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월의 쉼터/고향사선암

인자가 숨어든 넉넉한 천국- 덕유산(2)

풍월 사선암 2014. 7. 31. 19:54

인자가 숨어든 넉넉한 천국- 덕유산(2)

 

'이속대' 절경 세상에 없는 듯한 황홀경

올라갈수록 깊은 계곡과 숲

몸을 감싸며 흘러가는 구름

넉넉한 여유로움 주는 풍경

 

덕유산은 국립공원으로 모든 이들이 찾아오는 것을 받아들이는 우리나라 남부의 호남과 영남지방을 가르는 대표적인 산이다.

 

새벽의 찬 공기는 설친 잠을 깨워준다. 오랜만의 새벽길 등산이다. 구천동 계곡 물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자 백련사의 일주문이 보였고 안에 들어서자 매월당 김시습의 부도가 있었다. 무주구천동의 제25경인 안심대도 김시습과 인연이 있는 곳이다. 생육신의 한사람인 그가 경각을 다투는 도망 길에 이곳에 당도하여 비로소 안심하고 땀을 씻으며 쉬었다는 유래가 있다 해서 안심대라 부르는 곳이다. 앞서가는 산악회원을 보면서 안심대에 앉아 세수를 하였더니 정말이지 모든 것들이 평안하게 안심이 되었다.

 

사자담(17) 비파담(18) 모두가 천하절경이었으며 금포(22)의 시원한 바람소리와 숲이 흔들리는 소리에,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합해져 삼박자를 이룬다면 거문고를 울리는 듯 신비한 소리로 들리는 듯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구천폭포(28)도 폭포가 별로 없는 이곳에서 2단 폭포로서 규모는 아담하지만 아기자기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는 절경이라 하겠다.

 

적송이 길 양쪽에 즐비하게 늘어선 곳을 지나자 송어 양식장이다. 양식장 입구에는 예쁜 꽃들이 오가는 이들을 기쁘게 맞이한 듯 꽃을 피우고 있었는데 옆에는 '송어 진미'라고 새긴 입간판 돌이 커다란 송어처럼 생긴 모습으로 실제모습과 너무도 똑같았다. 돌의 끝에는 송어 꼬리처럼 가늘고 입은 벌린 형태였으며 눈은 붉은 색으로 실물과 조금도 틀림없이 똑같았다. 분위기에 맞는 최고의 명석임이 분명하다.

 

이속대(離俗臺)까지 올라오는데 한 시간쯤 걸었지만 너무도 아름다운 천하절경을 보는데 취한 탓인지 피곤함도 잊었는데 발바닥은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이속대는 절경 속에 파묻히면 속세를 떠난 듯한 느낌이 절로 날 정도로 진짜 황홀경이다. ()계와 속()계의 경계선이 이곳인 듯 맑은 물은 신선이 목욕했던 물이고,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바람소리는 선녀들이 춤추며 흘리는 웃음소리 같았다.

 

무주 구천동의 모든 아름다움은 추월담(秋月潭)에 담겨져 있다. 나제통문에서 10지점에 있는 물이 고인 아담한 곳이다. 주변의 바위들이 특이한 생김새로 소금강산을 닮았다. 고인 물이 너무 맑아 보는 이의 속마음까지 비춰준다. 티 한 점 없는 물은 또 다른 나를 물속에 넣어 진아(眞我)를 보여준다. 물이 고인 바닥의 작은 돌은 유리구슬처럼 투명해서 맑게 보인다.

 

"아그들아! 도대체 너는 어디로 가고 있느냐?"

 

계곡의 밑바닥도 손바닥처럼 훤히 비쳐 보인다. 떠다니는 낙엽과 바닥의 너럭바위와 자갈이 어울려 물이 일렁일 때마다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곳에서 정신을 가다듬고 몸을 맑게 하여 도를 닦다가 물에 비친 달빛의 아름다움과 그 신비함으로 진리를 깨우친 사람도 있다고 전해지는 못이다.

 

그래서 덕유산은 국립공원으로서 모든 이들이 찾아오는 것을 받아들이는 우리나라 남부의 호남과 영남지방을 가르는 대표적인 산이라 하겠다. 북쪽으로 흐르는 물은 금강을 만들며 동쪽으로는 낙동강의 물 뿌리가 되어주는 우람하고 덕을 지닌 산이 덕유산이다.

 

덕유산의 제일봉 향적봉(해발 1614m)에서 이어지는 능선과 계곡은 구십 리를 맴돌며 굽이친다. 그래서 구천동 계곡이라 부르며 선인들이 이름 지은 구천동 33경이다. 이산의 모든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대표되는 말이라 하겠다.

 

올라갈수록 깊고 깊은 계곡과 숲으로 이어진 계곡의 절경을 더듬어 능선에 오르면 어느 사이에 사람이 구름 위에 있고, 겹겹의 산들이 첩첩의 능선을 만들어 눈에는 보일 듯 말 듯 아스라이 보이다 숨기를 반복한다.

 

구름에 묻힌 산봉우리가 언뜻언뜻 스치듯 보이며 일행은 이제 구름 위에 떠있는 느낌이다. 몸을 감싸며 흘러가는 구름이 손등에 달라붙는다. 신비한 신선놀음이다. 산과 산의 높고 낮음에 따라 색색의 구름이 생겼다가 순식간에 지나가곤 한다.

 

덕유산이 보여주는 자연의 오묘한 연출은, 숲 속의 사이사이에서 지저귀는 새소리와 물소리가 흔들리는 나무소리와 함께 그대로 자연의 오케스트라 합주였다. 푸른 덕유산과 맑은 구천동의 물은 태초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코끝이 '' 하도록 짙은 향기를 뿜어내는 나무 향기를 날려버리는 바람! 화사한 꽃망울을 터뜨리는 이름 모를 들꽃들! 바위와 바위 사이를 뚫고 흐르는 물! 덕유산에 있는 이런 것들이 나와 함께 선남선녀들이 찾아들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발목을 붙잡았을 것이다.

 

천왕문 앞에 도착한 나는 너무도 큰 부도 앞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유명한 백련사 정관당 부도였다. 크기가 여느 부도의 두 배는 됨직했다. 황금빛 찬란한 칼을 쥔 사천왕을 뒤로 하고 백련사대웅전 마당으로 올라섰다.

 

동행했던 산악회원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동행자를 찾고 있는데 대웅전 동편 문이 열리며 일행들이 나오는 게 아닌가. 큰부처 앞에 십팔 배를 드리고 나오는 중이라고 했다. 그들은 독실한 불자(佛子)였으며, 불교이론으로 탄탄하게 다진 믿음이 넘치는 이들이다.

 

"Na Mu Ah Mi Ta Bul"

 

커다란 법고 옆에는 오래된 기와 파편들이 쓰레기 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하나씩 제쳐내며 살피고 수키와 막새 2개를 찾아 물로 씻어낸 다음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하나는 연꽃 봉우리를 새긴 막새였고 또 하나는 고대 인도의 수미타 글씨가 새겨져 있어서 나로서는 그 뜻을 알 수가 없었다. 친구에게 물어보기로 작정하고 일단 배낭에 집어넣었다.

 

마당 동편에는 한 그루의 재래종 배나무가 주렁주렁 열매를 많이도 달고 있었다. 토종배나무는 열매가 작은 상수리 알 크기여서 여간 정감이 들었다. 소위 말하는 독배라고 하는 아그배였던 것이다. 부지런을 떨며 마당에 떨어진 배줍기에 열중인 산우가 있었다. 연신 허리를 굽히며 줍고 있기에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넌지시 물어 보았다.

 

"오메, 많이도 주었소이잉?”

 

"부처님이 주었지라우."

 

"지금 손안에 있는 것은?”

 

"이건 당연히 부처님 것이지요.”

 

"……"

 

떨어져 뒹구는 작은 열매 하나에도 감사할 줄 아는 넉넉함과, 자연과 함께 어울려 숨 쉬는 여유로움은 각박한 오늘을 이겨내야 하는 현대인들의 중요한 화두라 하겠다. 선각자 루소는 이렇게 말했다.

 

"자연으로 돌아가라."

 

지금에 와서 시급히 논해야할 트렌드는 발등에 떨어진 불처럼 시급한 '자연과 생명'이 되었음은 모든 이에게 깊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 무등일보 / 글 : 淸山 윤영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