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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구현사제단, 왜 세상의 조롱거리 됐는지 아는가

풍월 사선암 2013. 11. 26. 10:27

[정의구현사제단 파문]

함세웅 등이 40년째 주도"김현희(KAL기 폭파범)는 가짜·천안함은 음모" 주장

 

[정의구현사제단은 어떤 단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폭로로 6·10 민주화 항쟁에 기여

 

민주화 이후 좌경화 변질 - 1989년 문규현 신부 불법

국보법 폐지·反美 운동 앞장, 제주 해군기지 반대에도 개입

사제단 회원은 약 300~500뜻 다르면 교단 지도부에 反旗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19747월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된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가 '유신헌법 무효' 양심선언을 한 뒤 구속된 것이 계기가 돼 만들어졌다. 김승훈·함세웅 신부를 비롯한 젊은 사제들과 평신도 등 1200여명이 그해 9월 서울 명동성당에서 시국 선언을 발표하면서 정의구현사제단이 출범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이후 '민주구국선언문' 발표, 김지하 시인 구명 운동, 인혁당 사건 진상 규명 운동 등을 전개했다. 유신과 제5공화국으로 이어지는 독재 시대에 민주화와 인권의 보루로서 정의구현사제단의 명성은 1980년대 들어 광주 민주화 운동과 부천서 성고문 사건 진상 규명 운동을 통해 더욱 높아졌다. 그리고 19875월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의 은폐·조작을 폭로해서 6·10 항쟁의 도화선을 당김으로써 절정에 이르렀다.

 

하지만 정의구현사제단은 민주화 이후에 국가보안법 폐지, 반미(反美), 통일, 반전(反戰) 운동 등으로 방향을 돌리면서 이념적 편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첫 사건은 19898월 미국에 있던 문규현 신부를 불법 입북하여 평양 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한 임수경양과 함께 귀환시키기 위해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고 파견한 일이었다. 사제단의 좌경성은 2000년대 들어 더욱 분명하게 나타났다. 200211월 미군 장갑차 여중생 희생 사건 해결과 소파협정(·미 행정협정) 개정을 요구하는 시국 기도회를 열었고, 200311월에는 1987년 발생했던 KAL 858기 사건이 조작됐다며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이후에도 국가보안법 폐지,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FTA 중단을 촉구하는 시국 미사를 개최했으며 미국산 소고기 수입 재협상 요구 촛불 시위,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 용산 사태 등에 개입하면서 일방적 주장을 펼쳐서 친북(親北), 종북(從北)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정의구현사제단은 서울에 본부를 두고 천주교 교구별로 지부를 갖고 있으며 본부와 지부에는 각각 대표가 있다. 사제단은 정확한 회원 수와 명단을 발표한 적이 없지만 대략 300~500명이 회원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 천주교의 전체 사제는 지난해 말 4578명이다.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현 대표는 지난 3월 선출된 나승구(50) 신부가 맡고 있다.나 신부에 앞서 전종훈(57) 신부가 7년간 대표를 맡았다. 이들과 2007년 삼성 비자금 폭로 당시 사제단 총무로 매스컴을 탔던 김인국(50) 신부와 김홍진(57), 맹제영(55), 이강서(51), 최승정(52) 신부 등이 '사제단 2세대'의 핵심이다.

 

50대 신부들이 실무 책임을 맡고 있지만 정의구현사제단의 실질적 주역은 여전히 창립 때부터 참여해온 원로 그룹이다. 초창기 사제단의 '투 톱' 중 김승훈 신부는 2003년 세상을 떠났지만 함세웅(71) 신부는 정의구현사제단이 설립한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원장으로 사제단의 대부(代父) 역할을 하고 있다. 연구원의 이사장인 김병상(81) 몬시뇰과 부이사장인 송기인(75) 신부, 이사를 맡고 있는 심용섭(74), 안충석(74), 양홍(73), 황상근(72) 신부 등도 '사제단 1세대'의 중추다.

 

정의구현사제단은 한국 천주교의 공식 지도 기구인 주교회의로부터 인준받지 않은 임의 단체이다. 엄격한 위계질서를 갖고 있는 천주교는 모든 산하단체가 주교들의 통제를 받지만 사제단은 그렇지 않다. 이들은 때로 자신들의 뜻에 맞지 않는 천주교 최고 지도부에 반기를 든다. 2010년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이 "4대강 찬반은 신앙의 문제가 아니다"고 발언하자 사제단은 '추기경의 궤변'이라는 성명을 발표했고, 사제단 원로들은 '교구장 용퇴'를 요구했다. 함세웅 신부는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때 김수환 추기경이 "탄핵 문제로 국론이 분열돼서는 안 된다"며 촛불 행사 자제를 당부했을 때 "그분의 사고는 다소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했다.

 

이선민 선임기자 / 메신저입력 : 2013.11.26 03:12

 

[사설] 정의구현사제단, 왜 세상의 조롱거리 됐는지 아는가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가 24일 명동성당 미사 강론에서 최근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신부들의 정치적 언동(言動)과 관련, "가톨릭 교회는 사제(司祭)가 직접 정치적·사회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신부들) 자신이 하느님처럼 행동하고 판단하려는 교만과 독선은 더 큰 문제"라고 했다. 염 대주교는 "현세(現世)의 질서를 개선하는 것은 평신도의 고유 영역"이라고 했다. 천주교 신자 540만명 중 150만명이 있는 서울대교구의 교구장은 사실상 한국 천주교를 대표하는 자리다.

 

민주주의 국가의 헌법은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명시하고 있고 천주교 교회법도 사제들의 교화권(敎化權)이 정치와 과학 분야에는 미치지 않는다고 못 박고 있다. 지난 몇 백 년 교회가 세속의 일에 뛰어들었을 때 국가적으로 어떤 불행을 몰고 왔고 교회 자체도 어떤 위기를 맞게 됐는지에 대한 성찰의 결과다.

 

() 김수환 추기경은 유신 독재와 군부(軍部) 쿠데타 시대에 국민이 의지하는 마음의 기둥이었다. 그는 불의(不義)와 폭력에 피해를 본 국민의 사정을 들어주는 우리 사회의 ''였으며, 입이 있어도 말을 할 수 없는 국민을 대신했던 우리 사회의 ''이었다. 김 추기경은 누구보다 완강하게 정권의 반()민주성에 맞섰지만 '정권 타도''대통령 퇴진' 같은 구호는 좀체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보다는 국민 아픔을 어루만지고 넘어진 사람을 다시 일으키는 데 정성을 쏟았다. 그는 자신만이 정의의 사도(使徒)인 양 비치는 오만을 무엇보다 경계했다.

 

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소속 박창신 신부는 지난 22일 군산 시국 미사에서 "NLL(북방한계선)에서 한·미 군사훈련을 하면 북한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쏴야죠. 그게 연평도 포격"이라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했다. 정의구현사제단 전국 대표 나승근 신부는 "성령(聖靈)의 바람이 전주로부터 시작해 신나게 몰아쳤으면 좋겠다"고 했다. 말 못 하는 사람들 입을 대신하고 들어주는 이 없는 사람 이야기를 들어주는 귀가 돼야 할 사제의 신분과 동떨어진 행동이다.

 

언제부터인가 정의구현사제단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시위에서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 밀양 송전탑 건립 반대에 이르기까지 세속의 모든 현안에 개입해 갈등을 증폭하는 걸 사명처럼 여겨왔다. 무슨 정치 컨설턴트라도 되는 양 특정 정파의 세력을 확장하는 전략 모임에 얼굴을 내밀기도 했다. 그때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땅을 헛딛고 비틀거렸다. 그리고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쌓았던 역사적 공로를 다 까먹고 이제는 사회의 조롱을 받는 빈축 대상이 돼 버렸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은 집단마다 이해(利害)가 서로 갈리고 원인과 결과가 복잡하게 얽힌 정치·사회·경제적 현안을 뚫어보지 못하고 어디서나 흑백(黑白)의 도끼를 휘둘러 자신들이 세상일에 얼마나 무지(無知)한가를 스스로 폭로해 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