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생활글

밥 푸는 순서

풍월 사선암 2014. 5. 22. 08:04

 

밥 푸는 순서

 

친정에 가면 어머니는 꼭 밥을 먹여 보내려 하셨다.

어머니는 내가 친정에 가면 부엌에도 못 들어오게 하셨고

오남매의 맞이라 그러셨는지 남동생이나 당신 보다

항상 내 밥을 먼저 퍼주셨다.

 

어느 날 오랜만에 친정에서 밥을 먹으려는데

여느 때처럼 제일 먼저 푼 밥을 내 앞에 놓자

어머니가 “얘 그거 내 밥이다.” 하시는 것이었다.

 

민망한 마음에

“엄마 왠일이유? 늘 내 밥을 먼저 퍼주시더니...”

하며 얼굴을 붉혔다.

“그게 아니고, 누가 그러더라 밥 푸는 순서대로 죽는다고

아무래도 내가먼저 죽어야 안 되겠나.”

그 뒤로 어머니는 늘 당신 밥부터 푸셨다.

그리고 그 이듬해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어머니 돌아가신 후 그 얘기를 생각하며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남편과 나, 중에

누구 밥을 먼저 풀 것인가를 많이 생각 했다.

그러다 남편 밥을 먼저 푸기로 했다.

 

홀아비 삼년에 이가 서말이고 과부 삼년에는 깨가 서말이라는

옛말도 있듯이 뒷바라지 해주는 아내 없는 남편은

한없이 처량할 것 같아서이다.

 

더구나 달랑 딸 하나 있는데

딸아이가 친정아버지를 모시려면 무척 힘들 것이다.

만에 하나 남편이 아프면 어찌하겠는가?

더더욱 내가 옆에 있어야 할것 같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 고통스럽더라도 내가 더 오래 살아서

남편을 끝가지 보살펴주고 뒤따라가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때부터 줄곧 남편 밥을 먼저 푸고 있다.

남편은 물론 모른다.

, 알게 되면 남편은 내 밥부터 푸라고 할까?

남편도 내 생각과 같을까?

원하건대 우리 두 사람, 늙도록 의좋게 살다가

남편을 먼저 보내고 나중에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 좋은 생각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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