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천의 명인들 건강장수비결(26):등소평(上)
40대 이후 약 50년간 철저하게 체중 조절
중국공산당의 혁명 1세대로서 모택동에 이어 중국을 통치한 등소평(鄧小平·1904-1997)의 건강 장수비결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등소평은 파란만장한 혁명가의 삶을 살았고 피비린내 나는 공산당의 권력 투쟁 속에서 마치 낭떠러지를 외줄로 오르는 듯한 삶을 살았지만 94세까지 건강하게 장수하였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저명한 위인 중 보기 드문 경우인데, 사실 등소평이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건강을 지켰기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등소평
순탄치 못한 삶을 산 오뚝이 인생
등소평은 16세가 되던 해인 1918년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칼 마르크스를 알게 되었고, 파리에서 공산주의 운동에 참여한 뒤에 모스크바에 가서 공부하다 귀국했습니다. 1927년부터 공산당 지하운동에 참여하고 모택동을 지지하면서 대장정에 참여했는데, 세 차례에 걸쳐 실각과 복권을 거듭하면서 인생의 부침과 고뇌를 제대로 느꼈습니다. 1967년 실각했다가 1973년에 복귀했고, 76년 모택동 사후 문화혁명 때 다시 추방되었다가 77년에 복귀하였기에 ‘오뚝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것이죠. 그가 최고 권력자가 된 것은 1980년이었는데, 그 때 나이가 무려 77세였습니다. 시장경제를 도입하여 중국 경제를 일으켜 세웠기에 당, 군, 각 종족 인민에게 가장 숭배를 받는 탁월한 지도자로 평가되고 있지요. 등소평의 장수는 과학적인 양생법(養生法)을 잘 지킨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장수하는데 한 몫을 한 신체조건
등소평의 장수에 키가 150cm 정도에 불과했던 신체 조건이 한 몫 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실제로 키가 5cm 커지면 피부 면적이 10%, 체중이 16%, 혈압이 10% 증가되고 심장의 부담도 커진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그래서 키가 작은 사람이 큰 사람보다 오래 사는데 유리하다는 것이죠. 1993년 중국의 100세 이상 장수자 중에 절반 이상이 150cm 미만의 키에 40kg 안팎의 체중을 가진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합니다.
키가 작은 사람일수록 오래 산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미국 하와이 의과대학의 노인의학전문의 브래들리 윌콕스 박사가 하와이 거주 일본계 주민 8006명을 대상으로 1965년부터 거의 50년에 걸쳐 진행한 조사 분석 결과로 밝혀졌습니다. 이들을 신장 기준으로 157cm 이하와 162cm 이상의 두 그룹으로 나누었을 때 157cm 이하 그룹의 수명이 가장 긴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전체적으로 키가 클수록 수명은 짧은 경향을 보였습니다. 유전자 분석에서는 키가 작은 사람이 수명 관련 FOXO-3 유전자의 변이형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이 때문에 성장 초기에 체구는 다른 사람보다 작고 수명은 길어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또 키가 작은 사람들은 혈중 인슐린 수치와 암 발생률이 낮은 경향을 보였습니다.
하와이는 미국에서 주민들의 평균수명이 가장 길고 또 주민들이 오랫동안 거주하기 때문에 이처럼 장기간의 조사가 가능했다고 합니다. 조사 대상자 중 약 1200명은 90~100세까지 살았고, 이 중 250명은 아직 살아있다고 합니다.
◀등산 중에 기념사진을 촬영중인 중국 정치지도자 등소평.
평생 일에 파묻혀 살았지만 망중한을 즐기다
공자(孔子)가 평생을 쉴 새 없이 몸과 마음을 써서 노력한 바람에 장수했듯이 등소평은 직책상 날마다 각종 일을 처리해야만 했기에 장수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죠. 그러나 그 바쁜 중에도 틈을 내어 여러 가지 운동과 취미활동을 즐겼습니다.
등소평 스스로 말하기를 “일은 효율이 중요하니 나는 최소한으로만 일할 뿐이다. 너무 많은 일을 하려 들지 않고 모든 근심 걱정을 떨치고 매사에 지나치지 않고, 무리하지 않는다. 나는 일을 할 수 있는 한 적게 하려고 하며 일이 발생하면 다른 사람을 보내어 처리하게 하니 이는 좀 더 살려고 하기 위함이다. 내 소원은 1997년까지 사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1997년에 사망했지요. 그의 철학 이론은 “유소불위재능소위(有所不爲才能所爲)”인데, 하지 않는 바가 있음으로써 하는 바가 있다는 것이죠.
건강관리
등소평의 신체는 지속적으로 건강하고 정정하였으며 질병에 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젊을 때부터 신체단련을 계속하는 습관을 가졌고 일상생활 속의 보건활동을 중시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더욱 그러하였습니다. 그렇게 몸 관리를 잘 했기에 1950년대 후반, 즉 40대 후반부터 죽을 때까지 변함없는 체중을 유지했다고 합니다.
등소평도 모택동과 마찬가지로 산보를 했습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늙어서 행동이 불편해졌을 때도 산보를 계속했는데, 매일 오전에 집안 정원을 18바퀴나 돌아다녔습니다. 1바퀴가 약 140m이니 2.5km를 걸었던 것이죠. 지난 1980년에 가택연금을 당했던 YS도 마당에서 조깅했었죠. 등소평은 걸으면서 어깨와 팔을 펴고 다리를 차며 근골(筋骨)을 움직여 주었습니다. 몇 십 년을 하루같이 멈춘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산보할 때는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등산도 즐겼는데, 75세의 고령일 때에도 황산(黃山)을 등산했습니다. 황산은 경관이 매우 뛰어나 이태백이 대지의 꽃이라고 극찬한 산으로서 1,800m의 주봉이 3개인데, 4만 여개의 돌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힘든 곳이죠. 그밖에 당구 등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운동도 즐겼습니다.
냉수욕과 수영을 즐기다
등소평은 냉수욕을 좋아하여 겨울은 물론이고 1년 내내 냉수욕을 하면서 몸을 단련하고 의지를 다졌습니다. 스스로 “나는 10년 동안 감기에도 한 번 걸린 적이 없으니, 몸이 건강한 원인 중 하나가 매일 아침 냉수욕을 하는 것이다”고 말하였죠. 냉수욕은 신체의 한랭(寒冷) 자극에 대한 적응 능력을 높여주고 감기와 기관지염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늙어서 냉수욕을 못하게 되자 온수욕을 하였습니다. 모택동과 마찬가지였죠.
◀여름휴가 중 북대하(베이다이허) 해수욕장을 찾아 수영을 즐기고 있는 등소평.
수영도 역시 좋아하였는데, 수영장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바다수영을 즐겼습니다. “내가 수영을 할 수 있고 특히 바다수영을 즐기는 것은 내 건강이 아직 괜찮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고 하여 등소평은 여름이면 중국 지도자들의 휴양지인 북대하(北戴河)나 진황도(秦皇島), 대련(大連) 등의 해변도시로 가서 요양을 하며 매일 수영하고 일광욕을 즐겼는데, 8순에도 그렇게 했습니다.
비바람이 불어도 상관없이 매일 같이 바다로 나갔는데, 한 번 나가면 1시간이 넘도록 수영을 즐겼습니다. 때로는 풍랑을 만나도 계속 전진하였는데, 고요한 정원에서 발길가는 대로 걷는 것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수영 후 다리가 튼튼해지는 게 느껴진다”고 하였습니다. 74세 때는 헤엄을 쳐서 강을 건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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