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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좌파는 북한 문제를 직시할 수 있을까

풍월 사선암 2013. 11. 8. 01:09

[아침논단] 강남좌파는 북한 문제를 직시할 수 있을까

 

고학력·고소득이면서 진보 지향, 이념지형 다원화 보여주지만 '프랑스 강남좌파' 사르트르 같은 지식인의 위선은 특히 해로워. 스타일리스트 넘어 진정한 진보 되려면 북한 체제의 본질 외면 말아야...

 

'강남좌파' 논쟁이 뜨겁다. 강남좌파란 고학력·고소득자이면서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원래 이 말은 386 정치인 같은 진보 엘리트가 보이는 '몸과 마음의 괴리'를 비판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말로는 민중을 위한다면서 부르주아적 삶을 즐기는 행태를 비꼰 것이다.

 

그러나 최근 강남좌파의 상징으로 떠오른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의 대응은 사뭇 당당하다. "우리 사회가 더 좋아지려면 강남좌파가 많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 조사로도 소득이 많을수록 자신의 이념적 성향이 진보라고 한 비율이 높았다. 부자가 보수적일 거라는 통념을 뛰어넘는 현상이다. 강남좌파의 객관적 처지와 주관적 이념성향의 거리가 부정적으로만 해석될 필요는 없다. 사회문제에 밝은 전문직 종사자나 지식인의 진보성향이 현실을 바꾸는 데 일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남좌파 논란은 한국 사회의 이념지형이 다원화되고 있다는 증거다. 하지만 실제 거주 지역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생활수준을 누리는 계층을 뜻하는 '강남'과 평등을 지향하는 '좌파'의 결합이 기괴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왜곡된 강남좌파의 모습은 일부 지식인들에게서 집중적으로 드러난다. 미국을 세계의 모순과 한반도 분단의 원흉으로 보는 반()제국주의자가 정작 자본주의적 삶의 양식을 향유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은 신뢰하기 어렵거니와 존재 이유가 말에 있는 지식인의 위선과 배리(背理)는 특히 해롭다. 여기서 '프랑스의 강남좌파'이자 20세기를 대표하는 진보지식인이었던 사르트르(J.P. Sartre, 1905~1980)의 행보가 흥미롭다. 2차 세계대전 후 세계를 휩쓴 '실존주의의 교황(敎皇)'으로 불린 그는 참여문학의 거장이자 유럽의 양심으로 여겨졌다. 세계적 명성으로 얻은 부()와 영향력을 즐긴 사르트르는 6·25전쟁을 미국의 사주에 의한 한국의 북침(北侵)이라고 강변했다. 소련의 조직적 인권침해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소련에는 완벽하게 비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고 했고, 소련의 강제수용소를 고발한 망명작가 솔제니친을 "시대착오적 인물"로 폄하했다. "혁명의 완성을 위해서는 반()혁명적인 인물을 죽여 없애야 한다"고 한 사르트르와 온건개혁론을 편 소설가 카뮈(A. Camus, 1913~1960)의 절교(絶交)는 불가피했던 것이다.

 

사르트르의 강남좌파적 성향은 사회학자이자 정치평론가인 레이몽 아롱(R. Aron, 1905~ 1983)과의 논쟁에서 재현된다. 선동적인 진보 레토릭으로 프랑스 지식사회를 평정한 사르트르가 '혁명의 모국(母國)' 소련 찬양에 바쁠 때 아롱은 마르크스주의 이념이야말로 '지식인의 아편'이라고 꼬집었다. 사회주의의 꿈에 경도된 파리의 지식인 사회가 아롱을 홀대하고 조롱한 건 물론이다. 소련이야말로 반동적(反動的) 전체주의 체제임을 설파한 아롱이 옳았음을 역사가 증명하지만, "레이몽 아롱과 함께 옳은 것보다는 사르트르와 함께 실수하는 게 낫다"는 프랑스 지성계의 위선적 분위기는 오래 지속되었다. 한국에서도 우파 아롱을 아는 이는 거의 없지만 좌파 사르트르의 생명력은 유장(悠長)하다.

 

우리 사회의 문화적 헤게모니는 진보가 장악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보수 지도자가 거의 없을뿐더러 신뢰받는 우파 지식인도 찾기 어렵다. 이는 냉전반공주의와 천민자본주의로 일그러진 기득권 보수우파 진영의 원죄(原罪)에서 비롯되었다. '그들만의 리그'에 묻힌 이명박 정부의 퇴행적 행보는 그걸 더 조장한다. 진보좌파에 입혀진 지나친 도덕적 광휘(光輝)가 그 반대급부다. 예컨대 영화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여배우가 진보의 대의(大義)를 내건 시위현장에 참여해 순식간에 전국적으로 유명한 '개념 연예인'으로 등극한다. 진보적 제스처가 출세의 지름길이 되고 만 것이다. 강남좌파론의 갑작스러운 부상(浮上)도 비슷한 맥락이다. 강남좌파론의 또 다른 문제는 한국 사회의 고질병인 '새것 콤플렉스'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참신하고 세련되어 보여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거기까지인 경우가 많다.

 

동시대의 냉대와 싸우면서 소련과 사회주의의 허구를 고발한 레이몽 아롱은 "정직하면서도 머리가 좋은 사람은 좌파가 될 수 없다"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을 남겼다. 강남좌파가 '스타일리스트'를 넘어 진정한 진보로 가는 한 길은 '북한문제'를 직시하는 데 있다. 북한 사회주의체제의 반동적 본질에 대한 부정직성이야말로 한국 진보지식인의 아편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2011,7,25



1990년대부터 시작된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은 고령화가 큰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은 보수화 되어간다고들 한다.

 

처칠은 “20대에 진보가 아니면 심장이 없는 것이오, 40대가 되어서 보수가 아니면 뇌가 없는 것이다.”라는 말을 한 적도 있다.

 

또한 보수 논객 전원책 변호사는 “20대 때는 좌파 해야 돼. 젊었을 때 좌파가 아니면 띨띨한 거야! 아이비리그 학생 가운데 80%가 좌파이고 젊었을 때 좌파의 이상주의와 휴머니즘을 품지 않으면 안 돼. 젊었을 때 좌파를 해봐야 하는 이유는 우파보수를 하려면 좌파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는데 나이가 들면 사람은 뻔뻔해지고 우파로 변하기 때문에 젊었을 때라도 '좌파 정신'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야.” 라고도 한다.


반면 케인스는 “한 사람의 정치적 성향은 20대 후반 내지 30대 초반에 결정되어 대체로 크게 변하지 않는다.”라고도 한다. 한국의 정치적 현실을 보면 40, 그러니까 486세대의 경우에는 처칠의 말과 케인스의 말이 다 반영되어 보인다.


“20대에 진보가 아니면 심장이 없는 것이고, 40대에 보수가 아니면 뇌가 없는 것이다

*영국의 정치가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의 말입니다.


정직하면서도 머리가 좋은 사람은 좌파가 될 수 없다.

 정직한 좌파는 머리가 나쁘고, 머리가 좋은 좌파는 정직하지 않다.”

*프랑스 정치사회학자 레이몽 아롱(Raymond Aron)의 말입니다.

 

한 사람의 정치적 성향은 20대 후반 내지 30대 초반에 결정되어 대체로 크게 변하지 않는다.”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의 말입니다.