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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천의 명인들 건강장수비결(38):백사 이항복(上)

풍월 사선암 2014. 11. 27. 10:33

정지천의 명인들 건강장수비결(38):백사 이항복()

 

미숙아로 태어나 건강하게 자랐던 비결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어릴 적의 재치 있는 얘기라든가 이덕형(李德馨, 1561~1613)과 함께 어울리며 만들어낸 오성과 한음의 숱한 일화들이 이야기책으로 만화로 수없이 나왔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항복은 부친 이몽량이 58세의 늦은 나이에 얻은 넷째 아들이었습니다. 더구나 모친이 임신했을 때 병이 들고 파리해지는 바람에 순산을 하지 못할까 두려워서 독약으로 낙태를 시키려고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탓인지 태어나면서 오른쪽 갈비에서 등이 모두 상해서 피부가 생기지 못했고, 이틀 동안 젖을 빨지 못했으며 사흘 동안 눈을 뜨지 못했고 닷새 동안 울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백사 이항복

 

그토록 허약하게 태어난 이항복은 어떻게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었나?

 

미숙아였던 이항복은 요즘 같으면 인큐베이터에 들어가니 문제없겠지만 그 당시로서는 거의 목숨을 이어가기 어려웠는데, 다행히 살았죠. 9세 때 부친상을 당한 다음 편모슬하에서 자라다 보니 버릇이 나빠지고 품성과 행동이 나쁜 소년이 되어갔습니다. 엄한 아버지를 여읜 뒤로 공부보다는 놀기를 좋아해서 동네장난꾼들의 대장이 되었던 것이죠. 한창 과거공부에 열중하고 있을 나이인 15세에 이르도록 매일같이 동네에 나가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제기차기, 씨름 등의 놀이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모친으로부터 피눈물 섞인 꾸지람을 듣고 뉘우치고는 그날부터 놀지 않고 공부에 열중해서 25세에 과거에 급제했지요. 그래서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끄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정승을 지낸 분으로서는 드물게 청백리(淸白吏)로 녹선이 되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집안 후손들에서 많은 재상이 배출되었고 장수한 분이 많아 장수 집안이 되었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만약 이항복이 다른 아이들처럼 어릴 때부터 과거 준비에 나섰다면?

 

이항복이 어릴 때 공부하지 않고 놀면서 지낸 것은 참 다행스런 일이었죠. 선천적으로 허약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만약 놀이를 통해 체력이 강해지지 않았더라면 제대로 사람 구실을 할 수 없었거나 아니면 요절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울러 그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해학과 유머도 갖추기 어려웠겠죠. 15세까지 공부를 시작하지 않고 장난치고 놀면서 지낸 덕분에 몸이 건강해질 수 있었고 유머감각이 몸에 배일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요즘 초등학교 시절부터 운동은 별로 시키지 않은 채 사교육에 몰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이의 균형 있는 학습능력을 저해하고 건강과 창의력 개발에 크나큰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허약한 체질을 타고난 아이들이 이를 개선하지 않고 공부만 한다면 평생 병고에 시달리게 되고 장수는 꿈도 못 꾸게 되는 것이죠.

 

조선시대에 선비들의 과거 준비는 언제쯤부터 시작되었나?

 

다산 정약용 선생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네 살에 천자문을 배우기 시작했고, 일곱 살에 오언시를 지었으며, 열 살에는 경서와 역사서를 공부하고 문장을 지었다고 합니다. 명문가 자제들 대부분이 그런 코스를 밟았던 것 같습니다.

 

한음 이덕형의 경우도 어려서부터 문재가 뛰어나 약관 20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른 뒤, 고속 승진을 거듭하여 불과 32세에 학문의 최고봉인 대제학(大提學)이 되었고, 42세에는 영의정(領議政)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영창대군과 소북파를 제거하려는 계축옥사에 반대하여 삭탈관작을 당하고 낙향한 뒤에 울화가 쌓여 그 해에 5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한편, 이항복과 이덕형이 절친한 사이로 숱한 일화를 남겼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은 백사가 23, 한음이 18세 때에 생원, 진사 시험에서 처음 만났다고 합니다. 그러니 어릴 때 함께 장난치고 놀았던 적은 없었던 것이죠.

 

한음 이덕형

 

궁중의 왕세자들은 어떤 교육을 받았나?

 

사극에서 왕세자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장면을 보셨을 겁니다. TV 드라마에서 영조대왕이 나중에 정조대왕이 되는 이산(李祘)’을 엄청 야단치면서 공부를 독려하는 장면이 많았고, 그것을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패러디하여 오래 방송했던 적이 있었죠. 장차 왕이 될 왕세자에 대한 교육은 나라의 미래가 걸려있는 문제라서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왕세자는 서연(書筵)’이라고 하여 왕이 되기 위한 준비로 세자시강원의 신하들로부터 엄격한 교육 프로그램에 따라 학습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웃어른들께 인사드린 후부터 조강, 주강, 석강 등으로 하루 종일 공부를 해야 했고, 가끔 성균관의 대제학이나 직제학 같은 학자들로부터 특강을 받기도 했습니다. 경우에 따라 아주 까다로운 선생을 만나 혹독한 교육을 받기도 했지요. 그래서 몸이 허약해진 경우도 많았는데, 역시 공부와 운동의 조화가 필요한 것이죠.

 

조선 왕세자의 두뇌 개발을 위한 음식

 

왕세자의 두뇌 보양식이 바로 조청입니다. 조청은 쌀이나 찹쌀을 원료로 보리길금을 넣고 고아서 만든 물엿이죠. 포도당의 덩어리인 조청이었던 셈인데, 영양가도 높고 뇌의 활동력을 높여 두뇌를 총명하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뇌의 에너지원 중에 80%가 포도당이기 때문이죠. 한의학적으로 보면 인간의 뇌는 아침 5시에서 7시까지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데, 왕자들의 아침공부 시간입니다. 그래서 공부에 들어가기 직전에 포도당을 공급하는 조청을 먹었던 것이죠.

 

또한 간식으로 무를 썰어 삶은 뒤에 조청에 절인 무 정과를 먹었다고 합니다. 이런 소문이 퍼져서 양반 가문에서도 활용했고, 심지어 과거에 응시하러 가는 유생들의 짐보따리에 조청 단지가 실려 있었다고 합니다.

 

조청이 약으로도 쓰였나?

 

어린이 성장을 돕는 한약 처방 가운데 소건중탕(小建中湯)’이 있는데, 이 처방에 조청이 들어갑니다. 조청은 비위장을 돕고 통증을 멎게 하는 효능이 있습니다. 원래 건중(建中)’은 비위장을 건실하게 한다는 뜻인데, ()이 우리 몸의 가운데에 위치한 비위장을 의미하기 때문이죠. 소건중탕은 비위장이 허약한 체질의 어린이가 밥을 잘 먹지 않고 배가 아픈 경우에 좋은 약이 되는 것이고, 아울러 두뇌를 총명하게 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는 것이죠. 조청은 그밖에도 폐에 윤기를 주고 기()를 보충하여 기침과 천식을 막아주는 효능이 있고, 해독 작용이 있습니다.

 

그런데 조청은 단맛이 아주 강합니다. 조청을 많이 먹으면 습기와 담이 몸속에 쌓일 수 있으므로 몸이 퉁퉁하거나 열이 많은 사람은 적게 먹어야 합니다. 물론 사탕이나 초콜릿을 먹어도 살이 찌고 비위장에 부담이 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총명탕(聰明湯)이 정말 좋을까?

 

머리를 좋게 하는 약이라면 총명탕을 첫손 꼽는 분들이 많습니다. 동의보감에는 자주 잊어버리는 것을 치료하며 오래 먹으면 하루에 천 개의 단어를 암송한다고 나오는데, 좀 과장된 표현이죠. 원래 총명이란 귀밝을 총, 눈밝을 명입니다. 눈과 귀가 밝아야 남보다 책을 많이 읽을 수 있고 암송할 수 있는 것이죠. 총명탕은 원지, 석창포, 백복신 등이 주된 약재로서 정신을 편안하게 하고 뜻을 굳건하게 하며 건망증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뇌의 활동에 장애를 주는 ()’을 없애 주고 뇌와 심장을 맑게 하므로 머리가 좋아지게 도와 줄 수 있는 것이죠. 담은 몸속의 물기가 열을 받아 가래처럼 끈적끈적하게 된 것입니다.

 

총명하려면 반드시 신장(腎臟)의 정기(精氣)가 충분해야 합니다. 뇌가 제 기능을 발휘해야 하는데, 한의학에서 뇌에 정기를 공급해 주는 곳이 신장이기 때문이죠. 한의학에서 신장은 콩팥을 비롯한 비뇨기와 생식기, 그리고 호르몬을 포괄한 개념입니다. , 허리, , 이빨, , 머리카락 등이 신장의 정기를 받아야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신장계통에 속합니다. 그러므로 신장의 정기가 충실하면 성장 발육, 면역기능, 성기능, 뇌기능이 우수합니다. 그러나 선천적으로 신장의 정기가 부족하게 태어나거나 혹은 큰 병을 앓아 쇠약해지면 성장발육이 부진하고 신체가 허약하며 면역기능이 약하여 잔병치레가 많고 성기능도 약하며 성인병에 잘 걸리고 노화가 촉진될 뿐만 아니라 뇌에 정기가 제대로 공급되지 못해 두뇌가 총명해질 수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