인정하지 않고는 사회적 화해도 발전도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 같은 역사에 대한 이해 부족이 우리 사회의 갈등 원인이 된다고 보나.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의도적으로 갈등을 증폭시키는 세력이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역사에 대한 편견과 왜곡을 통해 고질화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자기와 입장이 다른 사람은 무조건 의도가 나쁜 사람으로 악마화한다. 또 그런 사람들을 굴복시키기 위해 거짓과 궤변을 동원하는 나쁜 관행이 성행하고 있다. 그 결과 지각 있는 많은 사람들이 주눅이 들어 자유롭게 발언하지 못하는 풍토가 조성되고 있다. 그런 풍토 때문에 여야 정치권의 관계도 서로를 죽이는 것이 목적인 전쟁처럼 되어가고 있다고 본다."

 

역사를 둘러싼 갈등을 푸는 실마리는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

 

"얼마 전에 서울대 행복연구센터장이 '악마적 편집''천사적 편집'이란 주제로 쓴 칼럼을 읽었다. 그 글은 행복감을 더 많이 느끼게 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지만,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 평가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다.

 

해방 이후 건국, 6·25전쟁과 분단의 후유증을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념적 갈등의 대가를 엄청나게 치렀다. 어떤 사람들은 나라를 세우고 지키기 위해 반공투쟁을 하면서, 어떤 사람들은 그 반대편에 서서, 또 많은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그 중간에서 무고하게 희생됐다. 이제는 우리 국민, 남북한 동포 모두가 상황의 희생자, 어리석은 열정의 희생자였음을 인정하고 이념의 굴레를 벗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러기 위해선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사실대로 인정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좌익에 대한 우익의 승리의 결과로 세워지고 발전한 나라이지만 이제는 서로 그 결실을 함께 즐기며 지켜나가기 위해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임을 깨달아야 한다. 세상에는 악마도 천사도 없고 자기다운 보람된 삶을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보통 사람들만이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해야 한다."

 

이사장이 된 후에 알게 된 KBS는 밖에서 봤던 것과는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임명될 때 세상이 떠들썩했지만, 막상 가보니 이사장이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란 매우 제한돼 있다. 국민의 방송인 KBS의 임무는 국민의 귀와 눈과 입이 되어 우리 사회가 지니고 있는 소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선도적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사회는 그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도록 하는 데 대한 책임을 지는 최고 의결 기구이다. 국민을 대신해 그 기능이 제대로 수행되도록 독려하는 것이다. 제일 놀란 것은 재정 상황이 매우 열악하다는 점이었다. 경제가 어려워져 광고 수입은 주는데 수신료는 2500원으로 동결된 지 25년이 넘었다. 이사장으로서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가 수신료 인상을 국회에 요청하는 것이다."

 

교수도 외교관도 즐겁게 했다

 

교수, 외교관, 국제교류재단 이사장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했다. 어느 분야가 가장 보람 있었나.

 

"핀란드 대사와 러시아 대사 등 외교관도, 국제교류재단 이사장도 다 즐거운 마음으로 했다. 하지만 내면적인 성장이랄까 그런 것은 교수로 있을 때 가장 컸다. 미국에서 러시아 역사를 전공했는데, 귀국한 이후엔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 해도 미국이나 러시아에 가서 자료를 찾아보고 증명할 수가 없으니 학자로서 좌절감이 심했다."

 

새해, 젊은 세대에게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지금은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세계적인 면에서도 역사가 하강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시기라고 본다. 지속 가능한 발전이 무엇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정신적, 정서적 풍요 속에서 삶의 의미를 다시 찾아야 한다. 그렇다고 경쟁의 원칙이 다 나쁘다는 건 아니다. 세속적 성공이나 쾌락을 죄악시하는 것도 위선이다. 사회관계를 모두 갑을 관계로 보는 것도 큰 함정에 빠지는 일이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과 미국 양쪽에서 교육을 받았고 공산주의 소련의 역사를 전공하면서 비교적 많은 문화를 접하며 살아왔다. 가장 큰 위안은 어느 한 사회에서 훌륭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사람은 다른 사회에서도 같은 평가를 받는다는 사실이다. 또 세속적 잣대로 성공한 사람들 대다수는 인품으로도 훌륭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고생은 사람을 큰 인물로 단련시키는 데 큰 몫을 한다는 말이 맞는다는 이야기를 꼭 하고 싶다."

 

이인호 이사장은

 

역사학계와 여성계의 원로. 서울대 문리대 재학 시절 미국 웰즐리대로 유학을 가 역사를 전공했다. 하버드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고려대와 서울대 교수로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며 후학을 키워냈다. 이후 여성 대사 1호로 핀란드와 러시아에서 활동했고, 국제교류재단 이사장,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 등을 지냈다. 러시아사 등 서양사를 전공했지만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한국 현대사를 조명해왔다. 역사 문제를 비롯해 한국 사회 다양한 분야에서 소신 있게 견해를 밝혀왔다.

 

조선일보 강인선 주말뉴스부 부장 입력 : 2015.01.03 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